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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개봉한 영화 <톱스타>의 한 장면. 주인공 태식 역의 엄태웅(오른쪽)과 원준 역의 김민준

▲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톱스타>의 한 장면. 주인공 태식 역의 엄태웅(오른쪽)과 원준 역의 김민준 ⓒ (주)세움영화사


정말 '연예계'란 그런 곳일까?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추악한 짓도 서슴지 않고, 정상에 올라서는 그곳에서 떨어질까 두려워 발버둥 치며, 또 다른 정상을 쉼 없이 갈구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태식(엄태웅 분)의 얼굴에서 시작하는 영화 <톱스타>는 곧바로 연예계란 동네를 기회를 욕망하는 자들의 소굴로 묘사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과 반목은 내가 탐하는 기회가 남들도 똑같이 욕심내는 그것이기에 발생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연예계에서 부와 명예로 직결된다.

영화의 제목이 '톱스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식이 되고 싶었던 것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부와 명예가 따라붙는 '스타'였던 것. 그래서 태식은 '톱스타'인 원준(김민준 분)을 부러워하며 그처럼 되고 싶어 한다. 그에게 '연기'와 '배우'라는 타이틀은 톱스타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박중훈 감독이 태식을 연기 못하는 배우로 설정하고, 원준을 남우주연상을 거듭 수상할 정도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설정한 데에는 이러한 의도가 숨어 있다.

원준은 톱스타다. 그리고 태식은 그의 매니저다. 둘은 스타와 매니저 관계인 동시에 형, 동생처럼 지내는 형제 같은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원준이 음주 운전을 하다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고 소속사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한다. 그때 태식이 원준을 대신해 거짓 자수하겠다고 나선다. 원준은 그런 태식이 고마워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작은 배역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태식은 원준 대신 거짓 자수를 한 대가로 드라마 출연 기회를 잡고 이후 원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스타로 성장한다. 하지만 태식은 스타가 된 뒤에도 원준의 매니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늘 원준의 그늘에 가려있어 불편했던 태식은 어떻게 해서든 원준을 넘어서고 싶어 한다. 태식의 욕망은 결국 좋았던 둘의 관계의 균열을 만든다.

희망만을 붙잡고 살아가던 태식은 톱스타라는 희망을 현실로 이루자 꼴통 배우 최광철(김수로 분)이 항상 강조하는 '본질'을 잃어간다. 그 본질에는 그가 이미 이뤄 버린 희망의 과거형도 있고, 떠올리기도 싫은 아버지와의 기억, 매니저 형과의 옛 추억도 있다. 그는 스타가 되면서 이러한 본질을 구질구질한 과거로 치부한다. 앞날이 캄캄했던 그 시절이 그에게는 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족쇄이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는다. 이는 스타가 된 후 확 달라진 그의 말투, 행동, 패션 스타일 등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태식의 눈빛에서 원준과 미나(소이현 분)는 똑같이 그의 야망을 읽었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원준에게 비친 태식의 야망은 스타가 되기 전 자신이 품었던 그것이다. 그래서 원준은 태식의 야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태식이 자신을 대신해 거짓 자수하겠다고 하자 원준이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며 태식의 눈빛을 읽는 장면은 마치 스타가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원준은 태식의 야망을 자신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이용한다. 반면 미나는 태식의 야망을 스타가 되기 위한 에너지로 해석한다. 미나에게 태식의 야망은 스타가 될 수 있는 자질로 치환된다. 그래서 그녀는 태식을 톱스타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회사에 스카우트 한다.

앙숙이 되기 전까지 원준과 태식의 관계는 두터웠다, 아니 썩 괜찮았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의 균형은 태식이 원준의 것을 빼앗음으로써 깨진다. 원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기 스타가 된 태식은 이제 원준을 자신의 우상이 아닌 '라이벌'로 둔다. 라이벌 관계의 긴장은 경쟁으로 유지된다. 태식이 원준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준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것뿐. '매니저'라는 출신성분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태식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해답이 없는 이 싸움의 결과는 결국 공멸(共滅)이다. 박중훈 감독은 씁쓸한 결말을 통해 화려함과 가식으로 포장된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두 인물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장과 클럽에서 둘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의 가면을 씌우는 '섬광효과'는 그래서 더 인상 깊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얼굴이 꼭 연예인들의 명암을 나타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톱스타>의 한 장면.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갇힌 태식(엄태웅)의 모습.

▲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톱스타>의 한 장면.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갇힌 태식(엄태웅)의 모습. ⓒ (주)세움영화사


영화는 전반적으로 극 중 태식의 느낌처럼 '촌스럽다.' 28년 경력의 배우가 들여다 본 연예계 이야기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연예기사와 증권가 찌라시가 주는 자극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현실의 이야기가 너무 기가 막혀서 영화의 이야기가 덜 흥미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안의 이야기는 대부분 한 번쯤 보고 들어봤던 것들이라 기시감이 든다. 또한, 인물간의 관계 변화를 노리는 설정과 극적 전환을 이루는 상황들이 상투적인 점도 아쉬움을 자아낸다. 벌여 놓은 설정을 대부분 적절히 수습해가는 점은 칭찬할 만한데 이 설정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톱스타>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진한 감동이 있다. 스타란 꿈을 이루기 위해 발악하듯 살다가 정상을 찍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태식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도 태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한정돼있고 그 동아줄을 잡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기에. 발악하지 않으면, 미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다는 당연하면서도 슬픈 진실을 영화는 태식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한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얻었음에도 잃은 것 같고, 성공했는데도 실패한 것 같아 계속 무언가를 취하려 하는 태식처럼 '인생의 역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속 가지라고, 이루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아 힘들다.

영화의 마지막, 태식의 매니저(이준혁 분)는 모든 것을 잃어가는 태식을 향해 마지막 바람을 전한다.

"네가 성공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혹시 이 말은 박중훈 감독이 첫 데뷔작 <톱스타>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하고픈 바람은 아니었을까? 박중훈의 열정이든, 진심이든 영화 <톱스타>는 감독으로서의 박중훈 만큼은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중훈 톱스타 김민준 엄태웅 소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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