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 김주혁 발인 엄수 배우 고 김주혁씨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배우 고 김주혁 발인 엄수 배우 고 김주혁씨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권우성


배우 고 김주혁 발인 엄수 배우 고 김주혁씨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배우 고 김주혁 발인 엄수 배우 고 김주혁씨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권우성


많은 사람들이 배우를 기억할 때 흥행작을 떠올린다. 물론 그 중에 배우 역시 인정하고 대표작으로 생각하는 작품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배우 입장에서 흥행은 두 번째 문제다. 배우 김주혁 역시 그랬다.

"주연 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만, 영화의 미덕과 성취도를 흥행이라는 기준으로 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2011년 10월 경 만났던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특유의 담백한 말투였지만, 이 말엔 배우의 능력과 작품의 존재 이유를 흥행으로만 재단하던 일부 언론 매체에 대한 성토이자 호소이기도 했다.

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너무도 이르지만 감히 난 그를 <투혼>과 <커플즈>로 기억한다. 먼발치서 취재로 보던 중 그와 직접 만나 처음으로 인터뷰했던 작품들이기도 했으니 그만큼 강하게 기억된 점도 있다. 

 영화 <커플즈> 속 한 장면.

영화 <커플즈> 속 한 장면. ⓒ (주)바른손


운명과 우연 

그때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영화 리뷰를 쓸 때는 단편적인 재미로 따지지 말고, 그 영화의 미덕을 최대한 찾는 식으로 쓰자고 생각했던 계기가 됐다.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일대일로 대면한 그는 "어유, 반가워요"라는 말로 날 맞았다.

<커플즈>는 과거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코미디의 끝자락에 나온 작품이었다. 자칫 상업적으론 위험한 선택일 수 있었지만 작품을 보자 왜 그가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서적으로 그와 매우 닮아 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종이 한 장 차이인 거예요.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운명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서로가 '우린 운명이었어!' 이럴 수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누가 소개해준 것도 운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든 만날 운명이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어깨를 스치고 툭 지나가는 것만이 운명이 아니라는 거지요. 어떤 작품을 해도 그거 '결국엔 내가 하게 된 거구나!' 생각하다 보면 또 그게 운명인 겁니다." 

 영화<커플즈>에서 유석 역의 배우 김주혁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커플즈> 인터뷰 당시 만났던 김주혁의 모습. ⓒ 이정민


운명을 믿는지. 흔해 빠진 질문이었지만 김주혁은 제법 꽤 긴 시간을 할애해 답했다. 분명 '사랑'은 당시 그에게 중요한 화두로 보였다. <커플즈>에서 그가 맡은 유석은 한 여자에게 모든 걸 바쳤지만 이별하게 되면서 그 상처를 안고 가는 인물. 영화는 사랑에 상처받고, 또 다른 사랑에 설레는 당대 청춘들의 모습을 그렸다. 결말 역시 유석이 새로운 사랑 애연(이윤지)의 번호를 받아내며 기뻐하고, 막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무렵 끝난다. 이런 로코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담백했다.

그 운명을 핑계로 대면서 배우 김주혁의 연락처를 받았다. 사실 기자와 배우의 사적 연락은 예민한 문제다. 기자 입장에선 '불가근불가원'의 관계, 그러니까 취재 대상인 사람과 매우 가깝거나 매우 멀어서도 안 되는 사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배우 입장에서도 자칫 각종 관련 사안에 대해 기자가 직접 접촉할 빌미를 주는 것이기에 꺼려지고 피하는 게 당연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선뜻 그는 "나중에 밥이나 먹자"며 개인 연락처를 알려줬다.

나중에서야 제작 관계자에게 들었지만 애연에게 번호를 받고 그 긴 두 팔을 흔들며 덩실거렸던 모습은 김주혁이라 표현 가능한 연기였다. 과하게 좋아하지도 또 너무 감정을 숨기지도 말라 주문했던 감독의 지시를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던 것. 인물을 자기 것으로 체화시키는 이런 작은 디테일이 바로 그의 장점이자 특기였다.

다시 먼발치에서

그 뒤로 상당 기간 김주혁의 영화를 만날 순 없었다. 다만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근황을 묻곤 했다. 애써 그에게 차기작이나 작품 활동을 묻진 않았다. 호칭 역시 어느새 형과 동생이 돼 있었다. 그때까지도 밥 한 끼 나누진 못했지만 안부를 묻는 내 문자에 그는 진심으로 내 안부를 걱정했고, 재회를 말하곤 했다.

많은 동료 배우들이 그를 좋은 사람,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가 오랜 시간 인연을 맺고 밀도 있게 관계를 다져온 사람들에 비할 바 아니지만 나 역시 그 기억에 아주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드라마 <구암 허준> 속 한 장면.

드라마 <구암 허준> 속 한 장면. ⓒ MBC


영화가 아닌 드라마 <구암 허준>(2013)으로 그가 복귀했을 무렵 경남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행사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면서 기자석 앞에 앉아 있던 내게 굳이 다가와 손을 잡으며 "드라마 행사도 왔어? 반갑네!"라는 말을 건넸던 그다. 이 사극을 찍으며 연신 피곤함을 호소하면서도 그는 늘 사람 좋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20부작의 대장정을 그는 그 어떤 잡음 없이 훌륭하게 마무리 했다. 

이후 예능에 합류한다 했을 때도, 다시 영화에 복귀한 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난 먼 발 치에 있었다. 꽤 인상 깊게 봤던 영화 <비밀은 없다> <당신과 당신 자신의 것> 때 내심 인터뷰를 기대했지만 연이 닿진 않았다. 일부 연예 매체의 낚시성 기사에 부담을 느꼈던 탓도 있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깊고 길게 가지만 배우를 사람이 아닌 취재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식으로 이쪽 분위기가 급변한 탓에 그도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조>(2016)에서야 그를 공식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 1박2일> < SNL코리아 > 등의 예능에서 자신을 던져본 경험 덕인지 한층 여유로워보였다. "정작 예능을 할 땐 여유가 없었는데 이후에 여유가 생겼다"며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자꾸 보게 되니까. 마음에 확신이 든 것 같다"고 변화한 지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우린 밥이든 차든 꼭 하자며 사적 만남의 훗날을 기약했다.

불가근불가원

올해 설 연휴 때 그는 <공조>가 예매율에서 1위가 됐다고 매우 좋아했다. 그게 그와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가 될 줄은 몰랐다. "올해는 다작해야지!" 했던 그의 말대로 <독전> <흥부> <창궐> 등의 출연 소식이 줄줄이 들렸고, 내심 마음 다해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비보를 접했다. 하필 강남의 한 식당에서 밥을 시켜놓던 차에 속보를 접했다. 내가 아는 그 '김주혁'이 아니겠지, 혹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강남경찰서로 당장 가라는 데스크 지시에 밥도 나오기 전 식당을 빠져나갔다. '대체 왜?'라는 질문만 머리에서 맴돌았고, 아직 사망이 아니라는 경찰의 말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오후 8시 30분 경, 경찰서로 들어온 구겨진 그의 차를 보고 나서야 조금은 실감했다. 사고 경위를 여러 매체에서 보도했고, 사망 이유에 대한 기사도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확인된 게 아니었다. 지나가던 경찰을 붙잡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사고의 목격자로 보이는 몇몇 시민들이 조사실을 들락날락 했지만 경찰의 경계로 접촉할 수 없었다. 

"블랙박스가 있다고?" 외치며 조사실을 나오는 한 경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량 쪽으로 급히 걸어가는 그들을 쫓았다. 손전등을 차 안에 비추며 이리저리 살피던 경찰은 내게 "더 조사해야 알겠지만 블랙박스가 파손된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주혁 배우의 빈소에서 나무엑터스 김석준 상무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주혁 배우의 빈소에서 나무엑터스 김석준 상무가 브리핑을 하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아산병원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다.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의 사망 소식을 최대한 담백하게 전하는 것뿐이었다. 여러 기자들이 빈소를 찾아가 어떤 조문객이 왔고, 그의 연인 이유영의 상태가 어떤지를 기사로 쏟아내고 있다. 선정성을 경계하고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취지로 만든 빈소 취재 가이드라인을 깨는 일이다.

촬영을 마친 영화 <흥부>, 그리고 곧 촬영이 끝날 영화 <독전>이 결국 그의 유작이 됐다. 흥부의 조력자 조혁으로, 중국 마약 시장의 거물 하림의 모습으로 수 개 월 뒤 만날 그의 모습이 '배우 김주혁'의 마지막인 셈이다. 작품의 미덕을 찾아 연기했던 그의 필모그래피엔 실패작은 없었다.

2일 오전 11시 그의 발인이 있었다.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가 이별이다. 이성과의 결별이든 친구와의 절교든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상대를 다시 볼 수 있지만 이런 이별은 그 어떤 것도 기약할 수 없기에 남은 자는 슬퍼하고 기릴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주혁 커플즈 투혼 이유영 흥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