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신관 공개홀에서 열린 <2012 KBS 연예대상> 포토월에서 대상후보인 해피선데이 1박2일과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이수근이 1박2일을 외치고 있다.

개그맨 이수근.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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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어김없이 고3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을 치렀고, 매서운 한파를 몰고 온 초겨울 추위는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필리핀에는 '하이옌'이란 몹쓸 태풍이 큰 피해를 일으키더니 연예계에는 11월마다 찾아온다는 괴담의 실체가 부상하며 한바탕 떠들썩했다. 최근 다시 불거진 괴담의 대표 격은 누가 뭐래도 '연예인들의 불법 도박 사건' 이다. 우리의 추억은 다시 한 번 배신당했다.

일요일만 되면 TV에는 산수화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국내 곳곳의 경치가 전시됐었다. 전국 팔도에는 어찌 그리 맛있는 음식이 많은지 발길 닿는 곳마다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들이 줄을 이었다.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차려진 진수성찬이 애꿎은 침만 꼴깍 삼키게 하더니, TV속 그들도 복불복이라며 누구는 먹고, 누구는 먹지 못한다. KBS 2TV 일요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 - 1박2일>(이하 <1박2일>)이야기다.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넉살 좋은 손자, 시청자들에게는 '땅보'라도 듬직한 구민일꾼이었던 이수근이 불법도박 혐의를 인정하고 한순간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연예인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더욱 우리를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보며 쌓았던 내 추억이 배신당한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에게 첫 예능 도전이었던 <1박2일>. 짜인 대본을 연기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이수근에게 순발력과 끼로만 승부해야 하는 예능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시청자들은 그가 <1박2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바라보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고, 질책을 퍼붓기도 했다. 응원과 질책 모두 그가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행히 그는 응원과 질책을 기반으로 프로그램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청자의 사랑과 함께 커간 것이다. 어느 샌가 이수근은 강호동의 뒤를 잇는 <1박2일>의 상징이 되었다.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에는 힘들었던 무명시절 이야기를 눈물겹게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는 정말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만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고액이 오가는 불법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한다.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사실은 말야..."로 포문을 여는 충격 고백과 맞먹는 이야기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그의 얼굴을 봐왔었기에 그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순박해보였던 국민일꾼 이수근 위에 도박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그와 함께했던 추억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DMCC에서 열린 예능전문채널 QTV의 기억의 예능 <20세기 미소년> 기자간담회에서 '핫젝갓알지'의 토니안(H.O.T)이 미소를 지으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가수 토니안. ⓒ 이정민


따뜻했던 이미지, 그래서 더욱 타격이 큰 도박의 굴레

일전에 푸근한 인상의 MC 김용만이 불법 도박 혐의로 뉴스에 오를 내릴 때도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그는 사건이 있기 몇 달 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그간 방송생활을 통해 겪은 시시콜콜한 일화부터 유강체제(유재석 - 강호동)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다는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털어놨었다.

그 진솔하고 따뜻했던 방송이 채 식기도 전에 '호빵맨' 김용만이 10억 여원의 돈을 도박에 쏟아 부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소 건실하고 진솔한 이미지를 가졌던 방송인이었기에 고액의 돈과 도박이라는 단어는 더욱 와닿지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예전에 <칭찬합시다> <느낌표> 등의 공익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사람이었지 않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이런 사건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긴 것 같다. 이수근을 시작으로 탁재훈, 토니안, 붐, 앤디 등이 줄줄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보면서도 반응은 이전보다 무덤덤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정도가 더한 사건들이 많아서인지, 그들에 대한 애정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 그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점점 그들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이나 도박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가수 신정환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의 도박으로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시청자들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그의 방송 복귀를 반대한다. 한 번은 넘어가도 두 번은 못 넘어가겠다는 여론이 조성된 것인데,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던 것은 그의 거짓말이었다. 일명 '뎅기열 드립'. 그는 도박 때문이 아니라 뎅기열로 입원 중이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한 장의 사진을 언론에 뿌렸다.

하지만 그 사진은 도박 행위를 가리기 위한 거짓임이 드러났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결국 자충수가 되어 그의 발목을 옥죄고 말았다. 가수보다는 입담 좋던 예능인으로 통하던 신정환은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그의 입담에 웃었던 시간들에도 역시 도박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신정환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던 모습

▲ 신정환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던 모습 ⓒ SBS


배신당한 추억...앞으로의 회복이 중요

연예인들의 수익구조는 일반인의 월급체계와는 다르다. 한꺼번에 목돈을 만지기 쉽도록 되어 있고 인기에 변동에 따라 벌이도 다르기에 그만큼 불안하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사업을 벌여 재테크를 하기도 한다. 유명세를 이용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명세'만' 이용해서 쉽게 망하기도 한다. 보통 스타라 불리는 연예인들은 큰돈을 운용하는 일이 잦다보니 돈에 대한 개념이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자리 잡는다. 사업을 말아 먹어 빚을 져도 거품처럼 불어나 있는 출연료 몇 회, 광고 몇 건 건지면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 자체가 일확천금을 부추기는 도박과 닮아 있다.

결국 14일, 검찰은 수억 원을 걸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사설 스포츠토토 도박을 한 혐의로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수근은 2008년 1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맞대기' 도박에 3억 7000만원, 탁재훈은 2008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맞대기' 도박에 2억 9000만원 상당, 토니안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맞대기' 및 불법 인터넷 스포츠토토 도박에 4억원 상당 걸고 참가하여 상습도박한 혐의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달빛프린스>기자간담회에서 공동MC인 방송인 탁재훈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가수 탁재훈. ⓒ 이정민


그들과 함께 웃고 웃었던 추억은 이제 색이 바래게 됐다. <1박2일>에서 정겨웠던 이수근과 <상상 플러스>에서 배꼽을 뺄 정도로 웃겨줬던 탁재훈. 1세대 아이돌이었던 HOT의 귀여움 담당 토니안을 이제 나이브하게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수천만원 대의 도박혐의로 기소된 붐, 양세형, 앤디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과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이들이 이런 식의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참 안타깝다.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만 같은 기분, 지울 수 없다.

충분한 반성의 시간이 지나고 대중의 마음이 누그러지면 그들은 다시 방송에 복귀하겠지만, 한동안 대중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들을 대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는 이마저도 토크쇼의 에피소드로 활용하는 그들을 보게 되겠지만 그렇게 이번 실수는 그들을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될 것이다.

연예인도 사람이기에 실수는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우리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차지하고 있었기에 더 안타까울 뿐이고 기이한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다시 한 번 벌어진 이러한 사건들로 추억은 그렇게 또 배신당했지만, 다음에 다시 쌓아갈 추억은 절대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토니안 탁재훈 이수근 불법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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