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cyborg), 이 단어는 사이버네틱스(cynetics 인공 두뇌학)와 생물(organism)의 합성어이다. 사이보그는 여러 영화와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이들은 '로봇'과 달리, 인간이 기계와 일체화돼 진화를 이룩한 존재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보그'의 문학적 경계가 형성된다. '인간'이지만,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선 존재. 과학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그 성과로 '로봇'을 만들어 내지만, 그 '기계적 존재'는 늘 '인간'의 영역에는 함량 미달이다. '알파고'처럼 인간 영역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간보다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에 인간은 자부심을 느낀다. '인간과 닮았지만 아직은 인간에 한참 못 미치는 존재', 하지만 '인간을 닮거나, 넘어설까 위협을 주는 존재. 이 아이러니한 이중성이 우리가 '기계 인간'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실체가 아닐까? <즐거운 나의 집>에 등장한 사이보그 남편에 대한 감정도 바로 이런 미묘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즐거운 나의 집> 사이보그 남편과 과학자 아내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즐거운 나의 집> 사이보그 남편과 과학자 아내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 KBS


날마다 8시 29분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남편, 천재 과학자인 아내가 맞춘 매뉴얼에 따라, 아내를 사랑해 주는 남편, 하지만 첫 장면부터 아내 세정(손여은 분)은 그 다정한 남편이 건네는 하얀 국화를 뿌리친다. 매뉴얼에 맞추어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남편, 하지만 매뉴얼의 빈틈을 발견한 세정은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녀의 불안함은 그 이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미스 프랑켄슈타인 세정,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성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름이 있다. 1818년 메리 셸리가 썼던 <프랑켄슈타인>이다.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의 대학 시절 별명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살리려 했지만 실험을 위해 강아지를 죽였다고 오해를 받은 그녀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별명이 주어졌다. 대학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스치듯 지나간 이 별명, 하지만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과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성민(이상엽 분)의 관계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버전과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단어를 '괴물'에 비유한다. 하지만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생명체는 괴물이 아닌 'the creature' 즉 '피조물'로 불렸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생명체를 '프랑켄슈타인=괴물'이라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이 어긋난 명명은 오히려 진실을 말하고 있다.

시체를 조각조각 이어붙여 생명으로 만든 '피조물'. 그는 흉측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 피조물을 탄생시킨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를 흉한 괴물로 치부했다. 하나의 '생명'인 존재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자신이 저질러놓은 생명의 과업을 그저 방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있다. 어쩌면 소설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진짜 괴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즐거운 나의 집>은 원작의 슬픈 사연과 오명의 역사를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이야기로 옮겨온다. 학우들에게 외면받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성민, 그런 성민에게 세정은 그 전부터 마음이 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그와 그녀의 인연, 그 결과물은 지금 여기서 사이보그가 된 남편 성민과 그런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세정의 불안한 관계이다.

드라마는 '미스터리'하게, 때로는 '호러틱'하게 성민과 세정의 불안한 관계를 그려낸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성민과, 그것을 안간힘을 써서 막으려하는 세정의 초조함, 그들의 어긋난 기억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진실들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서로 다른 기억과 진실들이 배우들의 혼란스런 표정과 겹쳐지며, 즐거워지려 했지만 결국 즐겁지 않은 결혼의 이면을 들춘다. 사이보그 남편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에게 '그럼 아버지는 인간인 어머니에게 왜 그랬느냐'고 반문하는 세정. 그의 물음은 인간과 하는 '결혼' 제도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결혼, 사랑 그리고 사이보그

ⓒ KBS


처음엔 남편을 불신했지만, 자신이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세정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다. 세정을 배신하고 또 배신했던 성민, 그런 성민을 갖기 위해 그의 생명을 난도질한 세정. 드라마는 '사이보그 남편'이란 불안한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로 마무리된다. '사이보그'가 돼서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가 인간임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한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슬픈 사랑 이야기, 그 원작에 걸맞게 커튼이 드리워진 아파트, 밀실과도 같은 방, 그 속에서 벌어지는 스토커 같은 '통제'시스템, 정작 그런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해 약으로 버티는 세정의 모습과 불안함은 그들의 즐겁지 않은 결혼 생활을 잘 보여준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사이보그'라는 신선한 소재를 도입한 '미스터리 호러' 장르는 <드라마스페셜>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더구나 '즐거운 나의 집'은 <어셈블리>를 연출한 최윤석 피디의 작가 겸업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이기도 하다. <어셈블리>에서 열연을 펼친 송윤아, 옥택연, 정희태의 카메오 출연 또한 그 덕분에 가능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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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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