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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의자>의 포스터

영화 <용의자>의 포스터 ⓒ (주)그린피쉬픽쳐스


북한 최정예 특수요원 지동철(공유 분)은 조국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북한은 그를 이용한 뒤에 매몰차게 버리고 가족까지 몰살시켜 버린다. 조국에 대한 배신감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깊이 안은 채로 남한으로 망명한 그는 아내와 딸을 죽인 뒤에 남한으로 망명한 특수요원을 찾아내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보살펴 주던 박 회장(송재호 분)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 지동철. 그러나 배후에서 박 회장 암살을 명령한 국정원 실장 김석호(조성하 분)는 도리어 지동철을 사건의 용의자로 조작하고 과거 지동철에게 부대원을 잃었던 민세훈 대령(박희순 분)에게 지동철을 쫓게 한다. 지동철은 박 회장이 죽기 전에 자신에게 맡긴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조사하며 배후에 도사린 음모를 밝혀간다.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 (주)그린피쉬픽쳐스


원신연 감독을 기억하는 이들은 <세븐 데이즈>의 숨 가쁜 호흡을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소수는 한국 영화에서 코엔 형제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구타유발자들>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데뷔작은 싸구려 호러 영화 <가발>이다.

이처럼 넓은 스펙트럼은 장르에 대한 큰 관심이었을까? 불행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행보는 한국 영화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방식에 가깝다. <가발>은 호러의 유행에 편승했고, <구타유발자들>은 한때나마 가능했던 다양성이 준 선물과도 같다. <세븐 데이즈>는 한국 영화의 스릴러 시대를 예고했던 서막이다. 원신연은 그렇게 버텼다.

원신연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한 편의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였지만, <세븐 데이즈> 이후 진행하던 <태권브이> 프로젝트는 예기치 못했던 공백이 되고 말았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는 <태권브이>가 아닌 <용의자>로 돌아왔다.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 (주)그린피쉬픽쳐스


북한에서 온 남자를 소재로 한 영화로는 멀게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연 <쉬리>부터 가깝게는 <동창생>이 존재한다. 특히 근래에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몇 편의 영화를 일컬어 영화평론가 듀나는 '북한에서 온 인간병기'라고 칭했다. <용의자> 역시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최정예 특수요원을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같은 맥락의 영화에 속한다.

이야기의 흐름에선 <솔트>가 떠오르고, 민세훈이 지동철을 점차 이해해가는 과정에선 <도망자>가 연상된다. 액션 등의 전체적인 형상은 제이슨 본(맷 데이먼 분)을 내세운 <본> 시리즈와 비교를 면하기 어렵다. 여러 영화가 떠오르는 건 대기업이 주도하는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의 현주소를 방증한다. 벤치마킹에 몰두하는 현재 상황에서 원신연 감독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구타유발자들>에서 기막힌 상황을 만들어내고, <세븐 데이즈>로는 빠른 속도의 전개를 선보였던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에선 액션을 연료 삼아 무한 질주한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공유라는 부드러운 남자 배우를 드라이버로 내세워서 말이다. 공유를 앞세워 액션의 수치를 극대화하고, 이야기의 톤은 <동창생>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비해 현실에 가깝도록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용의자>에서 몸과 몸이 만들어 내는 무술의 타격음과 자동차가 맞부딪치며 생성하는 충돌음은 격렬하다. 여기에 한강을 낙하하고, 암벽을 오르며,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등 다양한 액션 장면을 곁들인다. 국내와 홍콩, 푸에르토리코 등 해외를 오가며 펼쳐지는 <용의자>의 액션은 마치 <007>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자신을 사냥하려는 자들을 피해 끊임없이 도주하는 지동철은 한 마리 야수처럼 보인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를 위해 남은 몸뚱이뿐이다. 그는 별다른 말이 없다. 어쩌면 상실감으로 말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의 입이 아닌 육체로 말한다. 특히 아내와 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동철이 감옥을 빠져나가는 장면은 절망에서 복수로 바뀌는 그를 육체로 잘 표현한다.

원신연 감독은 "액션도 드라마다"고 밝혔듯이 액션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네고자 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잉이라는 점이다. 액션 장면을 보다 지칠 정도로 넘쳐 흐른다. 마치 대사가 많은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부담스러움을 연상케 한다. <용의자>는 다른 의미로 말이 많은 영화다.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영화 <용의자>의 한 장면 ⓒ (주)그린피쉬픽쳐스


최근 북에서 온 남자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은 총기가 등장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상황이란 판단에서 기인했다. <회사원> 같은 영화가 보여준 총격 장면은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지만, 남북한의 공작원이 벌이는 총격 장면은 한층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단순히 총기가 나오게 하는 구실로 남북한의 관계를 소비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 그만큼 최근 등장한 북에서 온 남자들의 영화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구석이 많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동창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현실의 공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던 영화로 <베를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용의자>는 이야기 전개에서 현실감을 불어넣으려 애썼지만, 마지막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현실에선 북한이 장성택을 공개 처형하는 등 공포 정치로 가는데, 영화는 북한의 식량난을 남한이 해결한다는 천진난만한 꿈을 꾼다. 이것은 비단 <용의자>만이 아닌 근래 등장한 북한을 다룬 대부분 영화가 보여준 한계이다.

북에서 온 남자들의 영화가 하나의 한국형 장르로 발전하려면 '총기'와 '잘생긴 북한 남자' 외에 다른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조폭 코미디 장르가 욕설로 점철된 코미디를 벗어 던지고 갱스터 장르로 변화하며 진화했던 것처럼 북에서 온 남자들에게도 무엇이 필요하다.

현실의 정치 세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문법적으로 한층 세련된 액션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처럼 반복되는 느낌만 든다면 머지않아 일시적 유행으로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용의자>는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준다.


용의자 원신연 공유 박희순 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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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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