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의 인기 코너 '응답하라 1980'이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의 '의리 기용'을 정조준 했다.

'SNL 코리아'의 인기 코너 '응답하라 1980'이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의 '의리 기용'을 정조준 했다. ⓒ tvN


한동안 필자는 <SNL 코리아>를 멀리했었음을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SNL 코리아>의 날 선 풍자는 날이 무뎌졌고, 이후 프로그램에 남은 건 선정성과 웃기지도 않은 개그밖에 남아있지를 않았기에 <SNL 코리아>에 작별인사를 고한 바 있다.

5일 방영된 <SNL 코리아>라고 해서 날 선 정치 풍자가 살아난 건 아니었다. 한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콩트에서 풍자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콩트 '응답하라 1980'은 통상적인 레트로 열풍을 다루는 풍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콩트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1980년대 코흘리개 초등학생 축구선수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홍명보가 과거 어린아이 시절의 홍명보를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면 시청자는 십중팔구 <SNL 코리아>가 무엇을 풍자하고 비꼬려고 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을 터. 바로 홍명보와 그의 패밀리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현재의 홍명보를 연기한 신동엽이 어린 홍명보를 연기한 김민교를 향해 "너는 훌륭한 선수가 될 거야. 축구 선수가 되어도 국가대표 감독은 하지 마라. 감독하고 싶으면 올림픽 대표팀 감독까지만 해"는 말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홍명보의 전성기가 런던올림픽 동메달 수확까지였음을 날카롭게 시사한다.

신동엽이 김민교에게 충고한 "국가대표는 의리로 뽑는 게 아니라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원칙도 끝까지 못 지키면 입 밖으로 내뱉지 마라"는 무슨 의미일까.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엔트리에 올랐던 선수들은 대부분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엔트리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에 이근호와 김신욱, 손흥민은 홍명보의 패밀리가 아니었음에도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각별한 애정을 보인 박주영과 정성룡의 부진과는 대조되는 맹활약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국가대표는 의리로 뽑는 게 아니라는 신동엽의 찰진 대사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함량 미달의 기량을 보인 홍명보의 '으리'가 축구 팬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는가를 보여주는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어린 홍명보 김민교가 성인 홍명보 신동엽에게 "호박엿 드세요" 하는 건 국가대표 축구팀이 인천공항에 들어올 당시 성난 축구 팬이 '한국 축구 근조'라는 피케팅을 들거나 귀국하는 대표팀에게 호박엿을 던진 일화를 우아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현재의 홍명보가 과거의 홍명보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브라질에는 가지 마라" 혹은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격언을 남긴 건, 실력보다는 '으리'를 중요시한 홍명보호에 남기는 뼈아픈 일침이자 동시에 축구 팬이 홍명보 감독에게 남기고 싶은 충고 아니겠는가.

축구 팬은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를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호 패밀리의 패착을 통해 본 바 있다. 홍명보호의 '축피아'를 <SNL 코리아>가 정면으로 건드렸다는 건 정치 풍자를 포기한 <SNL 코리아> 풍자가 아직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다른 영역에서 풍자의 촉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SNL 코리아>에서 풍자가 멸종했다는 사실에 애도를 고하고 채널을 돌린 시청자가 다시금 <SNL 코리아>를 시청할 확연한 명분 하나가 싹트고 있음을 콩트 '응답하라 1980'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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