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드라마 업계에 매우 다사다난한 해였다. 김수현, 김은숙 등 유명작가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고 김수현, 전지현, 송혜교, 조인성 등 그동안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톱스타들이 컴백을 결정하는 등 반가운 소식도 들렸지만 <야왕><오로라 공주> 등으로 촉발된 막장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한 해기도 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2013년 방송된 드라마는 무엇이 있었고, 또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여기, 바로 그 정답이 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KBS 월화드라마

2013년 KBS 월화드라마는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기대작으로 손꼽힌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망신을 톡톡히 당했지만, 오히려 기대치 않았던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해 KBS 드라마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소재의 드라마로 승부를 보려던 전략은 훌륭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김혜수 주연의 <직장의 신>

김혜수 주연의 <직장의 신> ⓒ KBS

올해 초부터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주중에 방송되는 드라마 모두 극심한 부진에 빠져들면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방송 내내 한 자릿수 시청률을 맴돌았던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패는 특히 아쉬웠다. 광고 디자이너 이제석의 삶을 모티브로 그동안 드라마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광고업계를 배경으로 내세웠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영화배우 진구의 첫 드라마 주연작으로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이 드라마는 막상 뚜껑이 열리자 느슨한 스토리 전개와 매력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고, 결국 최종시청률 6.3%(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패로 흉흉한 분위기가 계속된 시점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직장의 신>의 김혜수. 그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 연기로 침체기에 빠져든 KBS 월화드라마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과연 30년 내공의 베테랑 여배우다운 '강력한 한 방'이었다.

일본드라마 <파견의 품격-만능사원 오오마에>를 리메이크한 드라마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심도 있게 그려내는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좋은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고, 그 결과 <구가의 서><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의 대작들 사이에서도 15%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김혜수는 2013 KBS 연기대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주원 주연의 <굿닥터>

주원 주연의 <굿닥터> ⓒ KBS

그러나 이 같은 좋은 분위기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부활> <마왕>을 쓴 김지우 작가의 '복수 3부작' 시리즈의 완결편인 <상어>가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톱스타 김남길과 손예진이 힘을 보탰지만 무거운 소재와 진지한 스토리를 부담스러워 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방송 내내 한 자릿수 시청률을 맴돌았던 <상어>는 최종회에서도 10%에 턱걸이하는 성적으로 조용히 퇴장했다.

다행인 것은 <상어>의 실패를 곧 <굿닥터>의 성공으로 만회했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시청률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은 주원의 자폐아 연기가 돋보였던 이 드라마는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의학 드라마 특유의 급박하고 스릴 넘치는 전개, 여기에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을 보기 좋게 녹여내며 20%대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흥행'이었던 것이다.

<굿닥터>의 흥행에 고무된 KBS는 이후, 윤은혜-이동건 주연의 <미래의 선택>과 이범수-윤아 주연의 <총리와 나>를 연달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굿닥터>에서 누린 영광을 다시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4%대 시청률로 초라하게 안방극장을 떠난 <미래의 선택>과 5~6% 시청률에서 헤매고 있는 <총리와 나>로 인해 KBS는 2013년의 마지막을 쓸쓸히 보내게 됐다.

KBS 수목드라마, 흉작 중의 흉작...그리고 비밀

월화드라마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면 수목드라마는 아예 흉작 중의 흉작이었다. 불운의 시작은 <아이리스2>였다. 최고 시청률 35.5%를 기록한 <아이리스>의 후속작으로 올해 KBS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 <아이리스2>는 스타 PD 표민수와 <추노> 커플 장혁-이다해의 결합으로 방송 전부터 안팎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KBS 사장까지 드라마 홍보에 열을 올릴 정도로 KBS의 모든 시선이 <아이리스2>에 향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로 출발한 <아이리스2>는 2회 만에 경쟁작인 SBS <그 겨울, 바람에 분다>에 역전을 허용했고, 급기야 중반부터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까지 떨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2백억 대의 제작비가 무색할 만큼 실망스런 성적이었다. 어설픈 연출과 설득력을 잃어버린 스토리 라인, 첩보물 속 지겨운 사랑 타령이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아이리스2> 실패의 후유증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추노>의 흥행 신화를 이어가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한 이동욱 주연의 <천명>은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밟아보지 못했고, 연기파 배우 엄태웅의 사극 도전작이었던 <칼과 꽃> 역시 극심한 부진 양상을 보이며 같은 시간대 꼴찌에 머물렀다. 2013년을 맞아 KBS가 야심 차게 구성했던 '대작 라인업' 세 편이 줄줄이 망신을 당한 것이다.

 지성-황정음 주연의 <비밀>

지성-황정음 주연의 <비밀> ⓒ KBS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작품이 바로 <비밀>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처절한 인생과 사랑, 그리고 복수를 촘촘하고도 세련되게 그려낸 <비밀>은 방송 4회 만에 10%대 시청률에 진입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며 놀라울 정도로 탄탄한 고정 시청자 결집에 성공했고, 종영하는 그 순간까지 <상속자들><메디컬 탑팀>을 가볍게 누르며 같은 시간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비밀>의 성공에는 유보라-최호철 작가의 혼신이 담긴 대본과 주연배우 황정음의 연기변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황정음은 기존의 밝고 재기발랄한 이미지를 확실히 털어내고 '눈물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받으며 한층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선보여 배우로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정음은 김혜수, 주원과 함께 KBS 연기대상의 주요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비밀>의 반짝 흥행 뒤에 또다시 짙은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단 사실이다. '한류 프린스' 장근석과 '국민 여동생' 아이유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예쁜 남자>는 최근 2%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올 한해 방송된 드라마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KBS 수목드라마가 2014년 반전의 카드를 마련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KBS 일일-주말드라마, 막장이 판쳤다

주중 드라마가 슬럼프를 겪는 와중에 KBS가 그나마 믿을 구석이라곤 '철옹성'인 일일과 주말 드라마였다. 일일드라마 <지성이면 감천>과 <사랑은 노래를 타고>는 모두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했고, 주말드라마 또한 신드롬을 일으킨 <내 딸 서영이>를 시작으로 <최고다 이순신><왕가네 식구들>까지 30%대 고지를 무난히 점령했다. 여기에 7시대 일일드라마로 첫 편성된 <루비반지>가 2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성공 신화를 썼으니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성적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았다. 일일과 주말 드라마 모두 '막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성이면 감천>은 이해인의 이해할 수 없는 악행과 진부하기 짝이 없는 출생의 비밀이 전부인 드라마였고, <최고다 이순신> 또한 지루한 출생 공방과 사랑 타령으로 방송 내내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 KBS


그중에서도 <루비반지>와 <왕가네 식구들>은 막장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언니와 동생이 교통사고로 얼굴이 뒤바뀐 채 산다는 스토리의 <루비반지>는 비현실적 설정만큼이나 황당하고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복수, 치정, 출생의 비밀, 낙태와 유산, 횡령, 협박, 살인방조 등의 소재들이 난무한 탓에 주연배우 임정은은 "막장 아닌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는 다소 '비겁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왕가네 식구들>의 막장은 이보다 더한 수준이다. <소문난 칠공주><수상한 삼형제> 등으로 막장 드라마의 대모격이 된 문영남 작가의 신작인 <왕가네 식구들>은 한결같이 과장된 캐릭터들이 펼치는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센' 설정과 대사가 있어야만 시청률이 올라가는 현 상황을 보노라면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우울했던' KBS의 2013년, 2014년은 달라질까

이처럼 올 한해 KBS의 드라마 농사는 크게 '별 볼일' 없는 흉작 수준이었다. <내 딸 서영이><직장의 신><굿닥터><비밀>을 제외하고는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 거의 없고, 운 좋게 시청률이 잘 나왔다고 하더라도 막장 논란으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우울했던 2013년을 보냈던 KBS는 과연 작금의 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수습하고 2014년에 보다 진일보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을까. 주중 드라마의 심각한 침체와 공영방송의 체면을 잃어버린 일일-주말드라마의 막가파식 전개를 KBS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직장의 신 굿닥터 왕가네 식구들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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