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의 포스터. 아름답고 낭만적인 당시의 서울을 그려냈지만, 사실 그런 서울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응답하라 1988>의 포스터 ⓒ CJ E&M


지난 20일 방영된 tvN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이 10%를 넘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10.145%) 이날 방송은 자식 혹은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모성'을 다뤘다. 남편이 죽고 홀로 자식을 키우는 선우 엄마(김선영 분)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의연하게 견뎌냈지만, 결국 친정 엄마의 측은지심에 무너졌다. 민정당사 농성에 가담했다 잡혀가는 큰딸 보라(류혜영 분)를 막아선 엄마(이일화 분)의 애끓는 모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런가 하면 남편과 아들 둘을 놔두고 차마 집을 떠나지 못하던, 그리고 자신의 부재에도 잘 지내는 가족에게 실망하는 정환 엄마(라미란 분)의 모정은 바로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울고 웃으며 TV를 봤지만, 이내 마음은 씁쓸해졌다.

유신 말기에서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나던 시기인 1985년까지는 부동산 시세가 안정세를 보였지만, 1988년부터는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때의 부동산 광풍은 강남권 아파트는 물론 전국의 모든 토지가 그 대상이 되었고, 오죽하면 '망국병'이라 지칭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시 '망국병'에 앞장선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바로 그 누군가의 엄마들이다. 부동산 투기 바람의 선봉에 선 엄마들이 드라마에서처럼 '마른 자리 진 자리' 보살피는 대신, 아파트다. 토지다 하며 전국을 휩쓴 덕분에 그 엄마의 자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 자리할라치면 너도 나도 불법 토지 거래로 걸리는 '망국 유전병'을 가진 자식들이 되었다.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절의 모성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지 않는 모성은 또 있다. 바로 운동권 자녀를 둔 보라 엄마의 모성이다. 엄마는 골목에 숨어있다 잡혀가는 보라를 막아선다. 빗속에 신발도 벗어젖힌 채 달려온 엄마의 발에선 피가 흐르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잡혀가는 딸을 막아서며 자신의 딸 보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자식인가, 부모를 생각하는 딸인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조차도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그 기세 등등한 보라는 그런 엄마를 보며 "잘못했다"는 말을 성큼 내뱉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맨발도 마다하지 않고 가녀린 몸으로 막아서는 모정. 그 앞에서 자식은 결국 자존심을 내던진다. 그리고 드라마는 보라가 내던진 자존심이, 그리고 사복 경찰 앞에서 빌듯이 애원하는 엄마의 보잘것없는 자존심이 바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난 20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88> 7회 한 장면

지난 20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88> 7회 한 장면 ⓒ CJ E&M


하지만 1988년에는 보라 엄마 같은 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수도 있다. 1985년 12월 12일 서울 기독교 회관 2층에서 민주화 가족 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이 조직의 원칙은 특이하게도 '담보물 우선주의'이다. 여기서 말하는 담보물은 감옥에 갇힌 자녀들이고, 그 담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선 부모들이 이 협의회의 회원이다. 이 회원들도 보라 엄마처럼 시작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부모들은 개인의 석방을 애원하기 보다는 민주화의 대열에 함께 서는 것이 고통받는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지름길이라고 믿으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6.10 항쟁의 기폭제가 박종철 치사 사건 때 머리에 삼베 수건을 뒤집어 쓰고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어간 남영동 대공 분실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7월 4일 최루탄을 맞고 죽어간 이한열 군의 장례식 때도 시청까지 꽉 매운 행렬의 선두에 선 것은 역시나 머리에 삼베 수건을 쓴 어머니들이었다. 그 어머니들은 바로 드라마가 배경이 된 1988년 10월, 기독교 회관에서 의문사 유가족을 중심으로 135일의 농성을 벌였다.

'그들도 처음엔 평범한 어머니 보통의 아내였다.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고 자기 일에만 바쁜 남편이 밉던 남들과 똑같은 여자였고 어머니였다. 자식이 혹시 무슨 물이나 들지 않을까. 조바심 내던 아버지였다. 적어도 가족들이 고난받는 길을 택하기 전까지는 식구 중의 하나가 이 민족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생애를 다 던지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도종환, 민가협 창립 열돌에 부쳐 <민가협>)


드라마는 보라의 문제를 '집안 문제'로 해결한다. 아버지가 나서서 딸을 주리 틀듯 잡아대고, 그럼에도 튕겨나갔던 딸은 어머니의 눈물 겨운 모성에 결국 항복한다. 극 중 보라는 단순 가담으로 인해 훈방 조치를 받는다. 마치 드라마는 부모의 극진한 마음이 닿았던 것처럼 그리지만, 사실은 그럴 만하니까 한 사안이다. 오히려 기세 등등했던 보라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핑계로 자신의 퇴로를 마련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민주화 시위에 가담했던 보라의 일은 드라마 속 가족의 해프닝으로 다루어진다. 마치 경기에 진 택이를 동네 아이들이 응원하여 추스르게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저 드라마의 해법이 아니라 모성과 부성의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사회가 선택한 해법이다.

민가협의 어머니들은 자식 잃은 고통을 민주화에 동참하는 것으로 승화했지만, 우리 사회는 가족에게 전해지는 모든 사회적 부담과 고통을 가족끼리 보듬고 사랑하는 것으로 해결해 왔다. 스웨덴이 자신들의 집은 곧 사회이며 국가이고 민족 공동체라는 의식으로 노인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은 내 새끼, 내 부모를 위해 각자 고군분투 해왔다. 어느 부모는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껴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냈고, 또 어느 부모는 열심히 투기 바람에 날아 다녔다.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2015년의 '헬조선'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내는 1988년의 전근대적이고 극진한 가족애가 부담스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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