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24분 쐐기골을 터뜨린 인천의 케빈이 관중들과 기쁨을 나누는 순간

연장 24분 쐐기골을 터뜨린 인천의 케빈이 관중들과 기쁨을 나누는 순간 ⓒ 심재철


K리그 클래식 정규 라운드 마지막 33번째 경기에서 성남 FC에 0-1(지난 4일, 탄천종합운동장)로 패하며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져 눈물을 흘렸던 인천 유나이티드. 이들이 다시 이를 악물었다. 악바리 근성이 느껴지는 FA컵 준결승이었다. 정확히 10년 전, 시민구단 창단 후 겨우 두 번째 도전 만에 K리그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역사를 썼던 그 시절 드라마가 떠올랐다.

김도훈 감독이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지난 14일 오후 7시 30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5 FA(축구협회)컵 준결승전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를 펼쳤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2-0으로 멋진 승리를 거두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잇몸으로 버틴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의 슈퍼 서브 진성욱이 전남 수비수들을 앞두고 유연한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인천의 슈퍼 서브 진성욱이 전남 수비수들을 앞두고 유연한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 심재철


준결승전 대진 추첨 과정에서 홈 경기 개최권을 얻은 인천 유나이티드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FA컵 우승과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큰 꿈을 품었다. 그런데 그 꿈이 물거품이 될 것처럼 보였다. 마음은 그대로나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지난 4일 성남 FC와의 원정 경기를 치르며 골키퍼 조수혁이 무릎 인대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팀의 살림꾼 역할을 맡아야 하는 중앙 미드필더들(조수철, 김동석)도 부상 등의 이유로 뛸 수 없는 상황이다. 조수혁 대신 장갑을 끼어야 하는 주전 골키퍼 유현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했던 그가 경기 당일에 되어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성남과의 원정 경기에서 엉겁결에 프로 데뷔전을 치른 새내기 골키퍼 이태희를 이 중요한 준결승전에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경기의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유현은 구단 의료진의 도움으로 거짓말처럼 경기에 나섰다. 상대 팀 전남에는 묵직한 골잡이 스테보가 주장 완장을 차고 공격을 이끌었고, 오르샤와 김영욱의 정확한 킥이 언제나 유현을 괴롭혔다.

경기 시작 후 19분 만에 왼쪽 미드필드 지역에서 오르샤가 감아 찬 프리킥은 매우 날카로웠다. 각도를 잘 잡고 버틴 유현이 이 공을 잘 쳐 냈다. 49분에도 김영욱의 오른쪽 측면 프리킥을 받은 스테보가 결정적인 방향 바꾸기 골을 노렸다. 인천의 골문을 지키는 유현은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며 달려 나와 왼발로 슈퍼 세이브를 기록했다.

경기 내내 욕 먹은 '윤상호', 짜릿한 결승골의 주인공

이처럼 인천 유나이티드는 4007명의 홈팬 앞에서 잇몸으로 버텨야 했다.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던 윤상호가 구멍 난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공격 장면을 만들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김도혁과 나란히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프로 2년 차 윤상호는 경기 내내 인천팬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동료들에게 공을 연결했지만, 다음 동작을 연계시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조급함이 보였다. 활동량은 모자라지 않았지만, 미드필더로서 효율성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후보 명단에 안진범이 있었지만, 김도훈 감독은 윤상호를 끝까지 믿고 연장전까지 들여보냈다. 여기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장전 전반 시작 휘슬이 울리고 딱 24초 만에 윤상호의 왼발 끝에서 믿기 힘든 선취골이자 짜릿한 결승 골이 터졌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 명의 전남 수비수나 노련한 골키퍼 김병지조차도 손을 쓸 수 없는 골이었다.

인천의 늑대 축구를 완성한 김도훈 감독이 준비한 또 하나의 카드는 진성욱이었다. 더구나 그는 올 시즌 전남과의 경기에서 유독 훌륭한 공격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몸놀림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

바로 그 진성욱이 연장전 24분 만에 왼쪽 측면을 완벽하게 휘저은 뒤에 케빈의 쐐기 골을 만들어줬다. 전남 수비수의 몸에 맞고 굴절된 패스였지만 그 쐐기 골은 진성욱이 절반의 역할을 해냈다고 봐야 한다.

10년 만에 보는 인천의 '비상'

 19분, 전남 오르샤의 측면 프리킥이 날카롭게 휘어들어가는 순간 인천 골키퍼 유현이 이를 침착하게 막아내고 있다.

19분, 전남 오르샤의 측면 프리킥이 날카롭게 휘어들어가는 순간 인천 골키퍼 유현이 이를 침착하게 막아내고 있다. ⓒ 심재철


인천 김도훈 감독과 동갑내기 친구인 전남의 노상래 감독은 키다리 수비수 임종은을 공격수로 들여보내며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인천 선수들의 온몸 투혼 앞에 골문을 끝내 열지는 못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이 감격스러운 승리를 관중들과 나눴다. 문학경기장 시절부터 변함없이 인천을 외치던 홈팬은, 10년 전 창단 2년 차 새내기 시민구단 시절의 인천 유나이티드를 떠올리기도 했다.

2005년 장외룡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에 힘입어 K리그 전후기 통합 순위 1위에 오르며 당당히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강팀 울산 현대에 패하며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열악한 환경의 시민구단이 이룬 기적의 성과였다.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감독 임유철)으로 만들어져 많은 축구팬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다시 인천 유나이티드가 <비상> 시즌2를 찍고 있는 셈이다. 2015 K리그 클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임 김봉길 감독이 물러난 뒤 새 감독을 결정하는 과정도 너무 늦었다. 시즌 자체를 준비하는데 절대적인 훈련 기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어렵게 영입한 김도훈 감독은 '늑대 축구'를 표방했지만, 시즌을 코앞에 두고 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설기현의 갑작스러운 이탈(은퇴-성균관대 감독 대행 취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들이 인천 유나이티드를 올 시즌 2부 리그 강등 1순위로 꼽을 정도였다. 구단의 재정 상태도 형편없어서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천수라는 베테랑 공격수가 있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경기장 안에서 리더십을 보이기도 어려웠다.

그야말로 인천은 비주류 선수들로 시즌을 버텨야 했다. 한여름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멋지게 보낸 인천 유나이티드는 거짓말처럼 6위 자리를 유지하며 상위 스플릿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난 4일 동시에 벌어진 33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의 반전 드라마가 막판 순위표를 뒤집어버렸지만, 인천 유나이티드(7위, 하위 스플릿)의 2015시즌은 아직 뜨거운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다.

FA컵에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인천 유나이티드는 오는 31일(토)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들어간다. 상대가 강팀 FC 서울이기는 하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칠 것으로 마음을 모으고 있다.

오는 17일 오후 4시에는 울산 현대와의 스플릿 라운드 홈 경기가 곧바로 이어지지만 이미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위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김도훈 감독은 과감하게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31일에 벌어지는 FC 서울과의 FA컵 결승전이 더 기다려진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비상> 시즌2의 엔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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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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