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재소환되고 있다.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재소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멀티플렉스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막은 것도 청와대였나.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 사태의 논란이 특검 조사를 통해 일부 풀리는 모양새다.

1월 31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임명 직후인 2013년 8월 21일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장악하고 있고 문화계 장악 의지를 내비쳤다. 김 전 실장은 정권과 뜻이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를 좌파로 규정하고 이들의 제압이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을 반복해서 드러냈다.

특히 9월 9일 회의에서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제작자나 자금 제공자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영화계 인사들은 김기춘 전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이 당시 의문을 일으켰던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의 이유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개봉 이틀 만에 메가박스 돌연 상영 중단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

27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회에서 백승우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 ⓒ 이정민


<천안함 프로젝트>는 천안함 사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로 정지영 감독이 제작하고 백승우 감독의 연출로 만들었다. 2013년 5월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당시 작품에 불만을 품은 해군장교와 천안함 유족 등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개봉 하루 전 이를 기각했다.

2013년 9월 5일 정식 개봉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독립예술영화관들을 중심으로 상영됐으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유일하게 메가박스에서만 25개관에서 상영했다. 개봉 첫날과 이튿날 하루 1천 관객을 넘기며 탄력을 받는 모습이라 흥행 전망이 밝았다.

그런데 메가박스가 개봉 이틀 만에 갑자기 상영 중단을 통보하면서 큰 논란이 됐다. 당시 메가박스는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 간 현장 충돌이 예상되어 일반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며 보수단체의 시위를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압박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의문이 증폭됐다. 보수단체들은 "내부적으로 파악해 본 결과 항의나 시위를 계획한 단체가 없다"면서 메가박스가 보수단체들을 핑계로 끌어들였다고 발끈했다.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은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다"며 "국민을 우습게 알지 않고는 이런 짓을 할 수 없다"면서 외부 압력 의혹을 제기했다. 영화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전무후무한 상영 중단 사태를 규탄하고 상영재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메가박스는 "영화와 관련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의 경고와 협박 전화를 받았고, 상영 도중 퇴장하며 거칠게 항의하는 관객도 접했다. 관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극장으로선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했으나 이 역시도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영화 상영 막은 '표현의 자유 침해'도 특검이 규명해야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뿔난 영화인들 "누가 영화 침몰시켰는지 밝혀라"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과 연출을 맡은 정지영, 백승우 감독과 영화인회의,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들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해 "이번 사건은 영화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중대한 위기로 판단한다"며 "메가박스 측은 압력을 가한 보수단체의 이름을 밝히고 수사당국에 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뿔난 영화인들 "누가 영화 침몰시켰는지 밝혀라"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과 연출을 맡은 정지영, 백승우 감독과 영화인회의,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들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해 "이번 사건은 영화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중대한 위기로 판단한다"며 "메가박스 측은 압력을 가한 보수단체의 이름을 밝히고 수사당국에 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 유성호


개봉 이틀 만에 영화가 내려지는 것은 전무후무한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계는 정부쪽에 의심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영화계는 진상조사 작업을 벌였으나 정치적인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만 있을 뿐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흐지부지 됐다.

이번 특검 조사 과정에서 김기춘 전 실장이 발언 내용이 확인되면서, 당시 갑작스런 상영 중단에 청와대가 관련됐을 개연성이 드러난 셈이다. 김 전 실장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종북세력의 의도로 심하게 비판한 날은 영화단체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던 날이기도 했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는 이후 나쁜 선례가 되면서 정부가 불편해 하는 영화들의 상영을 막는 데 악용됐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은 흥행이 되고 있는 데도 대기업 멀티플렉스 기 아예 상영관을 배정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박근혜 정권 초기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은 중대한 사태라는 점에서 특검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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