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지난 25일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의 9월 친선경기에 출전할 22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베테랑 이동국(35·전북)과 차두리(34·서울)의 재발탁이다.

지난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낙마했던 두 선수는 월드컵 이후 치러진 첫 A매치에서 나란히 대표팀에 복귀하며 '올드보이의 귀환'을 알렸다. 이동국은 지난해 6월 벌어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전 이후 1년 3개월, 차두리는 아시아 3차예선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태극마크와 인연이 멀어진 것처럼 보이던 두 베테랑 선수들의 깜짝 복귀는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리빌딩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대표팀에서 중심을 잡아줄 고참으로서의 역할, 둘째는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을 대비한 전력 보강의 차원이다.

대표팀, '리더'가 필요해

 프로축구 전북현대 이동국 선수

전북 현대의 이동국 선수 ⓒ 연합뉴스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은 유럽파와 런던올림픽 멤버 위주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으나 경험 부족과 리더 부재를 드러내며 무너졌다. 그나마 고참 축에 속한 박주영과 정성룡은 대표 선발 당시부터 '자격 논란'에 휩싸이며 월드컵에서도 극도의 부진 속에 제 앞가림 하기에도 바빴다. 최고참 수비수 곽태휘는 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주전 중 30대 이상의 고참 선수가 전무했던 대표팀은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단을 이끌어줄 정신적 구심점이 없었다.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하며 프로무대에서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이동국과 차두리는 공격과 수비에서 각각 대표팀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다. 대표팀은 여전히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할 해외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한교원과 임채민·김주영같이 A매치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들도 새롭게 가세하며 전체적인 가교 역할을 해줄 베테랑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

특히 두 선수가 태극마크를 대하는 진중함과 성숙한 자세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이동국은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의 월드컵 8회 연속 본선행에 공헌했으나 정작 홍명보호 출범 이후 한번도 부름을 받지 못하며, 소속팀에서 한 경기도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던 후배 박주영에게 월드컵 주전 공격수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개인의 욕심보다는 담담하게 후배들을 응원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동국은 일각에서 제기된 대표팀 은퇴 가능성에서는 단호히 선을 그으며 "선수라면 언제나 대표팀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이동국은 이번 9월 A매치에서 센추리클럽(100경기) 가입이 유력하다.

차두리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선수가 아닌 해설자로 참여했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는 시점에서 "선배들이 잘해서 후배들을 도와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후배들만 고생하게 된 것 같아 미안하다"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차두리 같은 리더가 없었던 대표팀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왜 대표팀에 경험 있는 리더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드보이, 이름값 아닌 실력으로 뽑혔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차두리가 7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E1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자데의 수비를 피해 볼을 다루고 있다.

FC 서울의 차두리 선수. 사진은 지난 2010년 9월 'E1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이란과의 경기 당시 모습. ⓒ 유성호


더구나 이들은 과거의 이름값이나 경험만이 아니라, 현재의 기량으로도 대표팀에 승선할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이다. 이동국은 현재 11골로 K리그 클래식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차두리 역시 오른쪽 수비수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발휘하며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서울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현재 대표팀 공격진은 박주영(무적)과 김신욱(아시안게임 출전)의 A매치 차출이 당분간 어려운 상태다.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이동국 외에는 최전방 공격수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 차두리는 대표팀에 몇 안 되는 30대 수비수이자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수비진의 리더 역할을 기대할 만하다.

물론 이동국-차두리의 복귀 효과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다. 두 선수 모두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가운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대교체에는 맞지 않는 선택이다. 4년 뒤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을 대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 대표팀 사령탑이 공석인 상황에서 기술위에 의해 선발된 선수들이라 정식 감독 선임 후에도 베테랑들이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회성 이벤트로 그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동국·차두리, 아시안컵 대비라면 설득력 있다

하지만 아시안컵을 대비한 포석이라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불과 4개월 뒤인 내년 1월 호주에서 아시안컵이 열린다. 한국 축구가 반세기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아시안컵은 A대표팀에게는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한 무대다. 당연히 현재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다면 이동국과 차두리가 포함될 자격은 충분하다. 또한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더라도 아시안컵까지는 선수 파악까지 준비기간이 짧은 만큼, 기존의 선수구성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동국은 총 3번의 아시안컵에 출전했고 총 10골을 기록했다. 한국 선수 중 아시안컵 최다득점 기록이다. 2000년에는 6골로 득점왕까지 올랐다. 차두리도 2011년 아시안컵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견인할 수 있다면 지난 월드컵의 상처를 치유하고, 두 선수의 대표팀 경력에도 유종의 미가 될 수 있다.

아시안컵 우승은 한국 축구에 다음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권이라는 선물도 안겨줄 수 있다. 그 뒤에 두 선수가 다시 후배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 러시아월드컵까지 도전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올드보이의 귀환은 후배들에게도 좋은 자극이라고 볼 수 있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대표팀의 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 '언제적 이동국, 언제적 차두리냐'고 묻기 전에 이들이 그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 수준의 기량으로 경쟁할 수 있게 만든 부단한 노력과 자기관리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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