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무결점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김연아는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무결점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김연아는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 연합뉴스


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21일 새벽 3시 50분(한국 시각),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얼음 밖으로 나왔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이후 꼬박 18년 만이다.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났다. 은퇴 무대, 수천만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빙판 위에 선 그는 늘 그랬듯 의연했다.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3Lz+3T) 콤비네이션 점프를 가볍게 뛰며 기분 좋게 연기를 시작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3F),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3S+2T) 콤비네이션도 침착하게 수행했다. 스핀과 스텝 시퀀스도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지난 1월 소치올림픽 리허설 무대로 택한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싱글 처리했던 마지막 점프 더블 악셀(2A)도 이번에는 완벽했다. 체력을 키운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를 첫 점프처럼 높이 도약한 뒤 깨끗하게 착지했다.

의연했던 피겨 여왕, 스승과 포옹하며 울컥

김연아는 탱고의 선율에 맞춰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안무를 깔끔하게 수행해나갔다. 마지막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끝까지 집중해서 경기를 끝낸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클린으로 장식했다. 그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4분 10초간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한 김연아의 경기가 끝났다. 자신의 바람대로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김연아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슴을 누르며 눈물을 흘리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연아가 관중석에 인사를 건넨 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첫 스승, 류종현 코치와 눈을 맞춘 뒤 포옹을 하던 김연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7살 꼬마를 세계적인 피겨 선수로 길러낸 스승이었다.

스승과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성적표를 기다렸다. 점수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고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연아는 기술점수(TES) 69.69점과 예술점수(PCS) 74.50점을 얻어 총점 144.19점을 받았다. 그는 점수가 발표되자 예상했다는 듯 웃어넘겼고, 양 옆에 앉은 신혜숙-류종현 코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144.19점, 자신이 밴쿠버올림픽 때 세운 프리스케이팅 세계신기록에는 5.87점 모자랐고 소치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5.48점이 부족했다. 심판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은메달이라 판단했다.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편파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클린 연기. 은메달에 그칠 경기력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며 피겨 여왕을 응원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등 피겨 전설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금메달은 제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분 좋고 감사드린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김연아 경기가 끝난 직후 한 포털 사이트에 "연아야 고마워"란 문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여왕에게 전하는 찬사였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가 국민에게 준 행복은 금메달 그 이상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연기한 소녀는 1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과 안정된 점프를 선보였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5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5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5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피겨 여왕' 김연아, 피겨 역사 속으로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포함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했다.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다.

간절히 원하던 세계챔피언 타이틀은 두 번(2009년, 2013년)이나 따냈고 10년 넘게 간직해 온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꿈도 4년 전에 이뤘다. '밴쿠버올림픽 챔피언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꿈을 이룬 김연아의 고민이 시작됐다.

2011년 세계선수권 출전 이후 1년여간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은퇴 무대를 소치올림픽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곳에 후배 선수들과 함께 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끝냈어도 될 선수 생활을 연장했고 지독한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반이 흘렀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됐고  2월 21일 새벽 3시 46분,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 출전을 위해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 중 마지막 순서로 빙판에 선 김연아는 끝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후회없는 연기를 펼쳤고,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자신의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데뷔 무대에서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하던 어린 소녀는 이후 기술력과 표현력, 정신력과 신체 조건까지 피겨 선수로서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춰나갔다. 수년간 피겨 여왕 자리에서 군림했던 김연아가 2014년 2월 21일,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록 그는 얼음을 떠나지만 김연아가 걸어온 위대한 여정은 국민과 세계 피겨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연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