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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경주문화재단


드라마와 연극무대를 넘나드는 배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노현희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그는 서로 다른 장르의 특성이 있는 연기자 혹은 배우로 오해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연기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다. '배우'라는 천직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자신의 극단 이름도 '배우'라고 지었다. 뮤지컬 <무녀도동리>에서 모화 역을 맡은 노현희를 극장 용에서 만났다.

- 무대 위에서 굿도 해야 하기에 <무녀도동리>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체력 소모가 많을 것 같다.
"내가 연기하는 모화는 쉴 틈이 없다. 굿 연기를 비롯해 몸을 많이 써야 한다. 체력 소모가 다른 공연에 비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파도 무대 위에만 오르면 신기하게 아픈 걸 모르는 체질이다. 집에 돌아와서 살짝 불편하지, 무대에만 올라가면 씻은 듯 괜찮다."

- 모화는 기독교인 아들 욱이보다 무속 신앙이라는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여성으로 보인다.
"공연을 관람한 작가 언니가 있었다. 김동리 선생님의 <무녀도> 원작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화가 보였다는 평을 남겼다. 모화는 자신의 피붙이마저 칼로 찌르는 여자지만, 어쩔 수 없이 찔러야만 하는 당위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들을 찌르고 난 다음에 모화는 하늘님을 찾는다. 이 대사는 모화의 커밍아웃이다. 아들의 종교를 인정하는 대사다. 이 장면에서는 감정을 절제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 장면부터 제 모든 걸 놓아두고 연기한다. 마지막에 모화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는 몸짓 하나, 손가락 하나에 제 모든 혼을 실어서 연기하겠다고 일 년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모화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자나 깨나 모화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 공연이 일주일가량 남았는데 모화 생각만 가득하다면 공연이 막을 내린 다음에는 섭섭할 것 같다.
"한동안 많이 아플 것 같다.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모화는 한 많은 여인이다. 매일 넋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공연한다. 공연을 마치고 언제 노현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 걱정된다."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경주문화재단


- 드라마 <당신의 여자>에 출연할 때 뮤지컬 섭외가 들어온 건가, 아니면 드라마를 찍으면서 뮤지컬 연습을 병행했는가?
"엄기백 감독님이 <무녀도동리>를 기획하면서 1년 전부터 내게 부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올가을에는 다른 공연을 잡지 않았다. 10년 만에 <당신의 여자>로 방송에 복귀했다.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난생처음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다. 오랜만에 방송했으니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소속사와 계약할 때 올가을에는 <무녀도동리>를 위해 다른 일정은 잡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었을 정도였다."

- 아가씨 때부터 소속사라는 울타리가 없었다면 연예계의 다양한 풍파를 어떻게 견뎠는가.
"양미경 선생님이 내 공연을 보시고는 '인생은 버티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했다. 여자 혼자 헤쳐나가기는 사실 쉽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잡초처럼 자라왔다. 성형이나 이혼으로 질타도 받았다. 힘든 삶이라서 힘든 여건을 원망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견디면서 살아왔다.

방송을 중단하면서 무대에 10년 동안 전념했다. 1년에 10편의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다. 대학로 뒷골목에서 관객 3명만 관람하는 가운데 공연한 적도 있다. 대학로에서 포스터도 열심히 붙였다. 유명한 공연이든, 열악한 공연이든 한살이라도 젊을 때 열심히 공연해야 작품을 보는 능력도 생길 것 같아서다. 정말로 열심히 공연하면 장년이 되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다."

- 몇몇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연기 생활을 한다.
"학생들과 작품을 만들며 워크숍을 한다. 가르치는 대학생을 보면 20대 당시 내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학생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 연기는 정답이 없다. 어느 책에는 연기는 가르칠 수 없다는 문구도 있다. 연기는 학생과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다.

배우는 고민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주는 편이다. 학생들이 고민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배우는 아무나 쓸 수 없는 면류관이다. 소중하고 신성한 직업이다. '배우'라는 극단을 하나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극단 이름으로 만들었다.

새로 만든 극단이라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주차한 차가 모두 빠진 다음에야 지하에서 연습하기도 하고, 하루에 김밥 한 줄 반씩 먹어가며 연습할 때도 있다. 27일 막을 내린 <매일 그대와>라는 자살 예방 연극을 만들면서 <무녀도동리>에서는 반대로 자살을 하는 역할이다. 모화의 죽음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경주문화재단


-조금 전 답변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어려운 순간이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
"방송을 하면서 공연을 하다 보니 선입견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왜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쓰는 목욕탕 발성을 하느냐'는 질책을 들은 적도 있다. 반대로 공연을 하면 '왜 너 혼자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내면 연기를 하느냐'는 시선도 있었다. 다양한 장르에 맞게 도전하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어느 장르에도 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면 '쟤 얼굴 진짜 이상하게 변했다' 혹은 '저래서 이혼당한 거야' 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린 소리를 들으면 집중이 깨진다. 극복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대극장에서 공연해도 나를 향해 수군대는 관객의 소리를 들으면 소머즈가 된다. 입 모양만 봐도 흉을 본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럴수록 극 중 인물이 되려고 연기에 몰입한다. 매 공연할 때마다 목숨을 건다. '이 공연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한다. 이런 나의 열의를 알아보고 응원을 하는 분도 생기기 시작하더라.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만 바라보는 관객 이 생겼다.

라디오 진행을 하며 청취자와도 소통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매일 라디오를 통해 밤새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처럼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보이지 않는 분들이 저를 응원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연예인이 자살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진짜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10년 동안 밤길이 무서울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분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 TV와 공연에서 그토록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면 어느 한 분야는 포기했을 법한데 그럼에도 그 어느 분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갈 줄 안다.
"어릴 적부터 평생의 꿈이 연기자였기에 배우로 사는 삶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닥부터 치고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무대 배우가 되고 싶고, TV에서는 누구보다 탤런트가 되고 싶다. 철저하게 활동하기 위해 기본부터 다시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무녀도동리 에서 모화를 연기하는 노현희 ⓒ 경주문화재단



노현희 무녀도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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