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홍명보 감독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표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홍명보 감독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국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표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이희훈


홍명보 감독이 유임 결정을 1주일 만에 뒤집고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10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책임지고 대표팀 감독자리를 떠나겠다"며 "앞으로 좀 더 발전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적극 해명했다.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직전 토지 매입과 관련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내 삶이 그렇게 비겁하지 않았다"며 "훈련시간에 나와서 토지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한 벨기에전 패배 후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가진 선수단 회식에 대해 "이미 (감독직) 사퇴를 결심한 상황에서 월드컵에서 부진한 선수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나섰던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까지 1년간 5승 4무 10패의 공식 성적표를 남기고 떠났다. 이와 함께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단장을 맡았던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도 "선수단 단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홍명보 감독과 동반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황태자' 홍명보, 왜 '실패한 감독'이 됐나

홍명보는 24년간 국가대표팀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의 '황태자'로 불리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고려대 졸업 후 곧바로 K리그에 진출해 포항의 우승에 기여하며 신인으로는 최초로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네 차례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며 역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

홍명보 감독은 2004년 선수 생활 은퇴 후 프로 무대가 아닌 국가대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감독 밑에서 코치 수업을 받은 뒤 2009 청소년 월드컵에서 정식 감독으로 데뷔해 한국을 18년 만에 8강으로 이끄는 성과를 거뒀다.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홍명보 감독은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고 대표팀을 떠난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마침내 월드컵 감독이 되면서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축구협회가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기려고 했지만 "임기가 보장되면 스스로 느슨해질 수 있다"며 오히려 2년 임기를 제안할 정도로 대표팀 감독직에 남다른 각오를 보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평가전 부진에 이어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도 1무 2패로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실망스러운 결과는 물론이고 선수 선발과정에서 스스로 내걸었던 원칙을 깨면서 '의리사커'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알제리전에서 2-4로 대패하고, 벨기에전에서는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0-1로 패하는 등 전술 부재를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은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축구협회가 이를 만류했다.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월드컵 준비 기간이 짧았고, 홍명보 감독이 한국 축구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해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의 유임 결정으로 축구팬들의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최근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개막 직전 토지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사퇴 압박이 쏟아졌다.

여기에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후 이과수 폭포에서 선수들이 브라질 현지 여성들과 함께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등 축구팬들의 실망과 동떨어진 '음주가무 회식' 사진과 동영상이 나돌면서 들끓는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홍명보도 피하지 못한 '잔혹사'... 후임 사령탑은?

결국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 "실패한 감독"이라며 사퇴 결단을 내렸고,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명보 감독 유임시켜 아시안컵에 출전하려던 축구협회의 계획은 불과 1주일 만에 물거품이 됐다.

사실 국가대표팀 감독은 막중한 임무와 책임, 그리고 조금만 부진하더라도 언제나 사퇴 압박에 시달리는 '독이 든 성배'로 불렸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뒤 축구팬들의 기대는 더욱 높아졌고,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사령탑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히딩크 감독 이후 8명의 사령탑이 한국 대표팀을 맡았지만 임기를 다 채운 감독은 아드보카트, 허정무, 최강희 등 3명에 불과하다. 아시아 예선만 임시로 맡기로 했던 '시한부 사령탑' 최강희 감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2명으로 줄어든다.

히딩크 감독의 신화를 잇기 위해 움베르투 코엘류, 아드보카트, 요하네스 본프레레,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수제자 베어벡 등 외국인 사령탑을 영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임기를 채운 아드보카트 감독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내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허정무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불명예스럽게 대표팀을 떠났다. 특히 조광래 감독은 축구협회의 '밀실행정'으로 경질됐고,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최강희 감독 역시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대한 비판과 일부 선수들의 'SNS 파문' 등으로 온갖 내홍을 치러야 했다.

여기에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바라보고 큰 기대 속에 출범했던 홍명보호도 결국 수많은 상처를 남기고 1년 만에 막을 내리면서 대표팀 사령탑의 잔혹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9월부터 국가대표 A매치 일정이 시작되고, 아시안컵 개막도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후임 사령탑을 찾기 위해 추구협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허정무 부회장까지 동반 사퇴하면서 신속하게 전열을 가다듬기가 쉽지 않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드러난 아시아 축구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시 명망 있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충분한 기회와 지원을 보장해주면서 장기적인 한국 축구 개혁과 함께 국내 감독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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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허정무 브라질 월드컵 한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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