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과 융합은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 혼합이 단순히 '섞는 것'이라면 융합은 '서로 녹아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합은 혼합보다 자연스럽다. 어색하지 않게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어서다.

선거특집 '선택 2014'로 진행된 지난 2주간의 MBC <무한도전>은 예능에 시사를 '혼합'하는 게 아니라 '융합'함으로써 큰 울림을 줬다. '이야기'에 '시사'를 거부감 없이 녹여냈다는 얘기다. 억지로 시사와 예능을 섞어보려는 '시사쇼'들이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는 요즘이기에 더욱 돋보였다.

 지난 3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선택 2014> 한 장면

지난 3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선택 2014> 한 장면 ⓒ MBC


우선 가장 눈의 띈 건 '안전' 프레임이다.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현재 우리 사회는 '안전'을 부르짖고 있다. 특히 언론은 안전 관련 기획기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런 시사적 요소를 <무한도전>은 상황극 속에 제대로 녹여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멤버들이 속도를 지키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방법으로다. 특히 승리에 눈을 멀게 하려고 '추격전'이라고 속인 제작진의 설정은 회사 이익만을 생각하고 정작 안전은 소홀히 한 세월호 선사를 떠올리게 하는 '신의 한 수'였다.

여기서 제작진이 일반적인 속도 제한 구역이 아니라 굳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장소를 잡은 건 그 의미심장함을 더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 프레임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모든 어른이 못다 핀 어린 꽃들에게 '미안합니다'를 외치는 요즘이다. <무한도전>의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위반' 설정은 일상생활에서 어른들이 그 미안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시사적 요소 녹여내면서도 '재미' 잃지 않아

또 하나, <무한도전>의 상황극에 녹아든 시사적 요소는 '정치 풍자'였다. 속도위반 검증 이후 이어진 선거유세전에서 정형돈의 'SNS 알바단'은 시청자들이 지난 대선의 한 국가기관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아이돌과의 인맥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SNS를 선거에 이용하는 모습은 특유의 풍자 정신을 잘 드러냈다.

선거 특집 1탄의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이런 정치적 풍자는 정형돈의 입에서 먼저 시작됐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의 시청률 위기에 대응할 콘트롤 타워가 없다"면서 "시청률 재난본부 설치를 통해 전문화된 위기 극복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얘기를 한다.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대통령의 사후약방문식 발언이 떠오르며 섬뜩한 즐거움을 주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의 1인자인 유재석도 이 토론회에서 풍자적 발언을 잊지 않았다.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고, 더 위험한 것은 위기인지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그리고 위기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 혼자 살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그겁니다." 세월호 사태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인 정부 조직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시사적 요소를 모두 녹여내면서도 <무한도전>은 예능의 '재미'를 결코 잃지 않았다. 노홍철의 '과잉 흥분 유세'는 고기의 마블링처럼 방송 중간 중간에 깨알 같은 웃음을 줬고, 유재석의 목욕탕과 에어로빅 센터 방문은 안정적으로 웃음 평균점을 넘겼다. 특히 유재석과 김영철의 <밀회> 패러디 '물회'는 방송 이후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큰 재미를 줬다.

톨스토이는 '이야기는 전염병처럼 작동한다'고 했다. 이야기에 내포된 생각과 정서, 가치관이 수용자를 감염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가진 파급력은 크다. <무한도전>은 이런 '이야기의 힘'을 잘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미있는 상황극을 만들고 거기에 메시지를 심는다. 심어진 메시지는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시청자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4년 전의 <무한도전> 지구온난화 특집을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는 건 그래서다. 이번 선거특집도 그런 '레전드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능에 시사를 섞으려면 이렇게 섞어야 한다. '강적들', '대변인들'같은 '시사쇼'처럼 단순히 '장르 혼합'만 할 게 아니다.

무한도전 선거특집 세월호 예능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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