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소극장 콘서트 <무대>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 설문대 여성회관에서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 <무대>가 열렸다. 본 투어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펼쳐졌고 지난 28일 제주에서 종료됐다.

▲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 <무대>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 설문대 여성회관에서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 <무대>가 열렸다. 본 투어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펼쳐졌고 지난 28일 제주에서 종료됐다. ⓒ 뮤직팜


처음으로 읽다가 눈물 흘린 소설은 황순원의 <학>이었고, 처음으로 울었던 영화는 <킹콩>이었나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나 그랬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강렬하며 생(生)이라는 흐름의 특성상 어린 나이에 그 경험을 거치기 마련이다.

나름대로 공연관람 내공 15년, 에릭 클랩턴, 밥 딜런, 오아시스, 엘비스 코스텔로, 패티 스미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역사에 새겨진 뮤지션들의 공연은 제법 빠짐없이 본 것 같다. 감명 깊게 봤고, 가슴 뭉클했고, 소리 지르고 웃고 춤추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공연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26일. 제주도에서 열린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 <무대>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공연을 보고 울게 돼버린 건 처음이라는 걸. 이성적으로 의식할 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난생처음으로 공연을 보다가,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루(淚)

 첫 곡 '섬 집 아기'에 이어 이적이 작사 작곡해 가수 임정희에게 전한 '미워요'를 마친 뒤 그는 "다른 동요와는 다른 서정성을 가졌다고 생각다"며 '섬 집 아기'를 첫 곡으로 선곡한 이유를 밝혔다.

첫 곡 '섬 집 아기'에 이어 이적이 작사 작곡해 가수 임정희에게 전한 '미워요'를 마친 뒤 그는 "다른 동요와는 다른 서정성을 가졌다고 생각다"며 '섬 집 아기'를 첫 곡으로 선곡한 이유를 밝혔다. ⓒ 뮤직팜


푸른 조명이 피아노를 비추고, 이적의 손을 타고 구슬 같은 음이 또르르 흘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첫 곡 '섬 집 아기'에 이어 이적이 작사 작곡해 가수 정인에게 전한 '미워요'를 마친 뒤 그는 "다른 동요와는 다른 서정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며 '섬 집 아기'를 첫 곡으로 선곡한 이유를 밝혔다.

사실 공연의 막을 연 두 곡에서 이미 마음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 돌입해 정확히 어떤 멘트를 언제 했는지 곡의 순서가 어땠는지 또렷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종의 유체이탈이랄까, 아니면 최면상태랄까. 처음 느껴진 감정에 혼란스럽고, 분석하자니 이미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버렸고, 의식적으로 한 곡 한 곡 또렷하게 집중하려니 그렇게 하면 모든 감정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이적은 이번 소극장 공연 <무대>에서 제법 많은 곡을 다른 뮤지션의 곡으로 꾸몄다. 첫 곡 '섬 집 아기'를 포함해 그룹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와 '표정',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배웠다는 구전 가요 '권주가'까지 자신만의 감성으로 곡들을 완성해 관람객들에 선사했다.

"가사가 참 좋은 곡이니까, 잘 들어주세요"라며 노래한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발라드로 편곡한 무대를 보면서, 갑작스레 마음속에서 '어, 이게 뭐지?'라는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감정을 빼앗길 대로 빼앗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다른 공간으로 마음을 이동시켰다.

공연 말미에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서는 기어코 눈물까지 빼앗아갔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양옆, 앞자리에서도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투성이였다.

소(笑)

 이적의 <무대>가 신파스럽고 느리기만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잘 생겼다"라고 소리치는 관객에게 "못 들은 거 같은데 한 번 더 크게 말해주실래요?"라고 받아치는가 하면 "근데 말투가 조금 적선하시는 느낌이 드는데..."라며 관객들을 빵 터뜨리기도 했다.

이적의 <무대>가 신파스럽고 느리기만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잘 생겼다"라고 소리치는 관객에게 "못 들은 거 같은데 한 번 더 크게 말해주실래요?"라고 받아치는가 하면 "근데 말투가 조금 적선하시는 느낌이 드는데..."라며 관객들을 빵 터뜨리기도 했다. ⓒ 뮤직팜


그렇다고 이적의 <무대>가 마냥 신파에 느리기만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과거 김동률과 함께했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 시절에 발표한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곡 '그땐 그랬지'와 '그녀를 잡아요'를 부르고 나서는 "전 이때 이후로 아직까지 그 차만 타고 다녀요"라고 좌중을 웃음소리로 채우게 했다(공연 끝나고 나오는 길에 보니 정말 그 차를 타고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앞서 언급한,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배웠다는 '권주가'라는 정체불명의 곡은 한국식 해학이 가득 담긴 가사의 곡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한 잔 술이 없어 빌붙어 마셔도... (중략) ...술 마실 땐 정답게 토할 때는 아름답게, 떨거지의 술잔, 다리 다리 답답."

민요에 가까운 구성의 곡을 특유의 가는 목소리로, 어느 거렁뱅이가 주막에 앉아 막걸리 한 병 마시는 풍경을 연상시키며 시원하게 부르는 그의 노래에 관객은 하나 되어 "다리 다리 답답"을 추임새로 따라불렀다.

중간중간 멘트에도 유머가 베어 있었다. "잘 생겼다"라고 소리치는 관객에게 "못 들은 거 같은데 한 번 더 크게 말해주실래요?"라고 받아치는가 하면 "근데 말투가 조금 적선하시는 느낌이 드는데..."라며 관객들을 빵 터뜨렸다.

락(樂)

 마지막 앙코르곡인 '다행이다'를 끝으로 이적의 <무대>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앙코르곡인 '다행이다'를 끝으로 이적의 <무대>는 막을 내렸다. ⓒ 뮤직팜


마지막 앙코르곡인 '다행이다'를 끝으로 이적의 <무대>는 막을 내렸다. 불이 켜지고 거울을 보니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있고, 울다가 눈을 비볐는지 오른쪽 눈의 콘택트렌즈가 뒤집혀서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작은 소극장에서 소수의 관객만이 옹기종기 앉아 울고 웃고 즐긴 이적의 <무대>는 짤막한 타이틀 그대로의 공연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공연장은 다른 어떤 무대보다 이적과 관객들의 감성으로 가득 찼다.

고등학교 시절 김광석의 '무대'를 보고 삶의 한 부분이 변했다고 말하는 그의 공연은, 필자를 포함해 몇몇 관람객들의 삶과 감정을 변화시켰다(일단 처음으로 눈물 나게 한 공연이라는 역사를 만들었으니). 공연이 끝나고 사진도 찍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던 한 관객은 동행한 친구에게 "나 이런 공연은 처음 보는데..."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이번 삶을 살면서 자신도 내재하고 있는지 몰랐던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깨우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중 언젠가 다시 열릴 이적의 소극장 콘서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러 가시길.

 작은 소극장에서 소수의 관객만이 옹기종기 앉아 울고 웃고 즐긴 이적의 <무대>는 짤막한 타이틀 그대로의 공연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공연장은 어떤 다른 무대보다 이적과 관객들의 감성으로 가득 찼다.

작은 소극장에서 소수의 관객만이 옹기종기 앉아 울고 웃고 즐긴 이적의 <무대>는 짤막한 타이틀 그대로의 공연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공연장은 어떤 다른 무대보다 이적과 관객들의 감성으로 가득 찼다. ⓒ 뮤직팜



이적 소극장 콘서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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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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