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이가 있다. 딱히 싸운 건 아닌데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버려 서먹해진 사이. 한때는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었지만 딱히 연락하자니 그 정도로 정이 깊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사이가 틀어져 버린 것은 아니라 만날 수 있지만 그와 겪었던 몇 번의 갈등이나 불협화음도 있고, 그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결국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 삶 속에서 그들의 이름은 잊히기 일쑤다.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열풍은 1990년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준 아주 성공적인 특집이었다.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토토가>의 아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은 물밀듯한 섭외를 받거나 새로 앨범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며 90년대 가수들의 부활을 알렸다. 비록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90년대의 추억이 생각보다 강력할 수 있음을 <토토가>는 증명해 냈다.

<토토가>가 화제에 오를수록 출연하지 않은 가수들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악의적인 이야기도 떠돌기 시작했다. 특히 SES의 라이벌이었던 핑클에 대한 소문은 그들의 출연이 무산됨에 따라 아직까지 사이가 돈독한 SES에 비교되며 악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효리와 통화 후 눈물 흘린 성유리, 왜곡하지 말길

 핑클의 멤버였던 이효리는 <무한도전-토토가> 출연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우려도 표명했다.

핑클의 멤버였던 이효리는 <무한도전-토토가> 출연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우려도 표명했다. ⓒ MBC


악플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핑클의 사이가 틀어져 도저히 한 무대에 설 수 없을 정도이고, 그렇게 된 데는 특정 멤버의 잘못이 크다는 식. 그동안 이효리는 숱하게 핑클 멤버들과의 관계를 밝혀왔다. 딱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옥주현을 제외하고는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예전에는 이진과 싸운 적도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이효리의 말은 와전되었고 결국 각종 루머와 억측이 난무했다.

<토토가> 촬영 당시 유재석이 핑클 섭외를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이효리는 "연기자로 자리 잡아가는 성유리나 이진이 불편할 수 있다. 얼굴 본 지는 3~4년 돼서 어색할 수 있다"면서도 "추후 협의를 거쳐 핑클 멤버들이 동의한다면 응하겠다"고 긍정적인 마무리를 했다. 옥주현 역시 <토토가>를 통해 핑클 시절 노래를 부르며 출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결국 옥주현은 뮤지컬 일정으로, 다른 멤버들 역시 개인 사정으로 <토토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핑클의 출연은 불발됐다. 이를 두고 다시 그들에 대한 추측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멤버들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졌는지에 관한 문제는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다.

SBS <힐링캠프>의 안방마님 성유리는 '신년의 밤' 특집에서 이효리와 통화후 "몇년 만에 통화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중은 또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허나, 단순히 방송용으로 그들이 관계를 위장할 만큼의 이유는 빈약하다. 굳이 이런 억측을 받지 않으려면 부르지도 오지도 않는 게 속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은 스타들이다. 한 번의 재회가 화제는 될지언정, 그들의 인지도나 인기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SBS <힐링캠프>에서 이효리와 통화 후 눈물을 흘린 성유리.

SBS <힐링캠프>에서 이효리와 통화 후 눈물을 흘린 성유리. ⓒ SBS


차라리 방송을 통해서라도 연락을 하고 그 자리에 찾아온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관계라고 보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사이가 막역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절교한 사이가 아니라는 반증인 것이다. 사이가 틀어져 버린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어색한 사이로 남았다는 회한과 후회가 섞인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가식으로 치부하는 건 미성숙한 태도다.

만약 그들이 얼굴보기가 불편한 사이까지 갔다면 아예 핑클을 섭외하려는 시도조차 방송에 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핑클 멤버들이 서로에게 악감정이 남았다는 추측은 흥미롭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하겠지만, 그 흥미로 인해 서로의 진심이 왜곡되고 그들의 관계가 더욱 껄끄러워져 버린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핑클이 서로 뭉쳐 나오건 나오지 않건, 대중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모든 관계가 컴퓨터처럼 정확히 계산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친구로 만난 것도 아니고 이익을 위해 소속사에서 만들어진 팀이었다. 무작위로 뽑힌 그들이 모두 사이좋게 지낼만큼 서로 궁합이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꼭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작위로 모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오랜 시간 좋기만 할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본인의 삶 속만 들여다 보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는 단순한 시간 이상의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변에는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불편한 사람도 있고, 이유도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착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와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다.

아무리 연예인라지만 다른 사람의 인간관계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핑클이 재회한 후 흘린 눈물의 의미를 왜곡하지 말고 조금은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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