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구제역이 전국을 덮친 것도 결국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구제역이 전국을 덮친 것도 결국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라고 영화는 말한다. ⓒ 시네마달


삼겹살이 구워지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을 삼키게 한다. 노릇하게 익은 고기와 '지글 지글' 소리가 더해지면, 저절로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젓가락으로 집어서 한입 가득 넣고 씹으면, 이보다 더 황홀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문득 다른 상상을 한다. 삼겹살 한 점을 우물거리는 사이 눈앞으로 살아 있는 돼지가 지나간다면 어떨까? 가까이에서 천천히 걸음을 멈춘 돼지가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면, 입 안의 고기를 마저 삼킬 수 있을까?

누군가는 왜 불편한 상황을 떠올려서 기분좋은 상상을 흐려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살아 있는 돼지를 만나면서 고기 먹는 일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싶지만, 그 상상을 직접 발로 뛰면서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 있다. 바로 황윤 감독이 촬영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영화다.

돈가스 마니아가 만난 살아 있는 돼지

영화에서 황윤 감독은 초반부에서 자신을 '돈가스 마니아'로 소개한다. 언제나 식당에 가면 돈가스를 즐겨 먹고, 늘 동행하는 아들도 점차 자신의 식성을 닮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던 2011년 어느날, 갑작스럽게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파동' 뉴스를 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350만 마리 가축의 살처분 소식을 기사로 전해 들은 그녀는 문득 생각한다. 꼬맹이 아들과 자신이 '돼지'하면 떠올리는 것이 단지 '고기' 아니면 '저금통' 뿐이라는 것을. 그렇게 시작된 의문은 곧 '살아 있는 돼지'를 만나고 싶다는 의지로 이어지고, 육아 때문에 넣어뒀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었다. 평생 본 적 없는 돼지를 찾아서, 감독의 발걸음은 어느샌가 축산 농가로 향한다.

구제역 살처분의 폭풍이 지나간 어느 농가. 황윤 감독은 폐쇄된 축사에서 사육되는 돼지 무리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빛 한 줄기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건물 안에서 악취를 풍기며 뒹구는 돼지를 마주하고 "불쌍하다"고 읊조린다. 스크린 속 돼지들은 주사기로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를 투여받고 몸을 돌려누울 수도 없는 금속틀 '스톨'에 꼼짝없이 갇혀 지낸다. 몸이 고정된 상태로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돈가스 마니아였던 황윤 감독은 농가를 방문하고 처음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면서 비육식주의로 생각을 바꾼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돈가스 마니아였던 황윤 감독은 농가를 방문하고 처음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면서 비육식주의로 생각을 바꾼다. ⓒ 시네마달


수백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공장식 축사를 떠난 카메라는 한적한 산 속의 다른 농가를 찾아간다. 더 넓은 공간에서 유기농 사료를 먹이는 풍경은 앞서 방문한 곳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돼지의 분뇨를 거름 삼아 채소를 가꾸고, 채소의 잔여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방식은 과거 인류가 가꾸던 농장의 본질에 한층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도 수퇘지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일정 연령대에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한다. 어미는 새끼를 낳고 몇 개월 뒤 자식들과 생이별을 겪고, 다시 임신하는 과정을 의지와 무관하게 되풀이한다. 카메라 렌즈가 비추는 돼지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돈가스 마니아가 만난 살아 있는 돼지의 현실은 참혹하고 또 잔인했다.

'생명'과 '상품' 사이, 숨은 연결고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농가에서 돼지들은 돌려눕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출산을 반복하고 생을 마감한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농가에서 돼지들은 돌려눕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출산을 반복하고 생을 마감한다. ⓒ 시네마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숨은 연결고리를 끄집어낸다. 닭과 돼지가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장면을 통해 '생명'이 '상품'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보여준다.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놓이는 동물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도축되는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을 106분 동안 담아냈다.

'육식에 거리낌 없던' 잡식가족의 일원, 황윤 감독의 딜레마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고기를 과연 먹어도 되는가'를 고민하던 감독은 결국, 변화를 결심하고 이를 자신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적용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반응은 냉담했다. 남편은 고기 반찬이 채소로 바뀐 식탁에 차마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아들은 돼지 기름으로 가공된 과자를 사달라며 떼를 쓴다. 비육식주의로 식습관을 바꾼 그녀에게는 '외계인 보듯'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영화는 전문가의 견해로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는 대신 다른 방식을 택했다. 영상이 흐르는 동안 새끼 돼지 '돈수'의 출생과 성장은, 끊임없이 감독의 아들 '도영'의 모습과 나란히 놓이면서 때로 겹친다. 감독 본인이 아들을 임신하고 출산의 고통을 느끼던 회상 장면은 어미 돼지 '십순'이 돈수를 낳는 촬영분과 오버랩된다. 가까이서 촬영한 돼지의 눈은 초롱 초롱 반짝이고, 이를 바라보는 도영은 "(돼지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엄마에게 외친다.

종의 차이가 있을 뿐, '십순'이 돈수를 정성껏 키우려고 돌보는 장면은 아들을 보살피는 감독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황윤 감독이 한 컷에 담은 둘의 만남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생명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사랑을 받고 살면서 고통을 느끼는 생명임은 어느 쪽이든 다르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과정으로 사적 영역의 물음이 점차 다큐멘터리적 성찰로 거듭난다. 주부인 황윤 감독이 반찬거리의 안전성을 따져보던 걱정은 '우리가 동물에게 이럴 권리가 있는 걸까' 하는 고민으로 번진다. 인간의 손 쉬운 육류 섭취와 편리한 축사 운영을 위해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 생명 윤리를 무시한 채 이뤄져도 괜찮은지를 묻는다. 도심과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 벌어지는 돼지의 삶과 죽음을 포착하면서,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로부터 멀지 않은 그 가족의 딜레마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황윤 감독은 자신의 아들과 돼지새끼를 나란히 놓고서 '생명의 가치'를 떠올린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황윤 감독은 자신의 아들과 돼지새끼를 나란히 놓고서 '생명의 가치'를 떠올린다. ⓒ 시네마달


스크린에 펼쳐진 돼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보여준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는 돼지가 60cm 너비의 '스톨'에 끼인 채 살아가는 장면으로 굵직하게 요약된다. '가축의 제품화'를 위해, 서로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새끼 돼지의 이빨을 제거하고 꼬리를 도려내는 부분은 소름 끼칠 정도다. 감독이 인터뷰한 농장주는 "(가축 수가 많아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며 체념하듯 고개를 떨군다.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매끄럽게 연결된 것 같았던 육류 생산과 소비의 벨트가 '무자비한 사육과 도축'의 핏빛 톱니 바퀴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식과 육식 중에서, 어느 한 쪽만이 '옳은' 것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진 않는다. 다만 공장식 축산이 이대로 계속돼도 괜찮은지 돌아보게 한다. 대규모의 축산업이 사실 끝없이 육식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덧붙이면서.

감독은 '구제역 파동'을 두고 결국 몸집만 키운 사육 시스템이 바이러스 창궐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욕심이 축사를 거대한 공장으로 만들었고, 꼼꼼히 관리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가축이 건강하게 사육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상에서 심경을 고백한 어느 지자체 공무원은, 과거 가축 살처분 업무 이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식탁 위에 오르는 고기 반찬이 거쳐온 과정을 영화를 통해 지켜본 이후에는 형체 없던 불편함의 이유가 언뜻 보이는 듯하다. 현대 사회의 구성원이 값 싸게 많은 양의 육류를 섭취하기 위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크게 고통받는다는 사실.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어느 가족의 딜레마가 우리로부터도 멀지 않은 현실임을 실감하게 한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돼지의 모습을 비추면서, 애써 눈 돌려 외면했던 세계를 관객 앞에 내려 놓는다. '음식을 선택할 권리'와 '방치된 동물의 고통'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무엇일까? 비명을 지르면서 사라지는 돼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더 평화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공장식 축산업 구제역 돼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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