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는 많은 동명이인 선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LG트윈스에서 함께 뛰었던 2명의 이병규다. 이들은 정확히 10살의 나이 차, 그리고 좌타 외야수라는 공통점까지 있어 LG 팬들 사이에서는 이병규가 이병규의 뒤를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덧 9번 이병규는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고 7번 이병규는 완벽히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투수 윤석민(KIA 타이거즈)과 타자 윤석민(넥센 히어로즈)의 경우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투수 윤석민이 훨씬 유명했다. 하지만 투수 윤석민이 미국 진출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인 사이 넥센으로 이적한 타자 윤석민이 급부상하면서 인지도를 많이 따라잡았다. 이 밖에 롯데 자이언츠의 여왕벌 정대현과 kt의 좌완 정대현, 국민 우익수로 불리던 이진영(kt)과 청소년 대표 출신의 유망주 이진영(KIA)도 있다.

지난 2009년 경북고의 유격수 김상수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삼성의 투수였던 김상수와 함께 또 하나의 동명이인 선수가 탄생했다. 하지만 유격수 김상수가 삼성의 주전 유격수로 도약한 데 반해 2009년 말 넥센으로 이적한 투수 김상수는 꽤 오랜 기간 무명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투수 김상수도 2살 어린 삼성 유격수의 동명이인이 아닌 당당한 넥센 불펜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현금 20억과 함께 팔려 갔던 20대 초반의 무명투수

 김상수는 넥센 이적 후 4년 간 4승 밖에 올리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했다.

김상수는 넥센 이적 후 4년 간 4승 밖에 올리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했다. ⓒ 넥센 히어로즈


고교 시절 남윤성(SK와이번스)과 함께 신일고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던 김상수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로 삼성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민병헌, 양의지(두산 베어스), 김문호, 황재균(이상 롯데) 같은 지금의 스타 선수들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을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정현욱(은퇴), 안지만, 권오준, 권혁(한화 이글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막강 투수진에 김상수의 자리는 없었다.

2009년 불펜 투수로 활약한 김상수는 시즌 3승을 올렸지만, 평균자책점이 6.00에 달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좋지 못했다. 결국, 김상수는 2009시즌이 끝나고 좌완 박성훈과 함께 장원삼 트레이드의 반대급부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장원삼을 얻기 위해 김상수와 박성훈에게 현금 20억 원을 더해 넥센으로 보냈다.

김상수는 넥센 이적 후 4년 동안 90경기에 등판해 4승 8패를 기록했다. 반면에 세이브나 홀드는 1개도 없었다. 선발 투수로나 불펜 투수로나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김상수가 성장이 정체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넥센은 선수 팔아 구단 운영하는 가난한 팀에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어느덧 20대 후반을 향해 가던 김상수는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2013시즌이 끝난 후 상무에 입대했다.

넥센 시절 마땅한 보직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과 달리 김상수는 상무에서 선발 투수로 꾸준히 등판해 2014년 10승 3패 4.04로 남부리그 다승왕을 차지했다. 김상수는 2015년에도 상무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9경기 동안 14승 3패 3.02의 성적을 올렸다. 2년 연속 퓨처스리그 다승왕을 비롯해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도 모두 김상수의 몫이었다. 2015년 퓨처스리그의 지배자였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다.

9월 23일 군에서 전역한 김상수는 다음날 SK전에서 곧바로 선발 등판 기회를 얻었다. 당시 넥센은 앤디 밴 헤켄과 라이언 피어밴드의 뒤를 이을 포스트시즌의 3선발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김상수가 호투한다면 포스트시즌 로테이션 합류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일까. 김상수는 이날 3이닝 7실점(5자책)으로 부진했고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끝내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공격적인 투구로 9이닝 당 9.2개의 삼진 잡아내는 파워피처(?)

 손혁 전 투수코치는 경기 중반 승부처에서 언제나 김상수를 호출했다.

손혁 전 투수코치는 경기 중반 승부처에서 언제나 김상수를 호출했다. ⓒ 넥센 히어로즈


아무리 투수가 부족했다곤 하지만 이제 막 군 복무를 마쳤고 입대 전 1군 실적도 부족했던 김상수가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 포함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상무에서 2년 동안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김상수는 2016년 불펜 투수로 변신해 이보근, 마정길, 오주원 등과 함께 넥센 불펜을 촘촘하게 지켰다. 작년까지 넥센 불펜의 원투펀치였던 한현희와 조상우가 수술로 이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상수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김상수는 올 시즌 67경기에 등판해 74이닝을 던지며 6승 5패 21홀드 4.62를 기록했다. 김상수는 넥센의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해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고 팀 내에서 홀드왕 이보근(25개) 다음으로 많은 홀드를 기록했다(전체 3위). 염경엽 전 감독과 손혁 전 투수코치는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판단한 시점에 여지없이 김상수를 찾았고 김상수는 믿음직스러운 투구로 이에 부응했다.

사실 김상수는 세이브왕에 오른 팀의 마무리 김세현처럼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다. 그런데도 김상수는 74이닝 동안 7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이 무려 9.2개에 이른다. 이는 마무리 투수 김세현(7.2개)을 능가하는 수치로 김상수가 마운드에서 언제나 공격적인 투구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다. 실제로 김상수의 시즌 볼넷은 34개로 던진 이닝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1년 동안 마운드에서 열심히 공을 던진 후 얻은 열매는 달았다. 김상수는 지난 25일 구단과 100% 인상된 1억2000만 원에 2017년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2006년 프로 입단 후 11년 만에 억대 연봉 진입의 꿈을 이뤘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히어로즈가 김상수에게 억대 연봉을 보장한 것은 2016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준 것에 대한 보상과 함께 2017년에도 올해처럼 든든하게 히어로즈의 허리를 지켜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전히 야구 팬들은 '김상수'하면 삼성의 유격수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넥센의 우완투수 김상수는 2016시즌의 활약을 통해 야구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7년 전 20억 원과 함께 부자 구단에서 가난한 구단으로 팔려 가던 20대 초반의 무명 투수는 이제 억대 연봉을 받는 넥센 마운드의 핵심 불펜 투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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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넥센 히어로즈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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