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12년>은 2월27일 개봉했다

<노예12년>은 2월27일 개봉했다 ⓒ 판시네마(주)

3월 2일 미국에서는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이 열린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극장가에는 유력한 수상 후보작들이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2월 20일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데이비드 O.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이 개봉한데 이어 2월 27일 9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스티브 맥퀸의 <노예12년>이 개봉했다. <노예12년>은 <아메리칸 허슬>, <그래비티>와 함께 강력한 작품상 후보다.

아프리카계 영국인 감독 스티브 맥퀸은 이미 화가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뛰어난 예술가이다. 1999년 영국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터너 상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대영제국 훈장도 받았다. 2008년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보비 샌즈의 옥중투쟁을 그린 데뷔작 <헝거>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해 이미 영화적 재능도 인정받고 있다.

고통스러운 2시간의 노예체험

<노예12년>은 자신의 비극적 체험을 옮긴 솔로몬 노섭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841년, 음악가 솔로먼 노섭은 뉴욕에서, 당시 대다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는 달리, 자유인으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높은 보수를 주겠다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워싱턴에 가게 되고 만취상태에서 인신매매꾼들에게 납치된다. 폭행과 고문에 의해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가 된 솔로몬 노섭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천국인 남부의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그리고 12년 동안의 악몽 같은 노예생활이 시작된다.

카메라는 두 시간 동안 솔로몬 노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수난을 담담하게 재연한다. 스티브 맥퀸은 극적 설정과 영화적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잔혹할 정도로 차분하고 단조롭게(마치 솔로몬 노섭의 노예이름처럼)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는데 대부분의 상영시간을 집중시킨다.

2시간 동안 타인의 고통을 무기력하게 감상(?)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 타인이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약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각적으로 정제된 화면과 한스 짐머의 강렬한 음악이 아니라면 <노예12년>은 마치 TV고발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노예12년>은 2시간 내내 관객들을 지옥 같은 노예체험으로 밀어 넣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은 솔로몬 노섭이 풀려나는 장면이다. 노예들을 배경으로 남겨 둔 채 마차를 타고 '자유'를 찾아가는 솔로몬 노섭의 클로즈업은 해방의 희열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의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그의 자유는 남겨진 노예들의 비극을 극적으로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스티브 맥퀸은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조차 관객들에게 아무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냉정한 연출법은 관객들을 메시지에 더욱 집중하도록 이끈다.

 앱스역의 마이클 파스벤더의 악마적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앱스역의 마이클 파스벤더의 악마적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 판시네마


<노예12년>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치에텔 에지오포(솔로몬 노섭 역)는 절제되고 차분한 연기로 비극적 상황에 놓인 솔로몬 노섭의 심리를 충실하게 재연했다. 악질농장주 앱스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팻시 역의 루비타 니용고도 눈 여겨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노예12년>의 가장 큰 영화적 즐거움은 뛰어난 조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이다. BBC의 TV드라마 <셜록>으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우량주로 떠오르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윌리엄 포드 역)와 악질농장주 앱스로 등장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특히 마이클 파스벤더의 악마적인 연기는 왜 할리우드가 그를 주목하는지 스스로 입증한다. 또한 인상적인 단역 수준으로 잠시 등장하는 브래드 피트(베스 역)와 폴 지아마티(프리먼 역)를 만나는 것도 <노예12년>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노예12년>은 관객들에게 다소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영화다. 극적 설정을 배제하고 오직 비극적 상황을 충실하게 재연하는 스티브 맥퀸의 연출방식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이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통해 오락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지한 관객들에게 <노예12년>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과연 해방되었을까?

노예수입이 금지된 1807년까지 노예사냥꾼들에게 붙잡혀 노예선에 오른 아프리카인은 약 500∼600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살아서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노예는 150만 여 명에 불과했다. 4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악질농장주 앱스의 성적 학대에 시달리던 팻시는 플랫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하지만 당시 노예들에게는 죽을 권리조차 없었다.

앱스의 대사처럼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소유물'이었다. 그것은 단지 일부 악질농장주의 삐뚤어진 생각이 아니라 노예의 공식적인 법률적 지위였다. 1857년 미국 대법원은 드레스콧이라는 아프리카계 여성에게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 헌법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조항의 '모든 사람'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친절한(?) 해석까지 덧붙였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이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부는 물론 북부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은 지속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실질적인 해방으로 한 걸음 다가간 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의 결과였다.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민권운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어느 정도 완화됐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의 인종차별은 진행형이다.

 팻시는 솔로먼 노섭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팻시는 솔로먼 노섭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 판시네마


지금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평균 연봉은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들의 65%에 불과하다. 2010년 미국 국세조사국에 따르면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 가구의 중간 가계 소득(median household income)은 11만729달러(약 1억2800만 원)였다. 반면 아시아계 6만9590달러(약 8천53만6천 원), 히스패닉계 7424달러(약 859만6000원), 아프리카계 4955달러(약 573만7000원)로 앵글로 색슨세대의 소득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세대보다 무려 22배가 많았다. 2005년과 비교할 때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아프리카 미국인 세대의 자산은 약 63%가 감소했지만 앵글로 색슨세대는 23%만 감소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업률도 앵글로 색슨계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2003년 11월 현재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의 실업률은 5.2%였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업률은 10.2%였다. 오바마의 집권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9년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10.2%였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업률은 15.7%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법적 차별도 여전하다. 대다수의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생각한다.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범죄율은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은 물론 다른 유색인종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무색무죄, 유색유죄라고 할 수 있다.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살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의 경우보다 4배가 많다. 미국 교도소 수감자의 47%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15%는 히스패닉계이다. 교도소 수감자의 60%이상이 유색인종이다. 마약 범죄로 체포된 사람의 35%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실형을 받은 사람의 53%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30세에서 34세의 아프리카계 남성들 중 22%가 전과자다. 반면 앵글로 색슨계 전과자는 단 3%에 불과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들보다 범죄성향이 더 강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미국보다 범죄율이 낮은 나라가 적지 않다. 유독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범죄율이 높은 이유는 인종차별 때문이다.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오바마 시대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9년 7월16일 이 같은 미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자기 집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하버드대 교수

이날 하버드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교수는 자신의 집 현문 앞에서 체포됐다. 그의 혐의는 어처구니없게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 했다는 것이었다. 게이츠 교수는 미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학의 선구자로 1997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의 미국인으로 선정할 정도로 저명한 학자다.

당시 경찰은 어느 남성이 어깨로 문을 밀면서 열려 하고 있다는 한 여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은 게이츠 교수가 신원을 밝히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이런 일은 흑인 남성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해 치안문란 혐의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게이츠 교수의 증언은 달랐다. 그는 면허증과 하버드대 교수증까지 제시하고 자신의 집이라고 누차 주장했지만 경찰이 믿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58세의 비무장한 게이츠 교수를 수갑까지 채워 경찰서로 끌고 갔다. 물론 과잉대응을 한 경찰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분노를 다시 한 번 폭발시켰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츠 교수와 그를 체포한 경찰을 백악관에 초청해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화해를 주선했다. 오바마의 중재로 게이츠사건은 결국 어물쩍 넘어갔다.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도 인종차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맥주를 마시며 화해를 주선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차별이 사라지 않는 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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