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랭크>는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존(돔놀 그리슨)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퇴근길을 걷는 동안 흥얼거리며 작곡의 꿈을 키워간다. 하지만 늘 자신의 재능 부족으로 형편없는 노래만 만들어내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만 쌓여간다.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존 역시도 먹고 살고자 직장에 하루의 온종일을 묶여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저 취미생활에 가까운 아마추어같은 실력으로 짧은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던 그에게 어느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산책삼아 들른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를 목격한 것이다.

의문의 남성이 출동한 구조대원에 의해 목숨을 건진 뒤, 자살을 시도한 그가 인디밴드 소속 키보드 연주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까이서 사건을 목격한 존은 우연같은 인연으로 공백이 생긴 밴드 '소론프로프브스'의 그날밤 공연에 대체자로 참여할 것을 제안받는다.

전문 연주자를 꿈꾸던 존은 꿈만 같던 밴드 생활을 경험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기존 멤버의 병원 입원일이 길어지자 존은 장기적 영입제의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괴짜 프랭크의 좌충우돌 음악삼매경

 영화 <프랭크>의 한 장면. 가면같은 '탈'을 절대 벗지 않는 프랭크를 중심으로 괴짜 밴드의 일화가 주요소재이다.

영화 <프랭크>의 한 장면. 가면같은 '탈'을 절대 벗지 않는 프랭크를 중심으로 괴짜 밴드의 일화가 주요소재이다. ⓒ 영화사 진진


존이 합류하게 된 밴드는 기괴한 인상을 가진 멤버들이 대부분이다. 리더겸 보컬인 프랭크(마이클 패스벤더)는 잠을 자거나 샤워할 때조차 머리에 쓴 거대한 '탈'을 벗지 않는다. 성격이 예민한 연주자 클라라(메기 질렌할)는 수시로 멤버들을 상대로 욕설과 괴성을 퍼붓고, 고주파를 생성하는 특이한 악기로 굉음을 만든다. 기타 연주자인 프랑스 출신 남성 멤버는 영어를 거의 못하기에 의사소통이 힘들고,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던 매니저 돈(스쿳 맥네이리)은 성도착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례가 있다고 스스로 실토한다.

각각의 인물 뿐만 아니라, 밴드의 성격과 음악성도 대중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따라부르기도 힘든 멜로디는 일정한 리듬이 없고, 가사는 뚜렷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든 단어들의 무의미한 조합 같다. 그럼에도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소론프로프브스의 음악은 전자음을 주축으로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런 와중에 존은 밴드에 점차 녹아들어간다. 앨범 녹음을 위해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오두막에 거처를 정한 일행은 괴짜 프랭크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한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창작에 매진하는 그들은 서로 다투고 또 화해하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코미디같은 밴드 멤버들의 좌충우돌 음악삼매경을 지켜보는 것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음반작업을 하는 동안 존은 밴드의 이야기를 블로그와 트위터에 매일 적어나간다. 이를 계기로 점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소론프로프브스는 팬을 늘려가고, 급증한 유명세로 마침내 미국에서 열리는 큰 음악축제에 초청받는 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멤버들 간의 충돌이 발생하고, 나날이 갈등은 깊어진다. 과연 이들은 성공적으로 대중앞에서 공연을 마칠 수 있을까?

영화가 들려주는 뜻 밖의 위로, '잉여라도 괜찮아'

 영화 <프랭크>의 한 장면. 엉뚱한 발상으로 밴드를 이끄는 프랭크는 절대 탈을 벗지 않는다.

영화 <프랭크>의 한 장면. 엉뚱한 발상으로 밴드를 이끄는 프랭크는 절대 탈을 벗지 않는다. ⓒ 영화사 진진


영화 <프랭크>는 경쾌하고 발랄한 상황들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지만, 장르적 특성에 있어서 음악 영화와 코미디 영화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거대한 공연장의 무대에서 연주하게 된 밴드가 보여준 모습, 나름의 좌절을 겪고 난 이후에 다시 뭉치는 멤버들의 노래는 상당히 찡한 면이 있다. 스크린을 바라보던 관객의 폭소가 슬픈 웃음으로 바뀌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영화는 콤플렉스를 딛고 세상 앞에 우뚝 선, 승리한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는 대신 다른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초라할만큼 소박한 삶의 틀 안에서, 현실의 유행이나 대세적 흐름과 거리감이 있는 밴드의 열정 말이다. '듣기좋은 음악'을 기대하는 세상의 기준에 개의치 않고, 영화 속 밴드는 그보다 자신들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듯하다.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의 내면은 초반의 유쾌함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의 열등감과 현실의 벽이 한층 선명하게 나타나서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프랭크가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노래 '난 너희 모두를 사랑해(I love you all)'는 찌질함의 극치에 가깝다. 하지만 줄거리와 분위기가 급반전되는 이 부분에서, 영화 <프랭크>는 뜻 밖의 위로를 들려준다. 어떤 모습이던 '난 너희를 모두 사랑한다'는 내용의 가사는, 등장인물과 동시에 관객을 조심스럽게 다독인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빈곤을 채워주지 못하는 시대에, 열정만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비록 너희가 잉여(같은 존재)라도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듯하다.

세상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어린 세대의 고통을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길 때,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자기계발을 통해 쓸모있는 인간이 되라'고 다그치는 사이에, 영화 <프랭크>는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위로하는 셈이다. 그러고보면 프랭크의 독특한 '가면'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대척점이면서도, 지나친 열등감을 숨기려는 면에서는 닮은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훈훈한 외모를 지닌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의 '본격 외모낭비작'이라 불리는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등장인물과 더불어 영화를 보는 이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진다. <프랭크>는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력, 재치있는 각본과 함께 과장되지 않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이 영화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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