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축구협회는 오는 12월 일본에서 펼쳐질 EAFF E-1 챔피언십(명칭 변경 전 동아시안컵, 아래 E-1 챔피언십)의 명단을 발표했다. FIFA 주관의 대회가 아닌 만큼 시즌을 치르고 있는 유럽파와 중동파를 제외한 선수들로 구성된 24명이 소집요청을 받았다.

E-1 챔피언십 우승과 대표팀의 조직력을 다지기 위해 조기소집을 결정한 대표팀은 오는 27일 파주 NFC에 모이게 된다. 그런데 이정협은 27일에 합류하지 못한다. 이정협이 조기소집에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

1년 전에 발표된 E-1 챔피언십... 12월 3일에도 경기 치르는 부산

이정협이 조기소집에 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프로대회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K리거들은 이미 시즌을 마쳤지만 이정협이 속한 부산은 아직 승강 플레이오프와 FA컵 결승을 앞두고 있다. 특히 시즌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 2차전이 12월 3일에 열리게 되어서 이정협은 대회 개막 4일 전에야 합류가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이정협이 이렇게 타이트한 일정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계획적이지 못한 K리그 운영에 있다는 것이다. 이번 E-1컵은 일본에서 개최된다. 2016년 일본 축구협회는 할릴호지치 감독과 E-1 챔피언십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 일본 대표팀의 일정과 J리그 일정을 고려하여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2월 혹은 7월 개최되던 대회를 시즌이 종료된 후인 12월로 미뤘다. 대회에서의 좋은 성적과 원활한 대표팀 소집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일본과 달리 우리 연맹과 협회는 계획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미 1년 전부터 일본 축구협회가 12월 개최를 확정했고, 올해 9월에는 대회의 세부일정을 발표했지만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일정과 FA컵 운영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기존의 방안대로 K리그를 11월 말에 마무리 지었고, FA컵 일정 역시 당겨서 치르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27일 조기소집은 물론이고, E-1 챔피언십의 공식 소집일인 12월 2일에도 이정협은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산의 일정은 12월 3일에야 끝나기 때문이다. 연맹과 협회가 대회의 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내리그와 컵 대회를 진행하면서 1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대회에 대표선수를 제대로 소집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즉흥적인' 결승전은 지난해에도 벌어졌다

아드리아노 시즌 최다골  지난 2016년 12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경기. FC서울 아드리아노(11번)가 동점골을 넣은후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아드리아노는 35호 골로 시즌 최다골을 기록 했다.

▲ 아드리아노 시즌 최다골 지난 2016년 12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경기. FC서울 아드리아노(11번)가 동점골을 넣은후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아드리아노는 35호 골로 시즌 최다골을 기록 했다. ⓒ 연합뉴스


이정협의 늦은 합류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FA컵 결승이다. 1, 2차전으로 나뉘어 치러지는 FA컵 결승전은 부산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치러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최대한 빠른 시즌 마무리를 위해 부산이 상주와 가지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마친 뒤 3일 간격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12월 3일에 치러지는 2차전은 너무 늦은 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FA컵 결승전 일정은 지난 시즌에도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지난 시즌에는 수원과 서울의 맞대결로 FA컵 결승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11월에는 캐나다와의 평가전과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11월 15일 있었던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치러질 것으로 보였던 결승전 1차전은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나고 12일이나 지난 11월 27일에 열렸다.

연맹은 2016년 FA컵 결승전 일정을 발표하면서 시즌이 끝난지 3주나 지나고. 대표팀 경기가 끝나고도 12일이 더 지난 시점에 결승전 1차전을 치르는 이유를 '팬들의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라고 말했다. 대표팀 경기와 전북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가 있기 때문에 FA컵 결승전을 미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유는 정작 팬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표팀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표팀에 차출되었던 곽태휘와 홍철을 고려해 휴식기간이 필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인해 FA컵 결승전을 미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것은 전북이었고, FA컵 결승에는 서울과 수원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유로 경기는 미뤄졌고, 결국 시즌이 끝난 지 3주나 지나서 결승전이 열렸다. 게다가 2차전은 12월 초에 치러지면서 시즌이 끝난 지 1달이나 지나서야 FA컵 결승전은 마무리되었다.

만약 결승전 매치업이 바뀌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번 시즌 역시나 마무리가 늦게 된 것은 물론이고, 국가대표선수가 대표팀 일정에 맞춰서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FA컵 결승에 오른 두 팀 소속으로 대표팀 명단에 오른 것은 이정협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승리의 신이 울산과 부산을 택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25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FA컵 부산아이파크와 수원삼성블루윙즈의 경기 후반 부산 이정협이 동점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FA컵 부산아이파크와 수원삼성블루윙즈의 경기 후반 부산 이정협이 동점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약 FA컵 결승에 울산 대신 전북이 올라갔다면 대표팀은 비상이 걸리게 됐을 것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전북 소속의 선수들이 5명이나 된다. 게다가 이 선수들은 대표팀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선수들이다.

좌우 풀백을 맡고 있는 김진수, 최철순부터 신태용호의 핵심 측면 공격수 이재성과 K리그 최고의 타겟터 김신욱, K리그 신인왕 김민재까지 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거나 대표팀의 전술실험에 필요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전북이 결승에 올라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시즌 일정을 결정할 때는 계획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연맹이 안일하게 만든 일정으로 이정협은 대표팀에 제때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번에는 다행히도 이정협 한 명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결승전 상대가 바뀌었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대회 운영에 신경써야 할 연맹의 책임이다

이정협의 늦은 합류에도 불구하고 이는 큰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 언론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E-1 챔피언십의 공식 소집일보다 늦게 끝나는 FA컵 결승 일정에 대한 의문을 아무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부분들이 연맹이 아무런 변화와 문제의식 없이 매 시즌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낳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맹은 명심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연맹이 시즌 일정을 결정할 때는 리그의 팀들뿐만 아니라 대표팀의 일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이번 시즌에 있었던 이란-우즈베키스탄전처럼 대표팀 성적을 위한 조기소집으로 불가피하게 일정을 변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E-1 챔피언십은 1년 전부터 12월에 열리기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올해 초 시즌 일정을 계획할 때 미리 고려되었어야 하는 사안이다. 부산이 FA컵 결승과 승강 플레이오프에 모두 올라 불가피했다는 변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들마저 일정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고려되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만에 하나'와 같은 상황이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대비하기 위해서 연맹에 경기운영실을 두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이정협 한 명으로 끝이 났지만 더 많은 선수에게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경기를 대회가 끝난 뒤로 미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정을 그대로 진행해 대표팀 일정에 방해를 준다면 더 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기본'이다

연맹이 이런 문제를 만든 원인은 협회의 무관심에도 책임이 있다. 대표선수가 제대로 된 날짜에 소집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협회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경기일정을 미리 조율한다거나 하는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대표팀을 위해 일해야 하는 협회가 이런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정협이 대표팀에 제대로 된 일정에 합류하지 못 하는 상황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연맹도 협회도 이번 일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표선수가 대표팀에 제대로 된 일정에 합류하지 못하는 일을 흔한 일이 아니다. 언론이 조용히 하고 있고, 축구팬들이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안일한 운영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계획없이 일을 하는 회사는 없다. 있더라도 얼마 못 가 망할 것이다. 그만큼 계획은 기본적인 일의 일환이다.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팬들은 믿음을 줄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협회와 연맹은 일정을 계획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길 바란다. 대표팀에 대표선수가 제대로 소집될 수 없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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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잔디에서 관중석까지에도 연재되었습니다.
이정협 신태용호 하나은행 FA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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