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화유기>의 포스터.

tvN <화유기>의 포스터. ⓒ tvN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고자, 촬영은 물론 마지막 종합 편집의 디테일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실수를 거울삼아 더 완성도 높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tvN이 방송 사고에 사과문을 내놨다. 위는 tvN이 내놓은 사과문의 일부다. 이 사과문이 세상에 나온 것은 지난 2013년 12월의 일이었다. 당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가 '역대급 대형사고'를 낸 것이다.  

그해 12월 20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는 18회 방송 말미, 중간 광고에 이어 느닷없이 <코미디 빅리그>의 일부 방송 내용과 <로맨스가 필요해3>의 예고편, 방영 중인 <응사> 18회의 예고편을 12분 넘게 무한 반복하는 전례 없는 방송사고를 냈다. 당시에도 '역대급' 방송 사고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7년 12월, tvN은 또 한 번 사과를 해야 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tvN 드라마 <화유기> 2화는 방송 지연에 이은 반복된 광고 방송 송출은 물론 완성되지 않은 컴퓨터그래픽 화면과 스턴트 와이어 줄이 노출된 편집본을 그대로 내보내는 방송 사고를 냈다(관련 기사 : '응답하라 1994'의 방송사고가 안타까운 이유). tvN은 또 사과문을 게재했다. 한데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과문이 참 닮아 있다.

"<화유기> 제작진은 요괴라는 특수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면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고자 촬영은 물론 마지막 편집의 디테일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지만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실수를 거울삼아 더욱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4년 전 tvN은 <응사>의 방송사고의 이유로 "18회의 편집이 지연돼 테이프 입고가 예정된 방송 시간보다 늦어졌다"고 밝혔다. <화유기> 측도 "후반 작업 지연"과 "컴퓨터 그래픽 작업 지연" 등을 거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오늘의 실수를 거울삼는" tvN의 방송사고는 이미 예견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닮아 있는 <응사>와 <서유기>의 방송사고 

 tvN <화유기>의 방송 사고 장면. 와이어가 노출된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tvN <화유기>의 방송 사고 장면. 와이어가 노출된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 tvN


한국형 '생방송 드라마'와 같은 제작 현실을 재론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응사> 때나 지금이나 방송 제작 환경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컴퓨터그래픽이 다수 필요한 소재와 작품을 선택하고 선보인 주체도 방송사와 제작진이지 시청자가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 지연'이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한 형식과 노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라면, <태양의 후예>와 같이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그도 아니면 편성 시점을 늦췄어야 옳다. 단 2회 만에 최악의 방송사고를 낸 전례는 <화유기> 이전엔 없었다.

여타 '생방송 드라마'의 방송 사고들을 나열할 생각은 없다. 콘텐츠 선진국인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의 예처럼, 완전 사전제작이나 반 사전제작 시스템을 강요할 생각도 없다. 다만, '생방송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가 매년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현실에서, <화유기> 방송사고가 발생한 '원인' 어디에 있었느냐는 짚어볼 필요는 있다. 

혹자들은 방송 편성을 방송 행위의 전부라고까지 평가한다. 방송사가 예고하고 약속한 편성은 시청자와의 약속이자 각 방송사의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는 기본적인 울타리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소수자를 배려하는 등 공공성 확보의 기본이자 방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 편성이라 할 수 있다.

케이블인 tvN의 경우, 이 편성을 파괴하고 무시하는데 앞장(?)서 왔다. 비단 재방이나 삼방의 남발과 같은 편성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tvN 드라마의 경우, 들쭉날쭉한 방영시간으로 유명했다. 시즌2 이후 시즌3이 '신드롬'에 가까운 반향을 일으킨 <응답하라 1988>이 대표적이다.

tvN은 인기 드라마의 경우 90분까지 편성을 늘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매회 고정적인 '방영시간'은 종종 무시돼 왔다. 첫 회나 마지막 회의 장시간 특집 편성은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매회 고정적인 방영시간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고무줄 편성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저하시키리라는 관측은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 2회 드라마를 편성하는 한국의 혹독한 현실에서 방영시간을 90분에 가깝게 늘려가는 것은 제작진을 혹사시키는 자학 행위에 가깝다. 그걸 tvN이 방치해왔다.

그 배경을 짐작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중간광고가 허용된 케이블의 경우, 방영시간이 늘어날수록 광고 역시 늘릴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성전략으로 풀이된다. 제작진이 방만한 편집을 자초했다고 해도, 60분, 65분, 70분이란 기존 지상파의 방영시간을 굳이 고수할 필요도 없다.

들쭉날쭉한 편성을 통해 이를 메울 수 있는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가 바로 4년 전 <응사>요, 어제도, 오늘도 "오늘의 실수를 거울 삼"지 못한 작품이 바로 <화유기>인 것이다. 

이번 사고가 더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

아이러니한 점은 <응사> 방송사고 이후 tvN 역시 사전제작이나 반 사전제작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노력해왔단 사실이다. 2017년의 수확이라 불리는 <비밀의 숲>도 그중 하나다. <비밀의 숲>은 일찌감치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사전 제작에 돌입, 생방송에 가까운 현장의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유기>의 이번 사고는 그래서 더 혹독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컴퓨터 그래픽' 운운은 일견 게으른 핑계다. 시청자와의 약속은 물론 대세를 거스르는 제작진과 방송사의 안일한 자세가 불러온 참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유기> 대본은 지난 10월 초 4부까지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제작진이 만든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완성도를 이유로 이번 1회 결방을 예고했다. 현재 "6화까지 촬영됐다"고 알려진 <서유기>는 25일 2화를 재편성한 데 이어 30일 3화를, 오는 1월 6일 4화를 방영한다고 밝혔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더 완성도 높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던 tvN의 '역대급' 방송 사고에 이은 결방은 2017년을 넘어 2018년 편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화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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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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