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스포츠 경기의 승부를 예측하는 <예언자들>에 출연한 탁재훈. 탁재훈은 "(승부를) 되게 잘 맞힌다"며 "그것 때문에 3년을 쉬었다"고 농담을 한다.

장면 둘.
<SNL>에 출연한 닉쿤. 2PM 그룹 멤버들과 출연한 닉쿤은 과거의 자신에게 충고를 하는 콘셉트를 소화하는 도중 "술은 꼭 집에서 먹고 대리를 불러라"라고 말한다.

장면 셋.
<아는 형님>에 출연한 이수근과 탁재훈. 핸드폰을 들고 있는 탁재훈에게 이수근이 "휴대폰으로 다른 거 하는 거 아니냐? 다신 안 그러기로 하지 않았냐" 며 농담을 건네자 탁재훈은 "설마 또 걸리겠냐"고 받아친다. 이수근과 탁재훈 모두 불법도박 혐의로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유행처럼 번지는 '셀프 디스'의 시대

 불법 도박 혐의로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탁재훈. 지난 7월 25일,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셀프디스코믹클럽 디스코>의 출연했던 모습이다.

불법 도박 혐의로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탁재훈. 지난 7월 25일,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셀프디스코믹클럽 디스코>의 출연했던 모습이다. ⓒ SBS


위 사례들은 모두 자숙기간을 거친 연예인들이 복귀할 때,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이를 개그 소재로 삼는 장면이다. 이른바 '셀프 디스'는 위 세 명의 연예인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셀프 디스가 '쿨'하다고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스스로를 희화화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잘못을 감추고, 그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보다는 분명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장면들은 시청자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를테면 탁재훈이나 닉쿤, 이수근이 저지른 잘못을 보자. 그들의 과거 행위만을 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불법도박이나 음주운전 모두 법에 저촉되는 일이고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일이다. 형사처벌을 받은 사안을, 마치 과거의 작은 실수나 해프닝 정도로 오해할 수 있게끔 하는 건 위험하다. 솔직한 유쾌함을 넘어, 과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동은 그 일 자체를 가볍게 넘기려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주어져야 한다. 잘못을 한 연예인들이 무조건 TV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한 무게 자체를 가볍게 보이게 하는 행동에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그런 잘못을 웃음의 소재로 삼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가끔은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과거에 얽매여 있기 보다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반응을 받아들이는 게 더 성숙한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그 잘못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뉘앙스가 다르다. 가벼운 잘못이나 실수일 때는 그 실수를 본인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재치 있어 보일 수 있다. 다소 무거운 그리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불법 행위들에 대해서는 그 가벼움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셀프 디스 이전에 필요한 질문들

 닉쿤의 음주운전 '셀프 디스'. 과연 시청자도 '쿨'하게 받아들였을까

닉쿤의 음주운전 '셀프 디스'. 과연 시청자도 '쿨'하게 받아들였을까 ⓒ tvN


풍자나 희화화는 예전 <SNL>의 사화·정치 풍자나 인물 풍자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당시 <SNL>의 '디스'는 큰 재미를 담보해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출연자들이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들의 행동을 흉내 내고, 그들이 한 발언을 비틀어 개그를 만드는 것 자체에 풍자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SNL>은 희화화에 급급하다. <SNL>은 기본적으로 일일 호스토로 출연한 연예인들의 과거를 주재료 삼아서, 이를 당사자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만들며 웃음을 뽑아내고 있다. 그런 방식이 효과적으로 먹힐 때도 있지만, 불법적인 일에 연루된 연예인들까지 자신의 과거를 '지나치게' 당당하게 희화화하는 것도 풍자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풍자는 그 희화화로 인해 통쾌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그 안에 현실을 비트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셀프 디스들은 당사자가 시청자로부터 면죄부를 받기 위한 사전포석에 더 가까울 때가 있어서, 아니 그런 것처럼 보여서 씁쓸하다.

적절하게 사용만 한다면, 셀프 디스는 분명 괜찮은 웃음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셀프 디스가 시청자의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신중하고 적절하게 잘 준비된 디스라면 그 디스는 유효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마치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던 것처럼 가볍게 여기는 태도로 보인다면, 그 디스도 과연 '성공적'인, '쿨'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셀프 디스 이전에, 당사자는 해당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 숙여 반성하고 자숙을 거쳤는가. 셀프 디스를 통해 웃음을 만들면서, 그 죄 자체를 가벼운 흑역사 중의 하나로 치부하지는 않았는가. 셀프 디스를 통한 웃음이 활개치는 TV를 보며, 여러 질문들이 스쳐 지나간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탁재훈 닉쿤 이수근 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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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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