공중볼 다투는 지소연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북한의 김은향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공중볼 다투는 지소연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북한의 김은향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유성호


얼마 전 끝난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챔피언인 일본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북한전에서 터진 김수연 선수의 재치 있는 골, 중국전에서 김나래 선수가 선보인 통쾌한 대포알 슈팅 골, 마지막 일본전에서의 지소연 선수의 자로 잰 듯한 프리킥 골과 침착한 결정력으로 뽑아낸 추가 골은 경기를 지켜보던 축구팬들의 가슴 속에 통쾌함과 함께 벅찬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도 증명되었지만, 객관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 여자축구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최근의 국제대회만 놓고 비교할 때는 남자축구보다도 성적이 훨씬 좋다. 3년 전에는 U-20 월드컵에서 3위를 해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곧 이어진 U-17 월드컵에서는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 당시 어린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 주었던 패기와 투지, 스포츠 정신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씁쓸한 것은 이러한 여자축구 대표팀의 선전을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자축구에 대한 국내의 심각한 무관심과 홀대 때문이다. 만일 남자대표팀이 세계 3위 안에 드는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전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빠져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자축구의 선전 앞에 환호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관심과 지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이제는 열악한 조건에도 늘 좋은 성적을 내는 여자축구 선수들 앞에서,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부끄러워질 정도다.

여자축구에 대한 부끄러운 수준의 투자

동아시안컵이 끝난 지금, 여자대표팀 중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 선수를 제외한 선수들은 모두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가 WK리그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WK리그의 상황은 K리그와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하다.

여자 실업팀의 경우에는 연고 구장조차 없다. 따라서 연고지가 아닌 강원도 화천, 경기도 이천, 충청북도 보은에서 돌아가면서 경기가 열리는데, 입장이 무료임에도 매 경기 모이는 관중은 매우 적다. 경기를 관전하러 온 많은 여자축구 꿈나무들이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며 자신의 꿈을 키우기보다는, 관중 없이 선수들만 외롭게 뛰는 안쓰러운 광경에 축구를 포기할까 봐 걱정이다. 사실 안정적인 국내 리그가 없으면 국제 경기에서의 지속적인 선전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여자축구를 둘러싼 상황의 열악함은 A매치에서도 드러난다. 세계 축구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월드컵 등의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법인데, 현재 여자대표팀의 A매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2년 3월 키프러스 대회 후로, 올 1월 중국 영천대회까지 여자대표팀의 A매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장 내년에 있는 2015 캐나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까지 경험할 수 있는 A매치도 10월에 있는 캐나다와의 친선 경기 단 하나에 불과하다. 남자대표팀의 경우, 내년 있을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올해 말까지 총 7번의 A매치가 예정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다.

'여자축구 홀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타의 영역에 있어서도, 남자축구와의 형평성이 전혀 맞지 않는다. 일례로 남자대표팀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올 때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타고 온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은 이동거리가 3시간 이상에 해당할 경우에만 비즈니스석을 타기 때문에,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 선수도 일반석(이코노미석)밖에 받지 못한다. 똑같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상황인데, 남자대표팀은 비즈니스석, 여자대표팀은 일반석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해도 너무한' 상황이다.

협회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필요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가혹한 무관심과 홀대에도 세계에서 손꼽는 성적을 얻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축구는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만 수반된다면 국가적인 자랑거리이자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이 단지 '황금 세대'의 '반짝 선전'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가 필수적이다. 팬들의 관심이 적다면 축구협회 차원에서부터라도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팬들도 점차 관심을 가질 것이고, 언론들도 더 많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투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푸른 잔디는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축구에 대해서, 당장 남자축구에 버금가는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A매치를 늘리는 정도의 투자는 의지만 있다면 현재의 협회 여력으로도 당장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축구계는 이번 동아시안컵 도중 언론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던 지소연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눈물을 닦아 줄 정도의 지원은 사실 여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다. 지금, 한국의 여자축구는 계속해서 스스로 실력으로 세상의 무관심을 뚫고 나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는 선수들에게서 세상의 무관심으로 인한 눈물 대신, 팬들의 환호 속에 환희와 기쁨을 누리는 모습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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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 여자축구 WK리그 A매치 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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