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오늘,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김정남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제압하며 아시안게임 첫 단독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1986년 이전에도 축구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시상대 꼭대기 위엔 대한민국 대표팀만 서 있지 않았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선 당시 버마(현 미얀마)와 연장 끝에 비겨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로 연장 끝에 북한과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 위해 모인 스타들

조광래, 결승골 환호  지난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한국 대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조광래가 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모습.

▲ 조광래, 결승골 환호 지난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한국 대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조광래가 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모습. ⓒ 연합뉴스


10여 년 뒤 88올림픽을 2년 앞둔 1986년, 아시안게임이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홈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축구 대표팀의 우승을 향한 열망은 대단했다.

197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김정남 감독의 지도로 허정무, 조광래, 최순호, 조영증, 변병주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똘똘 뭉쳤다. 여기에 아시안 게임 이전에 펼쳐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 월드컵 사상 첫 골, 첫 승점 등을 만들어내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기에 팬들의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해 9월 20일, 드디어 서울아시안게임의 첫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대표팀은 부산구덕경기장에서 인도 대표팀과의 본선 첫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대승. 전반 9분 만에 노수진의 첫 골로 앞서더니 전반 32분, 공격의 중심 최순호가 추가 골을 터트렸다. 경기 막바지 후반 38분에는 페널티킥까지 얻어냈고 박창선이 이를 성공시키며 3:0의 좋은 출발을 만들어냈다.

다음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0-0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대표팀은 본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상대로 4대2의 압승으로 8강 진출권을 따냈다. 전반전까지 중국과 1-1로 팽팽했지만, 후반에만 3골을 내리퍼붓는 화력을 보여준 경기였다.

8강에서 마주친 벽, 이란

그러나 8강전에서 마주친 이란은 우승을 위한 대표팀의 가장 큰 벽이었다. 김정남 감독은 최순호를 중심으로 공격진의 대형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당시 언론 표현으로 '아코디언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술은 전반 36분 만에 효과를 내는 듯했다. 박창선이 크로스한 볼이 이란 판자리고미의 손에 맞았고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박창선은 이 페널티킥을 가볍게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반 초반에 위기가 찾아왔다. 전반 41분, 이미 경고를 한 장 받은 허정무가 이란의 찬지즈를 수비하던 중 깊은 태클로 카드를 한 장 더 받은 것이다. 결국, 허정무는 퇴장당했고 대표팀은 10명으로 이란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려 좋지 않은 부산구덕운동장 상황과 허정무의 퇴장으로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은 대표팀은 이란의 단순한 공격에도 위험한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힘겹게 마지막까지 잘 버티는듯했으나 결국 종료 5분을 남기고 바비에게 동점 골을 허용하며 경기는 연장전으로 흘러갔다.

수적 우세한 이란이 연장전을 이끌 것으로 예상하였나, 우리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결국, 경기는 킥오프 후, 120분이 될 때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승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승부차기가 시작되고 박창선, 김주성, 최순호를 차례로 내보낸 대표팀은 모두 골을 넣었다. 이란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성공한 상황. 각 팀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선 조영증과 모하메드카니가 운명을 갈랐다. 모하메드카니가 골을 넣지 못했지만, 조영증은 골을 넣었다.

이후 이란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하지루가 골을 넣었지만 대한민국의 마지막 키커 이태호가 깔끔한 마침표를 찍으며 결국 승부차기 결과 5대 4로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은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오히려 손쉬웠던 4강전과 결승전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지난 1986년 10월 5일,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 vs. 사우디아라비아 결승전에서 변병주선 수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지난 1986년 10월 5일,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 vs. 사우디아라비아 결승전에서 변병주선 수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큰 산을 넘은 대표팀은 서울로 올라와 잠실에서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정남 감독이 "인도네시아를 만나서 좋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표팀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는 경기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반전 조광래의 선제골과 후반전 최순호의 멀티 골, 교체 투입된 이태호의 골로 손쉬운 4-0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이틀 뒤, 10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망의 결승전이 잠실에 모인 8만 명(당시 기록)의 관중 앞에서 펼쳐졌다.

결승전에서 대표팀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다. 전반 시작 7분 만에 김평석이 뒤로 돌린 볼을 조광래가 25m 밖에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최순호, 박창선, 변병주 등이 끊임없이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사우디는 주포 마제드의 결장에 별다른 공격을 해보지도 못했다.

경기 종료를 6분 앞둔 시점에선 쐐기 골까지 들어갔다. 사우디의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의 박창선이 올린 크로스를 변병주가 가볍게 오른발 인사이드로 마무리 지은 것. 결국, 경기는 대한민국의 2-0 승리로 끝났고 1986년 10월 5일,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독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아시안게임 우승, 그 이후...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한국팀 우승  지난 1986년 10월 5일, 86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86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한국팀 우승 지난 1986년 10월 5일, 86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우승과 동시에 조광래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체력이 남아있을 때,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다."라는 말로 의사를 밝혔고 독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최순영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에게 총 2억5000만 원 가량의 포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물가를 생각했을 때,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21세기가 될 때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은 단 한 번의 아시안게임 우승도 기록하지 못 했다.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 메달을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얻기까지 무려 28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금메달을 되찾아온 사람이 바로 최근 별세한 고 이광종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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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축구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축구국가대표 조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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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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