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공식 포스터. 부산행 기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 <부산행> 공식 포스터. 부산행 기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NEW


영화 <부산행>을 보았다. 반응이 극단으로 나뉜다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꽤 균형감이 좋은 영화로 보였다. 살짝 발을 담그기는 하지만 신파에도 권선징악에도 지나치게 쏠리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흥행을 위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자는 요구가 분명히 있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주인공 석우(공유 분)는 나쁜 듯 크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후반부의 아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도 왠지 최소한의 감정선을 갖추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투적 서사에 경계심이 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다. 하지만 영화는 뭔가 도드라지는 부분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감독의 균형 감각이 왠지 영화의 한계선을 그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장르였고 그랬더라면 충분히 풍부해질 수 있는 좋은 재료의 이야기를 너무 무난하게 마쳐버린 것만 같았다.

한국 영화에서 자주 시도되지 않은 장르를 무리 없이 시연해 냈다는 면에서는 분명 뚝심이 있었지만, 영화는 알게 모르게 단선적이다.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좀비물의 특징이겠지만 해결 과정도 그 속에 놓인 상징도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죄의식을 가질만한 정보를 통화를 통해 간단하게 전달하는 장면을 제외하곤 사건 정황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기괴한 상황 속에 던져지는 카프카적인 설정이 좀 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서사에 기대 있지만 결국 분위기를 통해 전달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감독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던 것 같다. 좀비는 죽은 자이기에 신체를 죄의식 없이 마음껏 타격하는 액션영화의 쾌를 따르거나 상황이 주는 음울함과 기괴함에 무게 중심을 두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행>은 다소 어정쩡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죄의식을 드러냈다면 분명 후자의 선택일 텐데 그런 정서에 마음껏 빠져들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달려드는 좀비 떼는 장르에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충격을 받을만한 설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음울한 정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장면은 기차 한량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좀비 떼들의 모습 정도였다 낯선 장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평이함이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생소함이 주는 새로움과 좀비라는 설정이 주는 에너지가 여름시즌 흥행 가도를 달리기에는 충분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김기덕스러운 장렬한 영상미도 이런 장르에는 꽤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마치 영화 <피에타>에서 승용차로 사람을 끌고 가며 도로에 거대한 붓처럼 핏자국을 그리는 엔딩처럼 말이다.

 <부산행>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먹는 좀비스러움을 짚어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시위대는 좀비로 조롱당하기도 했으며, 특정한 이슈가 폭발하면 집요한 여론재판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21세기 한국사회는 한 번쯤은 좀비 떼가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 NEW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는 것 같다. 가족애는 절제되었고 권선징악의 영화로도 결론 내릴 수 없는 모호한 영화임에도 말이다.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역시 보이기만 하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좀비 떼들과 한국사회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아주 단순한 문자적 서술만으로도 꽤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거칠고 직접적인 비유만 해 보더라도 시위대는 좀비로 조롱당하기도 했으며, 특정한 이슈가 폭발하면 집요한 여론재판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21세기 한국사회는 한 번쯤은 좀비 떼가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가 좀 더 마음껏 달려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좀비물과 같은 장르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장면이 나오더라도 관객들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할지라도 다양한 상징들을 던져주기만 했더라도 관객들은 <곡성> 보듯 달려들었을 것이고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졌을 것이다. 뚝심 있고 재미있게 만들어졌음에도 영화의 내부는 왠지 비어있다고 느껴져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맥락에서 보면, 천만 관객이 원한 것은 딱 거기까지만 즐기고 방어선이 완비된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늦은 시간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여간 아무것도 남아있지는 않았다.

부산행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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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의존적인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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