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은 골키퍼는 몇 명일까. 12개 구단을 통틀어 20명이다. 물론 이들이 뛴 경기 수는 '0'이다. 22라운드를 앞둔 현재(지난 10일 기준) 벤치에도 한 번 앉아보지 못한 선수가 이중 11명이다. 주전과 서브 골키퍼에 밀려 출전하지 못하는 제3의 옵션, '서드(3rd) 골키퍼'들이다.

숙명 같은 기다림

 8년 만에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조수혁(28)

8년 만에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조수혁(28) ⓒ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조수혁(28·사진)은 올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프로생활 8년 차에 이룬 성과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몸담은 FC서울에서 그가 남긴 기록은 컵대회 3경기 2실점이 전부다. 2013년 인천으로 팀을 옮긴 뒤 올해 3월까지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지난 4월 12일 친정팀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후반 추가시간 5분, 부상을 당한 주전 골키퍼 유현(31)을 대신해 1분 동안 골키퍼 장갑을 꼈다. 이후 리그에서 내리 5경기를 선발로 나왔다. 5경기 3실점으로 준수한 수비를 펼쳤다. 팀 성적도 2승 3무로 좋았다.

그러나 조수혁은 한 달 만에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유현이 부상에서 복귀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대표 출신도 흔해

"프로선수 중에 왕년에 못했던 선수는 없다."

조수혁은 지난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7세, 20세 이하 청소년대표를 거쳤다. 지금은 국가대표가 된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과 한때 경쟁하기도 했다. 실제로 서드 키퍼 중에는 조수혁 같은 연령별 대표 출신이 즐비하다. 이들도 프로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울산 현대 골키퍼 이희성(25)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울산 현대 골키퍼 이희성(25) ⓒ 울산 현대


울산 현대 골키퍼 이희성(25·사진)도 17세 이하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팀 동료이자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승규(25)와 현대중, 현대고 동기다. '만년 이인자'로서 겪었을 설움을 짐작하고 남을 만하다. 지난해 9경기에 출전했으나 올 시즌에는 5월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연이은 부상이 그의 골키퍼 장갑을 벗겼다. 지난 6월 17일 전북 현대와의 원정경기서 올 시즌 첫 선발 기회를 잡았으나 킥오프 32분 만에 동료 수비수인 김치곤(32)과 부딪힌 뒤 교체됐다. 관자놀이 부근 뼈에 7~8mm 정도 금이 갔다. 3개월 정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의료진의 의견. 두 시즌 연속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 셈이다.

이희성은 지난해 11월 18일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는 상대 팀 미드필더 고명진(27)과 충돌하며 오른쪽 4번째 손가락이 골절돼 남은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출전 기회를 기다리는 골키퍼도 있다. 역시 20세 이하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서울 골키퍼 양한빈(24)이다. 2011년 백암고를 졸업하며 강원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5년 차다. 그동안 리그 경기에 나선 것은 단 두 차례. 전 소속팀 강원(2012년 5월 26일 울산전)과 성남(2013년 7월 31일 전남전)에서 각각 한 번씩이다. 지난해부터 몸담은 서울에서는 아직 경기를 뛰지 못했다.

출전 욕심 버릴 수 없는 이유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고 인상 쓰는 선수는 서드 골키퍼의 자격이 없다."

김현태 FC서울 스카우트팀장(54)이 지난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참가한 그는 토너먼트 대회에서 서드 골키퍼의 역할을 "경쟁에 끼어들기보다는 팀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2002년 대회 당시 주전으로 본선 모든 경기에 나선 이운재(42·은퇴)와 후보 김병지(45·전남)의 뒤를 든든히 받쳐준 서드 최은성(44·은퇴)이 그가 꼽는 모범사례다.

팀이 요구하는 역할을 묵묵히 담당하는 것. 경기에 출전할 확률이 극히 낮은 서드 골키퍼가 갖춰야 할 미덕이다. 그러나 토너먼트에 한정된 얘기다. 리그에 임하는 프로선수라면 출전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능성을 닫아두면 데뷔전은 오지 않는다. 늦게 피는 꽃도 있다.

 K리그에서 열두 시즌째 뛰고 있는 광주FC 골키퍼 권정혁(36)

K리그에서 열두 시즌째 뛰고 있는 광주FC 골키퍼 권정혁(36) ⓒ 광주FC


광주FC 골키퍼 권정혁(37·사진)은 서드 골키퍼들의 희망가다. 그의 기량은 30대 중반에 만개했다. 울산(2001년~2004년), 광주 상무(2005년~2006년), 포항(2007년)과 서울(2008) 등 4개 팀을 거쳤지만 어디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핀란드 리그(2009년~2010년)에 진출했다.

2011년 인천에 입단하며 K리그에 돌아왔다. 만 35세였던 지난 2013년, 권정혁은 자신의 K리그 열 번째 시즌에 38경기에 출전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올해 새로 둥지를 튼 광주에서도 든든한 선발 골키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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