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2009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엠뮤지컬아트의 스테디셀러 뮤지컬 <삼총사>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로 돌아왔다. 특유의 발랄한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한 채 한층 더 젊어졌다. 6월 26일까지 유쾌하고 통쾌한 칼싸움을 벌인다.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부각된 뮤지컬 <삼총사>는 경쾌하고 신이 난다. 어깨를 들썩이며 시종일관 정의를 외치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커튼콜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삼총사>가 말하는 정의에는 특별한 부분이 있다.

[하나] 정의도 유쾌할 수 있다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파리에 온 달타냥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사가 되기 위해 파리로 온 달타냥에게 펼쳐진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겉보기 화려한 파리는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친다. 원칙을 말하는 달타냥에게 열광하던 시민들은 은화 몇 푼에 그를 바로 몰아세운다. 그 와중에도 명예와 정의, 사랑이라는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는 달타냥. 그의 순수함과 낭만이 무대를 채운다. ⓒ 곽우신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삼총사 <로빈훗>에서 혁명의 투사였던 황이건, <드라큘라> 때 남다른 카리스마를 뽐낸 박은석,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진중한 연기를 선보인 조강현. 세 배우 모두 이전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풍긴다. 배우들의 디테일이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셋 모두 재밌지만, 특히 조강현의 아라미스가 발하는 느끼한 아우라는 어마어마하다. 이런 분이 프레스콜 현장에서 대답이 그렇게 무미건조했다니…. ⓒ 곽우신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고 부르짖는 <삼총사>의 최대 장점은, 그 정의라는 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을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정의에 대한 질문 자체가 엄숙한 요즘, <삼총사>는 이처럼 정의도 유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총사시험에서 삼총사에게 능욕당하는 달타냥의 어리바리한 모습이 사뭇 귀엽다. 삼총사의 대사를 따라 하거나, 합류하고 싶어서 얼쩡거리다가 은근히 무시 받을 때 토라지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느끼하고 능글맞은 아라미스는 대사할 때마다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허세 가득한 포르토스가 진짜 해적을 몰고온 후 삼총사의 반응이라든가, 칼로 총알도 튕겨낸다는 전설 아토스가 진짜로 총알을 튕겨내는 장면 등에서는 배를 잡을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불꽃처럼 터진다.

유치찬란하다 못해 가끔 손발이 사라질 것 같은 이 작품이 매력적인 건, 정의 그 자체를 우습게 만들지도 않으면서도 어렸을 적 순수하게 외쳤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꼬마 때 즐겨보던 특수촬영물이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둘] 정의는 거창하지 않다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박형식의 달타냥 2013년과 2014년에 이어 2016년 <삼총사>의 달타냥으로 돌아온 박형식. 이제는 뮤지컬 무대에서도 제법 익숙한 기교를 보여준다. 연기가 안정된 데 비해 노래는 여전히 약간 아쉽다. 그래도 시즌이 지날수록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니 다행이다. 달타냥이 말하는 정의는 그렇게 크고 어려운 게 아니다. ⓒ 곽우신


<삼총사>가 그토록 외치는 정의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프랑스 왕이 성군인지 폭군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묘사가 없고, 위기에 빠진 왕을 구하는 게 왜 정의인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왕을 지키는 총사대니까 왕을 구해내는 것이고, 콘스탄스가 위험에 처했으니 그를 사랑하는 달타냥이 그녀를 감옥에서 꺼내주는 정도다.

하지만 정의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위대한 단어가 아니다. 정의가 훼손되고 무시당하는 세상이다 보니,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란 게 저 멀리서 빛나는 시대정신만을 가리킬 때가 많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작은 올바름을 소중히 하는 것도 역시 정의를 지키는 일이다.

가면을 쓴 왕이 왕인 줄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손을 내미는 것뿐이다. 누명을 쓰고 감금된 사람이 있으니까 구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통치행위의 의미나 왕권옹호의 정당성을 굳이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정의를 추구하는 데 반드시 대단한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셋] 정의는 상황논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근위대를 무찌르는 삼총사 뮤지컬 <삼총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칼싸움 장면이다. 빠른 박자의 음악 위에서 오고 가는 칼날의 궤적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갈색 옷을 입은 달타냥이 파란 옷을 입은 총사들과 연대하여 빨간 옷을 입은 근위대와 싸우는 건 그냥 우연이다. ⓒ 곽우신


밀라디와 리슐리외의 음모를 파헤치기 전 주저하는 삼총사에게 달타냥은 정의의 원칙을 상기시킨다. 아토스는 제도와 절차에 얽매였다가 정작 눈앞의 정의를 지키지 못한 과거가 있기에 달타냥의 외침에 더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결국, 삼총사는 총사대에 보고하지 않은 채 징계를 각오하고 단독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달타냥에게 함께 싸우자고 권한다.

뮤지컬 <삼총사> 속 달타냥과 삼총사는 여러 번의 결투를 거친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위대가 사사건건 '쪽수'를 앞세워 그들 앞을 방해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1막에서의 4대 4 칼싸움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2막에서 20여 명의 앙상블을 상대로 벌이는 전투는 <삼총사>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아토스 "쪽수가 안 맞아."
포르토스 "그게 뭔 문제야."
- 뮤지컬 <삼총사> 1막 No.9 '의기투합' 중에서

뮤지컬 <삼총사>는 정의가 지켜야 할 원칙이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주변 환경이 열악하다든가 상대가 너무 많다든가 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눈앞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지키면 된다. 행동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사이에 계산하거나 고려해야 할 것들은 모두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넷] 정의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윤영콘스 역대 수많은 여배우가 거쳐간 콘스탄스이지만, 조윤영의 콘스탄스는 그중에서도 사랑스러움만큼은 톱에 꼽을 정도이다. <명동로망스> 때 무대에 많이 서지 못한 한을, 원캐스트로 풀고 있는 배우. 연기톤이 다소 일관되는 단점이 있지만, 앞으로가 매우 기대되는 배우이다. 1막에서 보여주는 발랄함에 절로 흐뭇해진다. ⓒ 곽우신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윤공주 밀라디 처음에는 리슐리외의 편에 선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2막에 들어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밀라디. 주인공도 쓰러트리지 못한 적을 해치우는 '진히로인'이나 다름 없다. 극에서 맺어지지 못한 연은 커튼콜에서 아토스와 손을 잡고 등장하는 식으로 풀어진다. 윤공주 배우는 최근 오른 모든 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매력을 뽐낸다. 못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 곽우신


달타냥부터 삼총사까지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은 모두 남자이다. "17세기 파리, 남자의 전설이 부활한다"고 홍보하는 뮤지컬 <삼총사>는 분명 남성 중심적인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캐릭터를 곁다리에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단 두 명밖에 없는 여성 캐릭터 콘스탄스와 밀라디는 각각 1막과 2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달타냥과 러브라인을 구축하는 콘스탄스는 첫 등장부터 달타냥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밀라디의 은화 몇 푼에 정신이 팔려 달타냥을 구타하는 파리 시민들을 꾸짖고, 쓰러진 달타냥에게 칼을 겨누는 쥬사크를 몸으로 막아선다. 달타냥의 회복을 돕는 것도 콘스탄스이고, 철가면에 구속되어 아무 말도 못 하는 왕의 의사를 해석하여 달타냥이 삼총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콘스탄스이다. 아, 키스도 먼저 한다.

2막에서 콘스탄스가 전형적인 위기에 빠진 여성 캐릭터로 전락하는 건 아쉽지만, 대신 2막에서 빛을 발하는 밀라디가 있다. 진실을 알게 된 후 아토스에게 적의 실체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게 밀라디이다. 아토스에 의해 구출 받는 대신 감옥에서 스스로 탈출하는 기지까지 발휘한다. 마지막 순간 총에 맞고 쓰러진 주인공 달타냥이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이번 음모의 배후이자 최후 보스를 직접 처단하는 것 역시 밀라디이다.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있어, 단지 보이지 않는 것뿐"

뮤지컬 <삼총사> 프레스콜 지난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삼총사>는 동명 원작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파리에 갓 상경한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도움을 받아 음모에 빠진 왕을 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모두 달성하는 이야기이다.

▲ 사총사, 우리는 하나 2016 <삼총사>에서 노련미를 담당하고 있는 장대웅, 강태을, 카이, 박성환. 다들 잘하지만, 달타냥에 캐스팅된 카이는 네 명의 달타냥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뽐낸다. ⓒ 곽우신


"이번에 선출되는 국회의원분들을 꼭 초대하고 싶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다. (중략)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와 우정을 꼭 즐겁고 행복하게 전달해드리고 싶다."

지난 4월 8일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의 프레스콜에서 달타냥 역에 쿼드러플 캐스팅된 배우 카이는 "공연에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꼭 그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정의의 메시지를 던지는 극을 한 번쯤 보기를 권해본다.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으니까. 아니, 살아있어야 하니까.

"세상이 또 혼란에 빠지면, 우리 다시 힘을 모아 함께 싸우자. 우리가 힘을 모아 정의를 위한다면, 세상에 평화가 올 거야. 서로를 믿으면서, 서로를 사랑하며 오로지 정의 위해 싸우자. 세상은 우리를 보고 바보라 했네. 순진하게 정의를 믿는 바보.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살아있어. 단지 보이지 않는 것뿐." - 뮤지컬 <삼총사> 2막 No.30 '우리는 삼총사' 중에서

뮤지컬 <삼총사>의 포스터 지난 4월 1일 개막하여 오는 6월 26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삼총사>의 포스터.

▲ 뮤지컬 <삼총사>의 포스터 뮤지컬 <삼총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루이13세 재위 기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달타냥과 삼총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은 그리 많지 않다. 원작 소설도 실제 역사와는 다른 점이 상당히 있는데, 뮤지컬 <삼총사>는 여기서 더 멀어진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별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보다가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역대 삼총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는 6월 26일까지. ⓒ 엠뮤지컬아트



달타냥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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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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