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덕후, 허유미씨

허유미씨는 지난 2013년부터 국내 한 스포츠매체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류호진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 팬, 어쩌면 한국인으로서 가장 성공한 축구 팬일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만났다. 조금 흥미로운 점은, 언젠가부터 선수들이 그를 팬이 아닌 '인터뷰어'로 대하게 됐다는 것. 허유미씨는 4년 전부터 국내 한 스포츠매체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아래 EPL)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열정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축구 팬 허유미씨와 11월 12일 서울 왕십리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축구를 좋아하게 됐고 4년 전 우연히 모 스포츠매체의 EPL 런던 통신원으로 일하게 된, 평범한 축구 팬 허유미라고 합니다."

- 통신원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조건이 있나요?
"우선 통신원은 한국에 있는, 해외스포츠 담당 기자분들을 대신해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합니다. 저는 영국 런던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을 위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웃음). EPL 통신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따로 없어요. 아무래도 취재를 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야 하겠죠."

- 통신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축구를 봤어요. 2002년 월드컵부터는 완전히 축구에 빠지게 되었죠.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 영국 한인타운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설기현 선수가 자주 방문하면서 늘 티켓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직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이후로는 축구 기사들을 즐겨봤고 저도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 등을 통해 EPL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약 2년 간 한국에 거주했는데, 그때 국내 스포츠 기자를 대신해 현지 거주자가 취재하는 '통신원'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문의를 넣어봤죠(웃음). 쉽지는 않았는데 몇몇 지인을 통해서 운좋게 일할 수 있었어요."

 퍼거슨 감독을 만난 허유미씨.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감독을 만난 허유미씨의 모습이다. ⓒ 허유미


- 한국 축구와는 다른 영국 축구만의 톡특한 문화가 있을까요?
"제가 한국축구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팬들의 관심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영국에서는 7부리그까지도 가족이 전통적으로 응원을 합니다(웃음). 또한 영국 축구는 각 구단의 '멤버십 카드'를 소지한 팬들에게 경기 관람권을 우선적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이 카드가 없으면 중요한 경기는 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영국은 한국 보 다 TV를 통해 축구 중계 방송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축구 중계를 유료로 봐야 하죠. 아니면 불법으로 중계를 해주는 그런 사이트를 통해서 관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웃음). 그래서인지 현지에서는 1부리그 이하, 즉 2부리그 부터는 2부리그 소속 구단의 팬이 아니라면 챔피언십(2부리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 통신원의 신분으로 처음 인터뷰를 진행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요?
"팬이 아닌 통신원의 입장으로 처음 인터뷰를 진행했던 선수는 이청용 선수였습니다. 너무 떨려서 걱정을 많이했는데 다행히도 이청용 선수가 인터뷰를 정말 잘 이끌어줘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웃음)."

- 수많은 EPL 스타들을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선수는? 
"저는 카를로스 테베스 선수와 자주 보면서 어느덧 얼굴을 알아보는 팬이 되었어요. 당시 테베스 선수에게 여성 팬들은 매우 생소했는데, 그것도 보기 드문 아시아인 팬이 자신을 계속 쫓아 다니니까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테베스 선수 말고도 마이클 오언과 리오 퍼디난드 등 다양한 선수들에게 선물을 줬었는데, 진심으로 고맙다며 SNS에 제 선물을 사진으로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나요?
"(인종차별이) 조금씩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한인타운에 거주해서 그런지 차별을 덜 느꼈던 것 같고 언어 역시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2년 간 한국에서 거주했을 때 적응하기 더 힘들었어요(웃음)."

 호날두와 허유미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허유미씨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허유미씨는 팬으로서 호날두를 만났다. ⓒ 허유미


- 영국 내 여성들의 축구 사랑은 어느 정도인가요? 여자축구에 대한 편견은 없나요?
"여자축구에 대한 편견은 영국에도 아직 있습니다. 영국인이라면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축구를 사랑할 것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영국 역시 다른 나라와 다를 것 없이 남성 축구 팬 비율이 높죠. 현장에서 취재할 때, 스포츠 기자 성비 역시 7대 3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여성이 남성 보다 축구계에서 일하기 쉽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축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영국 사람들도 많습니다."

-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 여러 선수들이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이들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최근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 선수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토트넘에서는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러 미디어나 현지 팬들의 분위기를 통해서 손흥민 선수 역시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스완지시티 AFC의 기성용 선수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팀 내에서도 주요 선수로 인정받고 있죠. 팀의 상황이 워낙에 열악한 시기라 기성용 선수 같은, 경험 많은 선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요. 선덜랜드 AFC로 임대 이적했을 때는 다들 마음이 아프다는 분위기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청용 선수는 그동안 크리스탈 팰리스 FC 내에서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몇 번 출전했을 때도 아쉽게 실수를 범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좋지 못합니다. 하지만 '빨리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팀으로 이적했으면 좋겠다'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팬들도 많습니다."

 허유미씨는 이제 통신원으로서 스타 선수들을 만난다.

허유미씨는 이제 통신원으로서 스타 선수들을 만나고 있다. ⓒ 허유미


- 향후 계획은요?
"저는 구단에서 근무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꼭 빅 클럽이 아니더라도, EPL이 아니더라도 꼭 축구 팀에서 근무를 해보고 싶네요(웃음). 제 꿈을 위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도전할 계획입니다."

- 본인과 같은 꿈을 꾸는 한국인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통신원을 꿈꾼다면 한국의 언론사를 통해 현지 통신원이 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것도 쉽지 않지만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PL은 누군가에겐 절대 진출할 수 없는 큰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축구 팬에서 시작해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한 그에게 EPL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허유미씨에게 EPL은 그가 좋아하는 축구 리그였으며 자신이 활동하길 희망하는 무대였다. 그녀는 EPL에 절대 진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이루게 됐다. 축구가 아닌 일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달려간다면 어떤 꿈이든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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