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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돈 존>의 한 장면

영화 <돈 존>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돈 존>은 현실에서의 섹스보다 야한 동영상이 제시하는 '섹스 판타지'에 탐닉하는 젊은 남자 돈 존(조셉 고든 래빗 분)의 고백담이자 성장담이다. 실제로 영화는 존의 내레이션에서 시작해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관객은 존의 일기장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는 존이 일주일에 한 번 고해성사하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존은 남자의 표본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여기서 여성 관객이 주의할 점이 있다. 모든 남자가 존처럼 야동에 환장했다고 오해하지는 말 것. 혹시나 이 영화를 보다가 남자친구와 존의 싱크로율을 맞춰보겠다며 남자친구 컴퓨터의 접속 사이트 목록을 조회해 보려고 한다면 이쯤에서 그만두시길. '팩트'는 이거다. '대부분의 남자는 야동을 본다. 하지만 존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할 정도로 환장해 있지 않다.'

영화에서 존이 야동에 탐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서 직접 부딪는 섹스가 야동이 주는 쾌감만큼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존이 마냥 야동으로만 욕정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존이 야동을 보는 궁극적인 목적은 현실에서 만난 여자를 야동 속 여자처럼 다루며 야동에서 질펀하게 다뤄지는 체위와 짓거리가 주는 만족을 직접 느끼고 싶어서다. 그래서 존은 자신의 판타지를 충족시킬 여자를 찾기 위해 클럽에 간다.

존은 클럽에서 여자들의 얼굴과 몸매에 점수를 매기고, 고득점을 획득한 여자에게 부비부비 댄스로 작업을 걸고, 작업녀를 자신의 침대로 안내한다. 여기까지 존의 성공률은 90%에 가깝다. 이 작업에 안 넘어온 여자는 오직 바바라(스칼렛 요한슨 분)뿐. 섹시하게 넘긴 올백 머리에 잘 키운 근육이 도드라져 보이는 스판 소재의 티셔츠,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동안 외모까지. 여자들이 존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존이 그녀들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존은 작업에는 저돌적인 면모를 드러내지만, 이상하게도 섹스할 때만큼은 상대의 요구에만 순응한다. 야동 선행학습(?)을 통해 이론을 충분히 익혔다면 현실에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존은 도통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존은 다시 야동을 찾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이 걸려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 것일까? 고해성사 때 그것마저 고백하는 것은 수치스러울까 봐 그랬던 것일까? 영화는 존이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유를 에스더(줄리안 무어 분)를 통해 설명한다. 그녀가 진단한 존의 문제는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즉, 존은 상대와 교감하지 않고 그저 관계에서 발현되는 쾌락에만 집중한 것이다.

이는 존의 문제만은 아니다. 에스더는 존의 여자친구였던 바바라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바바라는 존이 자신과의 관계 후에 몰래 야동을 보는 모습을 목격하고 치를 떨었다. 다행히 존이 그럴싸한 변명으로 임기응변에 성공해 일단락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꼬리는 밟히고 말았다. 똑똑한 컴퓨터가 일일이 존이 접속한 사이트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 당시 상황을 두고 바바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첫 데이트 기억해? 내가 딱 하나 부탁했어,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 말을 듣고도 존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바라가 존에게 바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바바라는 존을 마치 애완견처럼 다뤘다. 바바라의 눈에 존은 클럽에서 시간을 탕진하는 남자였고, 섹시한 느낌을 물씬 풍겼지만 남자친구로 삼기에는 좀 가벼운 남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존을 길들였다.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몸과 마음을 다 주겠다는 게 그녀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존은 그녀의 말마따나 학교에 다니고, 섹시한 매력을 해치는 청소는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면서 몸에 맞지 않는 예의를 본래의 자기 성품인 양 흉내 내기도 한다. 존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녀는 이런 존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을 지킨 채 자신의 몸을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내놓는다. 존의 판타지는 채워지지 않는다. 다시 컴퓨터를 켜는 수밖에.

 영화 <돈 존>의 한 장면

영화 <돈 존>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돈 존>은 19금의 자극적인 카피 문구로 홍보됐지만, 결국 남녀 혹은 가족 사이에 필요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이란 평상시 서로의 바람에 잘 따라주는 '기브 앤 테이크' 식의 암묵적 합의일 수도 있고, 잠자리에서 상대가 원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들어주며 형성되는 교감일 수도 있다. 존은 후자의 교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섹스할 뿐이었고, 바바라는 전자의 합의가 아닌 자신이 만든 기준에 존을 끼워 넣으려 했다. 존의 동생이 날린 일갈과 에스더의 조언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한 사람이 일방적이며 이기적일 때 관계의 영속은 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소통뿐이다. 이후 존은 헤어졌던 바바라와 재회하지만 문제를 풀지 못하고 헤어진다. 대신 그녀의 곁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에스더가 남았다.

<돈 존>은 기선제압이 좋다. 존의 야동 감상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분절된 컷의 연결만으로 세련된 리듬감을 만들어 낸다. 이 탁월한 리듬간은 내용을 전달하는데도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다. 감각적인 편집 기술이 영화의 리듬감을 조성하는 주된 요소로 활용되는데 존이 야동을 즐기는 장면, 클럽에서 작업을 거는 장면, 고해성사하는 장면에서 편집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세 장면의 특징은 동일한 쇼트를 반복해서 사용하면서도 리듬감이 살아 있어서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특정 장면에 묘한 일체감도 주고 있으니 영화의 쇼트 구성이 안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리드미컬한 장면이 영화 초반에 몰리면서, 중반부 이후는 두 주인공의 변화된 관계처럼 다소 권태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강력한 초반러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루'였다고나 할까. 초반에 과잉된 영화의 에너지는 결국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심하게 방전된다. 이에 따라 결론은 성급해지고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진의는 약해진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호흡 조절은 아쉽다. 박장대소하기는 힘들지만 몰래 야동을 보는 것처럼 키득거릴 수는 있는 영화다. 뒷심이 딸린 것이 문제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면 시간은 잘 갈 것. 다행히 상영시간도 짧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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