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풍미한 또 한 명의 영웅이 정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스타 김남일이 최근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미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이천수와 차두리가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막내들이었던 이들의 은퇴 소식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했다. 여기에 최근까지 현역 연장 의지를 보이던 김남일마저 은퇴를 선언하며 어느덧 2002 세대가 막바지에 와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난 시즌, 인천 중원의 핵으로 자리했던 김남일 지난 2013년 4월 16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7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 중 김남일(당시 인천)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모습.

▲ 인천 중원의 핵으로 자리했던 김남일 인턴 유나이티드 소속이었을 때의 김남일. ⓒ 남궁경상


화제가 됐던 김남일 어록

김남일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10년까지 3번의 월드컵을 포함해 총 98번의 A매치에서 한국 대표 팀의 중원을 든든하게 지킨 미드필더였다. 히딩크 감독이 붙인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대 핵심 선수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여서 무력화시키는 그의 근성과 배짱을 높이 평가한데서 유래했다.

전성기였던 2002년 월드컵 직후 그는 남자답고 터프한 성격으로 한때 여성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이기도 했다. 월드컵 후광이라고는 하지만, 공격수도 아닌 수비형 선수가 단기간에 그렇게 인기를 끌어 모은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스포츠스타로서는 이례적으로 당시 '김남일 신드롬'이 모 시사 주간지의 커버스토리로까지 다루어질 정도였다.

평가전에서 자신 때문에 부상을 입은 지네딘 지단(프랑스)을 두고 "치료비는 내 연봉에서 까라"는 패기를 부리거나,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절친한 선배 이을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위로는 무슨, 욕 좀 먹어야돼요"하고 응수하는가 하면, 월드컵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나이트에 가고 싶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지금 봐도 상당히 파격적인 당시 어록은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일화로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김남일은 클럽무대에서는 K리그 전남-수원-인천 등을 거쳤고 네덜란드(엑셀시오르)와 러시아(톰 톰스크), 일본(빗셀 고베, 교토) 등 해외무대도 다수 경험했다. 2007년에는 김보민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하여 스포츠스타와 유명 방송인 커플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4년에는 K리그 전북 현대에서 선수생활 막바지에 자신의 생애 첫 프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쁨도 누렸다.

이처럼 화려하게만 보이는 축구 인생이지만 나름의 굴곡도 많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특성상 아무래도 거친 플레이가 많았고 지능적인 파울과 신경전도 잦다보니 상대팀 팬들에게서는 한동안 '더티 플레이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2007년 말 수원을 떠나 빗셀 고베에 입단하는 과정에서는 구설수에 휘말리며 수원 팬들에게 '배신자'라는 야유를 듣기도 했다.

아찔했던 순간

한편으로 많은 축구팬들에게 김남일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이미지는, '역대급 실수'의 아이콘이다. 김남일은 2002 월드컵의 맹활약과 터프가이 캐릭터 못지않게, 종종 중요한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팀을 벼랑 끝에 몰아넣던 '허당 혹은 개그 캐릭터의 인상도 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0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에서 저지른 백태클(이라고 쓰고 '걷어차기'라고 읽는다)사건이다. 김남일은 한국이 2-1로 역전에 성공했던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하여 교체 투입되었으나 위험지역에서 쓸데없이 볼을 끌다가 공을 빼앗기자 무리한 백태클로 상대 선수를 걷어차 페널티킥을 내줬다. 사실 퇴장까지 당했어도 할 말이 없었던 플레이였다.

한국은 결국 동점을 허용하고도 종반까지 나이지리아의 파상공세에 진땀을 흘려야했지만 결국 힘겹게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당시 김남일의 백태클은 남아공월드컵에서 팬들이 선정한 '가장 멍청한 플레이'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이 사건 직후 많은 비난에 시달렸던 김남일은 훗날 스스로도 가장 축구 인생 중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김남일은 꿈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을 세 번이나 밟았지만 정작 동시대를 풍미한 박지성이나 이영표처럼 '센츄리클럽'에는 가입하지 못했다. 김남일은 지난 2013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밟아 35개월 만에 마지막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부상으로 단 한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2013년 6월 5일 레바논전은 김남일의 역대 98번째이자 축구인생의 마지막 A매치가 됐다.

김남일의 마지막 클럽 무대는 J리그 교토였다. 김남일은 지난해 12월 교토와 계약이 만료됐다. 많은 팬들은 김남일이 2014년 K리그 챔피언인 전북 현대를 떠나 교토로 이적할 때부터 아쉬움을 표했다. K리그와 한국축구의 전설 중 하나가 국내도 아닌 일본 프로축구 2부 리그에서 변변한 은퇴식도 없이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한 게 아쉬운 마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남일은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을 털고 제 2의 축구인생을 위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남일은 현재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중이며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미래전략기획단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지도자와 축구행정가를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팀 은퇴식 치러질까

아쉬운 부분은 김남일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통 은퇴를 앞둔 선수들은 마지막 소속팀 혹은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은퇴식을 치르고 작별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김남일이 현역 시절 워낙 많은 팀을 옮겨 다니느라 확실하게 '한 팀의 레전드'라는 이미지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김남일의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교토에서는 외국인 선수 신분인데다 짧았던 활약기간이나 팀 성적을 감안할 때 별도의 은퇴식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K리그의 경우, 전남이나 수원은 김남일이 활약한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적과정에서 구설수도 있어서 김남일에 대한 팬들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고향 팀인 인천이나 K리그에서의 마지막 소속팀인 전북은 어떨까. 인천은 김남일이 가장 애착을 보였던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천은 최근 내우외환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굳이 김남일의 은퇴식까지 챙겨줄만한 여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북에선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활약한 시간이 짧은데다 1년 만에 돌연 교토행을 택하며 실망했던 전북 팬들이 적지 않다. 굳이 앞장서서 김남일의 은퇴식을 챙겨줄만한 명분이 부족하다.

클럽과는 별개로 김남일은 대표팀에서는 은퇴식을 치를 수 있다. 김남일은 A매치 98경기를 뛰어 A매치 70경기 이상 선수에 해당되는 대한축구협회 주관 A매치 은퇴식 자격을 획득했다. 해외무대 경력이 길었던 안정환이나 이영표도 사실상 국가대표 은퇴식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김남일 역시 같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수경력이지만 김남일이 2000년대 이후 한국축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레전드로서 예우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김남일의 은퇴로 이제 2002년 멤버중 남은 현역은 현영민(전남)과 김병지, 둘 뿐이다. 하지만 김병지 역시 지난해 전남과 결별한 이후 아직까지 새로운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서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고 있다. 한국축구의 한 시대가 추억 속으로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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