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슈가맨>을 찾아서 포스터.

JTBC <슈가맨>을 찾아서 포스터. ⓒ JTBC


'질투'와 '풍요속의 빈곤'이란 노래를 들려주자, 길거리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남녀들이 뚱한 표정을 짓는다.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사실, 이건 이 노래들을 부른 유승범이나 김부용이 스튜디오에 등장했을 때도 감지되는 분위기다. 가수들과 같은 세대인 유재석 특유의 호들갑은 계속되는데, 여타 어린 게스트들이 그와 엇비슷한 공감을 보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맞다.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공감이야말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이하 <슈가맨>)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26일로 파일럿 방송을 마친 이 <슈가맨>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그러나 왜 그 '슈가맨'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아니, '슈가맨'이 진짜 '슈가맨'인 건지도 헷갈린다.

'슈가맨'이란 이름은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가져왔다고 치자. <슈가맨>은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이제는 볼 수 없는 '원 히트 원더' 가수들을 찾겠다는 제작 의도를 명확히 했지만, 방송을 보면 한 개의 곡만 크게 흥행한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이 '원 히트 원더'의 의미를 제작진 역시 명확하게 되새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파일럿이라고 규정한 1, 2회 모두 그랬다.

대체 이들이 말하는 '슈가맨'은 무엇일까

 JTBC <슈가맨을 찾아서>의 한 장면.

JTBC <슈가맨을 찾아서>의 한 장면. ⓒ JTBC


'아라비안 나이트'의 김준선을 보자. <가요톱텐> 1위를 했다는 경력이 그를 슈가맨으로 만든 건지, 당시 1992년 이후 서태지-신승훈-김건모의 틈바구니 속에서 색다른 음악을 했다는데 의의를 둔 건지 확실치 않다. '눈 감아 봐도'의 박준희는 더했다. 당시 청순한 소녀 가수로 인기를 얻긴 했지만, 박준희의 노래가 '원 히트 원더'의 반열에 오를만한 무게감으로 기억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2회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드라마 <질투>의 동명 주제곡으로 당시 반짝 인기를 얻었던 유승범은 스스로도 동료들의 그러한 지적이 가수의 길을 떠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슈가맨' 다운 사연이다. 그 지점에서 또다시 <가요톱텐>이 소환된다. 뚜렷한 기준이 없으니 당시 가요 순위프로그램이 언급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맥락이다.

김부용의 경우, 1990년대 중후반에 활동했기 때문에 이미 SM을 비롯한 소속사 개념이 명확해지던 시기다. 그는 스스로 배우지망생이었고, 노래 실력이 부족해 더 이상 가수를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립싱크 가수의 한계때문에 가수를 포기해야했다는 설명이다. 여름 시즌송을 한 곡을 히트시키고, 연예인으로서의 인기를 잠시 얻은 1990년대 가수를 소환하는 <슈가맨>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건 사실 이 <슈가맨>이 '역주행송'이라 불리는 리메이크 곡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원곡이 나왔을 당시 태어났음직한 아이돌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들을 주로 만드는 작곡가가 곡을 만든다. 이 '역주행송'이 리메이크로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출연자들도 잘 모르는 눈치다. 그저 현재의 감성과 세련됨만을 반복한다. 걸그룹의 화려한 의상과 안무가 동원되는 건 당연하다.  

의아한 건 또 있다. 그래서 왜 경쟁 구도를 만든 건지 말이다. 음악적으로 풍성하거나 시대성을 뚜렷이 반영할 수 있는 한 인물을 좀 더 길고 찬찬히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했을까. 그렇다면, 자연스레 요즘 예능이 좋아하는 감동 코드를 끌어내기에 훨씬 유리하지 않았을까.

'추억팔이'가 퇴색시키는 '슈가맨'의 의미

단순한 '추억팔이'는 과거를 탈색시킨다. 때로는 착시를 일으키게 만든다. '그땐 그랬지'의 회고조의 정서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추억을 통해 무엇을 환기하느냐는 결국 그 프로그램의 주제를 대변한다. 여기서, <슈가맨>은 확실히 휘청댄다.

'자랑배틀'은 이 덜컹거림의 실체다. 히트곡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수를 소환한다. 물론 '찾아' 나서는 과정까지 촬영한다. 그 시절 가수들이나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담긴다. 그렇게 가수가 스튜디오에 나서고, 모두들 환호(?)한다. 근데, 왜 환호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랑배틀'을 벌어야 한다. 김준선은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박준희는 작년까지 앨범을 냈다. 아, 그렇구나. 김준선은 바둑도 한다. 김부용은 초콜릿 광고도 찍었다. 유승범은 키가 크다. 아, 그렇구나. 음악 말고 그런 매력(?)이 있었구나. 어, 그래서 그게 '슈가맨'이 되어야 할 이유인가. 아니, '슈가맨'이 도대체 뭐지.

그리고 <슈가맨>은 그들이 왜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는지를 언급하긴 한다. 아마도, 굴곡진 인생이 자리하고 있었다면 좀 더 극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슈퍼스타K>류의 '사연팔이'에 익숙해져 있지 않나. 댄스 음악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거나, 동료들의 질투가 싫었다거나, 노래를 못해서라는 각자의 이유는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슈가맨'의 가치를 알아서 느껴 주고 공감할 능력을 가진 이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슈가맨>은 그들에게 어떤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그래서, 진짜 그들은 '슈가맨'인건가. 그 '원 히트 원더' 아티스트가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다는 거지? EXID 하니, 존박, 걸스데이 소진, 인피니트 성규 등 아이돌과 젊은 가수들이 펼치는 '역주행송' 무대가 훨씬 빛나기 위해서는, 결국 그 무대를 보기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 과정 역시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규 프로그램 진입은 제작진의 몫

 <슈가맨을 찾아서>의 유재석과 유희열.

<슈가맨을 찾아서>의 유재석과 유희열. ⓒ JTBC


영화 <서칭 포 슈가맨>는 우선 극적인 사연이나 음악에 먼저 눈과 귀를 빼앗기게 된다. 그 다음으로 세월의 더께를 돌아 돌아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같은 어떤 성찰적인 자세다. 미국에서 발표한 음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우연하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슈가맨'의 화제성 짙은 이야기 속에는 지역과 시대, 인간이란 주제가 녹아있다.

예능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것들을 요구할 수는 있다. 최소한 출연자들에게 '극찬 퍼레이드'를 펼치고, 전출연진이 호들갑을 떨(거나 떠는 시늉을 하)기 전에 시청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를 좀 고민해 달라는 거다. 그 출발은 '슈가맨'이 정말 '슈가맨'인지에 대한 성찰부터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만 이 프로그램이 또 다른 예능 스타의 발견이나 '역주행송'의 음원차트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역주행송'을 제외하고 <슈가맨>이 이것저것 가져온 여러 형식들은 이미 익숙하다 못해 식상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쏟아지는 관심 속에 종편인 JTBC에 처음으로 출연한 유재석이 심혈을 기울였다 해도, '슈가맨'에 대한 정의가 명확치 않은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정착하기까진 힘겨운 여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그건, 우리 가요계에서 진정한 '슈가맨'을 찾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또 굳이 다큐멘터리처럼 해외의 사례를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그 보다 '슈가맨'의 어떤 면을 조명하고, 또 어떻게 재해석하며, 현재를 어떻게 조명하느냐 하는 제작진의 의도와 철학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럴 때 비로소 고군분투하는 유재석과 유희열, '투유'가 덜 안쓰러워 보일 것 같다.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 유희열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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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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