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공식 포스터. 부산행 기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 <부산행> 공식 포스터. 부산행 기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NEW


좀비의 현대적인 은유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유래한다. 해외 평단이 엄선한 작품으로 구성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사회적 동요와 인종주의, 핵가족의 붕괴, 폭도에 대한 공포, 그리고 아마겟돈까지 60년대 후반 미국이 골몰하고 있던 각종 문제를 건드린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이 항상 승리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위안도 확신도 찾을 수 없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을 반영한 최초의 공포영화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한다.

좀비 영화, 현대사회 불안감 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이전까지 공포를 지배하던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과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두려움을 제시하며 현대 호러 장르의 장을 열었다. 이후 <28일 후>(2003)는 속도를, <레지던트 이블>(2002)은 액션을, <월드워Z>(2013)는 스펙터클이란 요소를 더하며 좀비 영화는 발전했다.

좀비의 해석에 대해 소설 <세계대전 Z>의 작가 맥스 브룩스는 이렇게 정의한다. "좀비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사회 붕괴 현상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완벽한 렌즈다. 그들은 사스(SARS)도 되고, 에이즈(AIDS)도 된다. 도시 전체를 삼켜버리는 허리케인이자 전 대륙을 불살라버린 지배자 민족도 된다." 바이러스의 두려움, 종말론적 세계에서 살기 위한 투쟁 등 현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좀비 장르의 효과는 대단하다.

거대한 물량을 투입하는 여름 영화 시장에 등장한 <부산행>은 의아스럽다. 새로운 소재에 목말라 하더라도 좀비는 아직 한국 영화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소재이지 않나. <이웃집 좀비>(2010)<미스터 좀비>(2010)<좀비 스쿨>(2014)은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냉전 시대를 예언한 <GP506>(2007)과 광우병을 둘러싼 현실을 은유한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2011)의 '멋진 신세계' 정도가 한국 좀비 영화의 인상적인 페이지로 남아있다. 이런 현실에 등장한 <부산행>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전장인 셈이다.

<부산행>과 프리퀄 <서울역> 잇는 심은경 

 영화 <부산행>과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의 첫 장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열차에 오르는 소녀(심은경 분)로 연결된다.

영화 <부산행>과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의 첫 장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열차에 오르는 소녀(심은경 분)로 연결된다. ⓒ NEW


영화의 시작은 연상호 감독이 <사이비>(2013)를 끝낸 직후로 거슬러 간다. 서울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애니메이션 <서울역>(8월 18일 개봉 예정) 작업에 착수했던 연상호 감독은 실사로 만들자는 제작사의 의견을 접하고, <서울역>과 연결되는 서사로 구성된 <부산행>을 제작사에 내놓는다.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는 <부산행>의 첫 장면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열차에 오르는 소녀(심은경 분)로 연결된다.

<부산행>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상당히 비슷하다.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 다양한 군상이 극한 상황에서 표출하는 본성, 생존의 사투 등이 대표적인 유사점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나타난 "집 안에 머물 것인가, 바깥으로 나갈 것인가,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등의 의문은 <부산행>에서 "열차를 세울 것인가, 계속 달리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만 하나?" 등으로 충실하게 인용되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반대로 접근한 지점도 있다. 정지된 공간을 움직이는 기차로 바꾸면서 <부산행>은 운동의 힘을 얻는다. 생존자의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내릴 수 없는 공간의 고립성은 힘차게 내달리는 기차의 운동 에너지와 유사 또는 대비를 형성한다.

<부산행>의 기차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까지 달리며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과 지역에서 펼쳐지기에 지역적인 스펙터클로 작용하며 몰입감을 증대한다. 스펙터클 속엔 외국산 좀비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익숙한 장면이 차용되어 있다.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이기심과 이타심이 충돌하는 등 윤리학적 실험을 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도 장르의 익숙한 풍경이다.

다른 '의미'로 <부산행>의 기차를 읽으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기차는 산업 발달을 상징하는 수단이다. 한국은 고속 성장의 신화를 이루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장본인이 아닌가. <부산행>의 기차엔 '빨리빨리'와 '잘 살아보세'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의 패러다임이 깊이 배어있다.

<부산행>에 담긴, 좀비 영화 이상의 무엇

 연상호 감독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물질문명 사회는 결국 남성 중심 사회다, 그 세계의 종말은 남성 중심 사회의 종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물질문명 사회는 결국 남성 중심 사회다, 그 세계의 종말은 남성 중심 사회의 종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NEW


연상호 감독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물질문명 사회는 결국 남성 중심 사회다, 그 세계의 종말은 남성 중심 사회의 종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부산행' 연상호 감독 "내가 변했다고? 난 계속 변할 거다")그의 말을 참고하여 영화를 보면 석우(공유 분), 상화(마동석 분), 영국(최우식 분)은 다른 인물이나 한 인물로 읽을 여지도 있다.

석우는 가족보다 일을 우선으로 하는 펀드 매니저다. 딸 수안(김수안 분)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아내와 별거 상태다. 오로지 성공만을 목표로 타인을 밟고, 가족을 외면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인물이 석우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상화는 석우가 상실한 과거의 한 자락이 아닐까 싶다. 여자친구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영국은 아내와 처음 만났던, 아니면 그 이전 석우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석우, 상화, 영국은 여성(딸, 아내, 애인)을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여성은 그들이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게 이끄는 미래라는 끈이다. 석우는 열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또는 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아마도 용석(김의성 분)이란 천민자본주의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성이란 순수와 근원의 품을 향해 달려가며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을 얻는다.

퍼지는 바이러스를 피해 살아남은 이들이 도착한 '부산'은 한국의 오지 않을 미래에서 반드시 가야 하는 내일로 의미가 변화한다. 연상호 감독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같은 장면이나 다른 결말을 그리며 긍정적인 시선을 한층 강화한다. 다음 세대에게 남겨 줄 유산은 바로 희망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후 10년.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부산행>은 어떤 의미일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후 10년.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부산행>은 어떤 의미일까? ⓒ NEW


2006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후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부산행>은 어떤 의미일까? <부산행>의 재난엔 '세월호'라는 시대의 슬픔이 드리워져 있다. 재난에서 표출된 부조리, 무능력, 거짓, 이기주의, 무관심이 겹쳐진다. 그리고 성장의 시대에서 우리가 잊거나 외면했던 가치가 나타난다. <부산행>은 우리 사회를 말하는 거대한 메타포다.

<부산행>은 괴물이 득실거리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분노의 목소리와 위로의 노래를 함께 들려주고 있다. <부산행>은 지금 반드시 도착했어야 하는 영화였다. 다음 10년 후 어떤 영화가 올 것인가? 대한민국이란 기차를 어디를 향해 달릴 것인가? 해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부산행 연상호 공유 마동석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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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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