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 2012년 5월 무렵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을 때였다. 행사 안내 전단지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던 신수원 감독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접촉을 시도했었다. 출국 일정이 맞질 않아 만나지 못했지만 당시 그가 발표한 단편 <순환선>은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까날플러스 상을 받았다.

3년 뒤에야 신수원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하기까지 그는 두 편의 장편을 더 발표했다. <명왕성>(2013)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했고, 국내 개봉(7월 2일)을 기다리는 <마돈나>(2015)로 올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이 정도면 국내보단 세계가 먼저 주목한 감독이라 말할 수 있다.  

수상한 한 여자의 과거를 추적하다...미혼모가 된 공장 근로자

그는 <마돈나>를 통해 보다 여성의 삶에 집중했다. VIP 병동 간호사 해림(서영희 분)의 눈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혼모 미나(권소현 분)의 과거를 추적해 간다. VIP 병동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여성이 입원하게 되면서 해림은 그녀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게 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두 인물이 처한 상황적 비극을 그려나갔다.

본래 신 감독이 지은 제목은 < VIP 병동 >이었다. 허위진단서를 끊어서 입원하는 고위공직자 및 재력가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구상한 내용이다. 존엄사가 없는 한국의 현실도 언급하려 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재미도 없고 막히는 부분도 있었다. 여기에 신수원 감독 친구의 이야기를 섞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인물을 만들게 됐다. 얼개만 보면 자칫 이건희 회장이 연상되기도 해서 물었더니 "그 분이 장기 투병 중인지 몰랐고, 그걸 염두하고 쓰진 않았다"며 웃어 보였다.

"전신마비 환자 철오(유순철 분)와 그의 재산을 노리는 아들 상우(김영민 분), 그리고 간호사만으로는 이야기를 끌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공장에 다니던 친구 이야기를 넣은 거다. 폭식증이 있었는데 공장에서 그 친구 별명이 마돈나였다. 순전히 뚱뚱해서 붙여진 거였다. 한국 여성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현실과 함께 생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하고 싶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생명 연장을 하는데 사실 그건 신의 영역이잖나. 미혼모 설정 역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넣은 거다.

안 그래도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 하지만 경제가 취약해질수록 여자는 길거리로 나 앉게 된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사람이 있다. 또 약자를 누르는 사람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잘못된 가치관인데 말은 된다. 어찌 보면 약자들은 강자의 논리에 길들여진 거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 의존할 존재가 아님에도 전통적 가치관에선 그렇게들 받아들이는것 같다. 물론 요즘 시대에서 강력한 소비 주체로 여성이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음지에서 가장 밑바닥 삶을 사는 게 여성이기도 하다."

"영화 작업의 화두는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

 영화<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애초에 신수원 감독은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중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던 그는 그저 전업 작가를 하려고 꾸준히 소설을 써 온 글쟁이였다. 물론 영상에 아주 관심이 없진 않았다. 수업할 때 그는 4컷 만화를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곤 했다. 타 학교 동료 선생님들이 빌려갈 정도로 당시엔 신선한 교재였단다.

"막연하게 그때 영상 다루는 재미를 좀 안 것 같다. 원랜 일을 관두고 대학원에 가서 글을 쭉 쓰고 싶었는데 등록금이 엄청 비싸더라. (웃음)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광고를 봤고, 포트폴리오를 내면 어느 정도 지원이 나온다기에 소설을 냈다. 운 좋게 허가가 나서 영상원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 여러 단편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내공을 키워갔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가끔 내가 왜 교사를 그만 뒀을까 생각하곤 했다"는, 반 농담처럼 던진 말에 뼈가 있었다.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면서도 정작 투자 문제로 작품 활동이 순탄치는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꾸준하게 경쟁력을 키워올 수 있던 건 신수원 감독 같이 묵묵히 자기 세계를 그려온 영화인들 덕 아닐까. 오히려 신수원 감독은 "그래도 난 해외 영화제에서 선정이라도 됐기에 행복한 경우"라며 말을 이었다.

"역으로 해외에서 먼저 알아주고 국내에 알릴 수 있는 건 고무적이다. 적어도 다음 작품의 투자를 받아낼 때 할 얘기가 생기니까. 다만 보다 다양한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나오긴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상업영화는 잘 만들지만, 독립영화 쪽을 키우는 저변도 확대돼야 한다. 나 역시 몇 백만 명이 몰리는 대박 영화를 할 생각은 없다. 꾸준히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좋다. 그러려면 스태프나 배우에게도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지. 민간 영역에선 어쩔 수 없다 해도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지점이다."
 영화<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중소 규모의 영화를 하면서 신수원 감독은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신수원 감독은 "주변에선 심각한 것 말고 달달한 걸 써보라는 사람도 있는데, 여전히 타인의 폭력이든 무엇이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고 설명했다.

"일단 무조건 써야지. 억지로라도 빈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뭐라도 쓰게 된다.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하는데 그 중에 영화로 할 만하겠다고 생각하면 시놉시스를 쓴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일단은 써놓고 봐야 한다. 특정 배우를 떠올리며 쓰진 않는다. 완성된 이야기가 기성 배우와 어울리지 않으면 신인을 쓴다. 이렇게 무채색에서 출발하는 거다."

영화 제목을 보고 실제 마돈나가 연락을 해오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이 말에 신수원 감독도 "구글에서 자기 이름 쳐보면 뜰 테니까"라며 크게 웃는다. 이후엔 또 어떤 작품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까. 그의 노트에 적힌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마돈나 신수원 서영희 권소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