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틀빅픽쳐스


<시간위의 집>은 베네수엘라의 영화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스>(정확한 제목은 'The House at the End of Time')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원작은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둘세(루디 로드리게스 분)가 30년을 복역한 후에 사건이 벌어졌던 집으로 돌아오고 그녀는 과거와 변함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남편을 죽이고 아들을 데려갔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다룬다.

원작의 특별한 점은 시간이다. '시간의 끝에 자리한 집'이란 원제 그대로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은 시간을 독특하게 만진다. 특정한 날이 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집 안에서 모두 교차한다는 아이디어 속엔 중남미 환상 문학의 영향이 엿보인다.

갈수록 쌓이는 의문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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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위의 집>은 리메이크한 작품답게 원작에서 이야기 대부분을 가져왔다. 많은 장면의 연출도 원작의 영향을 받았다. 암전 상태에서 청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각본은 <검은 사제들>로 주목받은 장재현 감독이 썼다. 그와 각색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손끝을 거치며 영화엔 설정의 변화와 장치가 추가되었다. 극의 긴장감을 덜기 위해 웃음도 덧붙여졌다.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목이 많다. 둘세의 남편은 무능력한 가장으로 등장하고 오랫동안 버려진 집을 정부에서 좋은 가격에 내놓았기에 덜컥 샀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런 모습엔 베네수엘라가 겪은 경제 위기가 겹쳐진다.

<시간위의 집>은 30년마다 벌어진 실종 사건의 배경에 일제 강점기(1942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1967년),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1992년)을 놓는다. 그런 다음에 식민지 수탈 정책에 앞장선 일본군 장교가 살았던 집이란 사실을 부각하고, 미희(김윤진 분)의 남편인 경찰 철중(조재윤 분)의 행동과 대사로 군부로 대표되는 집권 세력이 가졌던 불편함을 표출한다.

<시간위의 집>은 역사의 어둠과 권력의 기운을 집에 투사하여 집 안에 머무는 과거의 존재들을 부유하는 시대의 망령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의도는 실패했다. 영화는 원작이 건드리지 않았던 과거의 존재들을 소환하나 그저 공포의 장치로 낭비할 따름이다.

게다가 집이 가졌던 시간의 논리를 깬 것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질 않는다. 작은아들에게 추가된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가 추가한 요소들은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작용하여 극의 구멍만 커지고 의문부호만 쌓는다.

기술을 쫓아가지 못하는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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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위의 집>에서 '시간'은 허술하나 '집'은 인상적이다. 원작에서 집이 밋밋한 느낌을 주었던 것과 달리 <시간위의 집>의 집은 또 다른 주인공으로 기능한다. 제작진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적산가옥(적의 재산이란 뜻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본 사람의 집을 가리킴)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집과 딱 어울리는 목조건물을 충청남도 논산에서 찾았다.

원목 가구와 마감재들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분위기, 마치 미로와 같이 구성된 집안 구조가 주는 미스터리함을 지는 목조건물에 백경인 미술감독은 폴란드 화가 벡신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암울한 느낌을 담쟁이 넝쿨, 소품, 벽지, 커튼 등으로 주었다.

1992년 과거 미희의 집과 2017년 현재 미희의 집이 주는 대조적인 색감도 눈길을 끈다. 1992년 미희의 집엔 밝고 채도가 높은 화려한 색감을 주어 행복을 표현한다. 2017년 미희의 집은 적은 색채감과 뚜렷한 명암대비로 황량하고 쓸쓸함이 가득하다.

촬영도 대비의 효과가 강하다. 1992년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어 사건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얻었다. 2017년은 60대가 된 미희를 천천히 따라가는 방식으로 정적인 느낌을 포착한다.

연출을 맡은 임대웅 감독은 <시간위의 집>을 "자식을 지키기 위해 외로움과 공포, 절망감에 맞서 싸우는 한 평범한 어머니의 이야기, 단순한 충격을 넘어선 강한 모성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스릴러의 기본은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시간위의 집>의 모성애는 <세븐 데이즈> <하모니> <심장이 뛴다> <이웃사람> <국제시장>에서 강한 어머니상을 보여준 김윤진의 연기와 만나 어느 정도 따스함을 얻었다. 그에 비해 스릴러로서 매력은 떨어진다. 각본의 허점은 상당하고 전체적으로 헐거움이 크다.

현재 한국 영화의 기술적인 능력은 할리우드엔 버거워도 그 외의 나라에 견주었을 때 부족함이 없다. <시간위의 집>의 미술, 촬영, 세트, 공간을 보아도 역량은 드러난다. 그러나 소재 발굴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질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 호러 영화는 후퇴하는 양상마저 보여주는 실정이다. 이것은 임대웅 감독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전작 <스승의 은혜>가 나왔던 2006년부터 <시간위의 집>이 등장한 2017년까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개성은 퇴색하질 않았나. 이런 퇴보가 한국 호러 영화가 처한 현주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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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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