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 윤석영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아래 QPR)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됐다.

QPR은 최근 올여름 팀을 떠나게 될 9명의 선수를 공지했다. 윤석영을 비롯하여 로버트 그린, 클린트 힐, 알레한드로 파울린, 삼바 디아키테, 아르망 트레오레 등 몇 년간 그동안 QPR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들이 방출 리스트에 포함됐다.

윤석영으로서는 QPR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3년 6개월의 파란만장한 동거를 마무리 짓게 됐다.

역대 11호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 지난 2015년 5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와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윤석영 선수가 공을 다루고 있다. 이날 경기는 6-0으로 맨시티가 승리했다.

▲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 지난 2015년 5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와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윤석영 선수가 공을 다루고 있다. 이날 경기는 6-0으로 맨시티가 승리했다. ⓒ 연합뉴스/EPA


윤석영은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본선에서 대표팀의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하며 한국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 신화를 안겼다. 이때의 활약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2013년 1월에는 3년 6개월의 계약으로 QPR에 입단하면서 꿈의 무대 EPL에 진출하여 유럽파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당시 한국인 프리미어 리그 선수로서는 역대 11호였다.

당시 K리그 전남 소속이던 윤석영은, 이동국-이청용-지동원에 이어 K리그에서 EPL로 직행한 역대 4번째 선수였다. 특히 공격수나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수 포지션의 선수로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것은 이영표에 이어 두 번째였을 만큼 '차기 한국축구 간판 레프트백 후보' 이자 '이영표의 후계자'로서 윤석영에 거는 기대와 주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입단 당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정반대였다, 결과적으로 QPR과 계약을 맺은 것은 윤석영에게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 됐다. 윤석영은 해당 시즌 QPR 유니폼을 입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윤석영은 '입단은 프리미어 리그 선수 신분으로 하고, 데뷔는 챔피언십에서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의 주인공이 됐다. 한마디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유럽 도전이었던 셈이다.

윤석영은 왜 그때 QPR을 선택했을까. 지금 와서는 QPR로 간 것이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윤석영의 도전은 위험부담은 있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선택으로 평가됐다.

당시 윤석영에게 관심을 표시한 팀으로는 QPR과 풀럼이 있었다. 정작 윤석영 본인은 훗날 풀럼행을 더 생각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런데 풀럼은 당시만 해도 욘 아르네 리세라는 EPL 정상급 레프트백이 건재했다. 윤석영 영입에 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은 QPR이었다. QPR은 아르망 트라오레, 클린트 힐, 파비우, 탈벤하임 등 당시 레프트백으로 기용할 수 있는 자원들은 많았지만, 고질적인 수비불안으로 확고한 주전을 굳힌 선수가 없었다.

1월 이적시장은 대체 유망주보다는 즉시 전력감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윤석영으로서는 QPR이 대우는 물론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마침 당시 QPR에서 한국축구의 레전드인 대선배 박지성과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점도 윤석영에게는 생애 첫 해외진출인 EPL 적응에 더 수월하리라는 계산이 나올만했다.

하지만 상황은 윤석영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2013년 1월 24일 윤석영이 정식으로 입단하던 시점에 QPR은 이미 최하위로 추락하며 강등이 유력해지던 시점이었다. 시즌 중반 QPR의 지휘봉을 물려받은 해리 래드냅은 매 경기 벼랑 끝 승부를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온 미지의 선수를 중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강등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래드냅은 윤석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풀럼은 그해를 12위로 마쳤고, QPR은 최하위로 2부에 강등하며 희비가 엇갈렸다. (하지만 풀럼도 이듬해인 2013-2014시즌 강등된다)

챔피언십으로 내려간 이후에도 한동안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영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돌파구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다. 출전 기회를 찾아 돈캐스터 로버스로 단기 임대를 마치고 오며 출전 경험을 쌓았고, 복귀 후에는 시즌 후반기부터 주전들의 부상을 틈타 조금씩 기회를 잡으며 입지를 넓혀갔다. 다행히 QPR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1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복귀에 성공했다. 윤석영은 그해 여름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하여 비록 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조별 리그 3경기에서 모두 주전 풀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4-2015시즌에는 10월 19일 리버풀과의 8라운드 경기에서 영국 진출 1년 9개월 만에 뒤늦은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윤석영은 이후 리그 23경기에서 출전하며 QPR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맨유의 레전드 풀백 출신이자 방송해설자로 활약하던 게리 네빌로부터 "자신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오랜 고생 끝에 비로소 봄날이 찾아오는 듯했다.

너무도 짧았던 EPL에서의 봄

윤석영 드리블 지난 2015년 3월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윤석영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윤석영 드리블 지난 2015년 3월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윤석영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달콤했던 EPL의 봄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QPR은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최하위로 2부 리그 강등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윤석영은 강등이 확정된 맨시티와의 리그 36라운드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책으로 실점을 헌납하며 0-6 대패의 주범으로 꼽히는 등 마무리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안타까운 점은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된 2015년 여름에 윤석영이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는 점이다. 2014/15시즌 후반기부터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윤석영의 주가가 많이 높아진 상황이었고 실제로 영입을 제의한 팀들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PL 외 다른 리그에서는 프리미어 리그 선수인 윤석영의 몸값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뉴캐슬도 여름 이적시장에서 윤석영이 상처를 입으며 이적 추진이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이 길어지며 윤석영은 2015/16시즌 챔피언십에서도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악순환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불운의 연속이었다.

윤석영은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재기를 노렸으나 이미 팀 내 입지를 상실한 그에 기회는 더는 오지 않았다. 시즌 후반기 같은 챔피언십의 찰튼으로 또 한 번의 단기임대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돌파구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QPR은 올 시즌 챔피언십에서도 12위에 그치며 1부 승격에 실패했다. 윤석영이 임대로 활약한 찰튼은 다음 시즌 3부 리그 강등이 확정되며 윤석영은 자신의 선수경력에 또 하나의 불명예 기록을 추가했다. 윤석영은 QPR과 찰튼에서 총 3번이나 강등을 경험하며 또 다른 런던올림픽멤버인 김보경(전북)-대선배 차두리(은퇴. 이상 3회)에 이어 한국축구 유럽파 '3대 강등 요정'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윤석영의 QPR에서의 3년 6개월은 짧은 영광과 수많은 고난의 반복으로 점철됐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유독 운이 없었고 주변 상황도 원활하지 않았다. 선수의 진로가 본인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현실과 함께, 자신에 맞는 팀과 감독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다.

윤석영과 QPR의 결별은 이미 올 시즌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최근 잉글랜드 축구의 강화된 워크퍼밋(취업비자) 규정으로 인하여 이제 한국 선수들은 손흥민이나 기성용처럼 몸값이 아주 높은 경우가 아니고선 잉글랜드에 잔류하기가 어렵게 됐다.

하지만 QPR에서의 방출은 오히려 윤석영에게는 홀가분한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QPR에서 남는다고 해도 이 팀에서는 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윤석영은 잉글랜드 잔류는 어렵게 됐지만 자유계약 선수가 되어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만큼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또 다른 유럽 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볼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K리그나 아시아 시장을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윤석영 측은 일단 유럽 잔류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윤석영은 만 26세로 축구선수로서는 아직 한창나이다.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혜택도 받았고 월드컵과 올림픽, EPL 등 큰 무대에서 풍부한 경험도 쌓았다. QPR에서의 다사다난했던 3년 6개월이 축구선수 윤석영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그저 헛된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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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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