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유망주 두 선수가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났다. 세계 남자 프로테니스계의 차세대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관심도 높은 대회였다. 정현이 준결승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를 3-2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것이다. 바로 그 메드베데프를 새해 첫 메이저 대회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정현의 성장 속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명승부를 펼친 것이다.

한국 남자테니스의 희망 정현(세계 랭킹 59위)이 우리 시각으로 18일 오후 2시 20분 호주 멜버른 파크 8번 코트에서 벌어진 2018 호주 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 세계 랭킹 65위)와의 2라운드 경기를 1시간 56분만에 3-0(7-6 타이 브레이크 7-4, 6-1, 6-1)으로 완승을 거두고 당당히 3라운드에 올랐다.

21살 동갑내기 만남

정현의 2라운드 상대 다닐 메드베데프는 지난 해부터 메이저 대회에 문을 두드린 새내기다. 윔블던에서 2라운드까지 올라가면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키다리(198cm) 메드베데프는 이 대회 직전에 열린 시드니 인터내셔널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세계 랭킹 차이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두 선수의 대결은 여러가지로 주목을 받을 만했다.

첫 세트 소요 시간이 무려 55분이었다. 그만큼 두 선수의 실력차는 종이 한 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서브 위력은 당연히 다닐 메드베데프가 앞섰고 스트로크 싸움에서는 정현의 자신감이 넘쳤다.

정현에게 찾아온 고비는 첫 번째 세트 열 두 번째 게임이었다. 정현이 서브를 넣은 게임이었지만 오히려 세트 포인트 기회를 메드베데프에 내줄 정도로 흔들렸다. 곡절 끝에 듀스를 만든 뒤에도 정현의 서브 실수가 이어졌다. 누가 봐도 첫 번째 세트의 주인은 메드베데프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따라붙었다. 두 번째 듀스 끝에 정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5-7로 첫 세트를 내줄 위기를 6-6까지 따라잡은 것이다. 이제 동갑내기 라이벌 앞에 타이 브레이크가 놓였다.

메드베데프의 서브로 시작한 타이 브레이크는 두 선수 모두 4-4까지 자기 서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정현의 스트로크에 행운이 따랐다. 메드베데프 서브 이후 정현이 받아 넘긴 공이 네트 상단에 맞고 떨어진 것이다. 5-4에서 서브 두 개의 기회를 잡은 정현은 위력적인 포핸드 역 크로스로 첫 세트를 끝낼 수 있었다.

아찔한 고비를 넘어 타이 브레이크 점수 7-4를 만든 정현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환하게 보이는 듯했다. 지난해 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파이널 준결승 세 번째 세트 타이 브레이크에서 메드베데프에게 밀린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린 셈이다.

알렉산더 즈베레프 만나자

테니스 정현, 메이저 대회 3회전 진출 정현(58위·삼성증권 후원)이 18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회전에서 공을 받아치고 있다.

이날 정현은 상대편 다닐 메드베데프(53위·러시아)를 3대 0으로 물리치고 3회전에 진출했다.

▲ 테니스 정현, 메이저 대회 3회전 진출 정현(58위·삼성증권 후원)이 18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회전에서 공을 받아치고 있다. 이날 정현은 상대편 다닐 메드베데프(53위·러시아)를 3대 0으로 물리치고 3회전에 진출했다. ⓒ 연합뉴스


이어진 두 번째 세트부터는 메드베데프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메드베데프가 서브를 넣은 두 번째 게임에서 정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다운 더 라인이 반짝반짝 빛났다. 먼저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두 번째 듀스를 만들었고 네 번째 듀스 이후 백핸드 다운 더 라인까지 완벽하게 뿌린 것이다. 정현의 이 멋진 샷에 기세가 꺾인 메드베데프의 스트로크는 네트를 넘기지 못했다.

2-0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정현은 점점 더 스트로크의 위력을 자랑했다. 고비 때마다 정현에게 결정구를 얻어맞은 메드베데프는 실수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첫 세트의 긴 싸움이 무색할 정도로 두 번째 세트는 31분 만에 비교적 싱겁게 끝났다. 정현의 두 번째 세트 포인트는 시원한 포핸드 크로스였다.

3라운드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세 번째 세트 세 번째 게임에서 정현에게 찾아왔다. 메드베데프가 자기 서브 게임에서 어이없는 두 개의 포핸드 스트로크 실수를 저질러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은 정현이 더 묵직한 스트로크를 뿌리자 서브 우위를 줄곧 보였던 메드베데프가 더블 폴트를 저질렀다. 흐름이 완전히 정현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조급해진 메드베데프는 네트 앞으로 과감하게 달려들어 큰 키를 이용한 발리 공격 전술을 펼쳤지만 정현이 이 변화를 예상한 것처럼 더 완벽한 패싱 샷 실력을 자랑했다. 이 경기 마지막 게임도 메드베데프의 서브 게임이 되고 말았다.

세 번째 세트 일곱 번째 게임에서 정현은 네트 가까이로 달려와서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방향을 슬쩍 바꾸는 샷으로 네트를 살짝 넘기는 바람에 메드베데프가 역동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영리한 판단으로 15:30을 만든 정현은 결국 두 개의 매치 포인트 기회를 잡았다.

정현의 백핸드 크로스가 네트를 살짝 넘어서 떨어지는 것을 따라온 메드베데프가 그 공을 받아넘기지 못하며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경기가 2시간도 안 걸렸다는 것은 '완승'을 의미한다.

이로써 정현은 지난 해 프랑스 오픈에서 3라운드에 오른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과 똑같은 위치까지 올라섰다. 호주 오픈에서는 처음으로 3라운드(32강)에 오른 것이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새롭기도 하다. 그리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정현의 3라운드 상대는 세계 랭킹 4위에 빛나는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정현이 1라운드에서 기권승을 거둔 미샤 즈베레프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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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정현 호주 오픈 다닐 메드베데프 다운 더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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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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