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를 두고 '기레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는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단어로, 부적절한 태도로 기사를 보도하는 기자를 풍자하는 말이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곧, '자극적인 소재'로 일관하며 비판의 대상을 엉뚱한 곳으로 설정한 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담긴 말일 것이다.

과연 그것이 기자만을 탓할 문제일까?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연주 전 <KBS> 사장·주진우 <시사인> 기자·한윤형 <미디어스>기자 등을 인터뷰하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언론으로서의 사명감을 버리고 권력의 길을 택한 보수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언론의 생태계를 조명한다.

<슬기로운 해법>이 보여주는 '조중동의 민낯'

 영화 <슬기로운 해법> 중 한 장면. 노무현 정부 당시 '종부세' 논란을 일으킨 보수언론은 사실 그 부과대상이 '상위 3%'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 중 한 장면. 노무현 정부 당시 '종부세' 논란을 일으킨 보수언론은 사실 그 부과대상이 '상위 3%'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 시네마달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자 보수언론 조중동은 검찰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여론재판식 기사를 쏟아냈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자 보수언론 조중동은 검찰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여론재판식 기사를 쏟아냈다. ⓒ 시네마달


소위 '조중동'으로 압축되는 보수언론의 민낯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2012년 태풍 '볼라벤'을 보도하며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가' 사진을 1면에 게재한 조선일보의 기사로 시작한다. 이는 3년전 사진을 사용한 오보였으며 왜곡된 기사였다. 그리고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때문에 대학교 진학에 실패했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사연'을 보도한 사례가 이어진다.

이 기사도 마찬가지로 오보였으며, 실제로 당시 열차는 정상운행 중이었다. 영화에 따르면 해당기사는 파업을 비난하며 철도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두 기사 모두 1면에 크게 실렸던 것과 달리, 정정보도는 뒷면 구석에 작게 게재되고 잊혀졌다.

이 뿐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으로 제시된 '종부세(종합부동산세)'를 대하는 보수언론의 태도 역시 가관이었다. 그들의 과장되고 선정적인 보도는 국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세금폭탄'과 같은 단어로 공포심을 건드린 기사 때문에 오해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에 크게 반발했다. 정작 종부세가 건물을 소유한 사람 중에서도 상위 3% 정도만 과세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보와 과장으로 얼룩진 조중동의 펜 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귀향한 후 그를 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과정에도 언론이 개입한다. 2개월에 걸쳐 노무현의 비리혐의 수사방향과 관련인물·형량을 물밀듯이 보도한 조중동의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사냥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압박을 견디다 못한 한 사람의 자살로 마무리되었다. 검찰의 수사발표가 있기도 전에 이미 한바탕 언론의 여론재판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매장된 셈이었다.

이와 같이 <슬기로운 해법>은 보수언론을 자칭하는 거대 언론사들이 진실만을 보도하는 책임감있는 자세와는 동떨어진 행태를 보여온 역사를 보여준다. 언론의 자격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그들은 스스로 이를 내팽개친 꼴이었다. 그리고 그 부패한 언론의 그림자에는 왜 그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숨어있었다.

춤추는 언론 뒤에는 '광고' 휘두르는 삼성이 있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조중동'으로 압축되는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조중동'으로 압축되는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 시네마달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말은 원래 독재정권의 탄압에 저항하던 언론의 용기있는 모습을 일컫는 표현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뜻도 달라진 것 같다. 이제는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 모양을 비유한 문장에 가까워진 듯 하다.

권력에 심취한 언론이 춤추는 뒷편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슬기로운 해법>에 출연한 교수는 "한국 신문사 수입의 80%가 광고, 20%가 구독료"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수입구조가 부동산 관련기사를 조중동이 자주 내보내는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광고의 많은 부분이 건설업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지적하는 또 하나는 사실 거대언론사의 사주 대부분이 그들 스스로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부유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해법>의 돌직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영화에서는 막대한 광고수입을 틀어쥔 대기업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바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기업인 '삼성'이다. 다양한 통계자료와 기사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9년 특별사면되던 전후로 조중동의 관련기사가 쏟아지던 것과 해당언론사에 대한 삼성의 광고비가 급상승하던 시기가 일치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반면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했던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그 다음달부터 광고가 뚝 끊긴 기록도 이어진다. 이 장면은 언론사를 상대로 '광고'를 당근이자 채찍처럼 휘두르는 삼성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MB정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이 낳은 종편의 역사도 조명한다. 법안 통과는 집권여당의 목소리를 확대재생산하며 당시 정부에 비판적이던 MBC와 KBS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 또한 YTN을 비롯한 방송사들에 낙하산 인사를 보내는 등 언론장악에 총력을 다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증언도 나온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군부독재 시절 이후 다시는 볼 일 없으리라 믿었던 '해직언론인'이 대거 양산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고삐 풀린 언론의 시대, 슬기로운 해법은 무엇?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포스터.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포스터. ⓒ 시네마달

사안을 실제보다 크게 거품처럼 부풀리는 언론의 행태는 '침소봉대'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노동자와 시민이 고통받는 모습은 아예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과시하는 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가 '기레기'에 분노하는 동안, 더 큰 문제는 각각의 기사 너머에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뉴스를 내보내는 언론사에 있다고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가리킨다.

그렇다면 권력이 되어버린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를 바꾸려면 어떤 '슬기로운 해법'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 영화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려는 언론을 경계하고 꾸준히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언론사와 정치권, 기업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뿌리내린 언론의 권력화와 부패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관심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언론이 '사회를 내다보는 창'으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 무게가 달라졌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스마트폰 등의 기기로 뉴스를 소비하는 현실이지 않은가.

어쩌면 언론사가 광고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줄어들도록 더 많이 구독하는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먼저 제시하는 것은 '기사와 언론을 대하는 태도'이다. 뉴스를 보면서 무비판적인 수용을 지양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필요하다면 때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소재에, 구독신청을 하면 현금이나 자전거를 주겠다는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언론을 원하는 시민이라면 영화 <슬기로운 해법>을 보는 것이 노력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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