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에서 박정복·김주헌 배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에서 박정복·김주헌 배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채효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가 2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2관에서 열렸다. 연일 호평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자신이 여자라 믿는 '몰리나'와 반정부주의자 '발렌틴'이 한 감옥에 갇히면서 상반된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날 관객과의 대화 주인공은 몰리나 역의 김주헌 배우와 발렌틴 역의 박정복 배우였다. 질의응답은 관객들이 사전에 보낸 질문과 현장 질문으로 진행됐다.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다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질문 하나하나에 진중하게 답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음은 관객과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극 중 몰리나가 스카프 활용을 많이 하던데 그 의미는?
김주헌 : "몰리나는 영화 이야기를 할 때나 행동을 취할 때 스카프를 사용한다. 스카프를 처음 받았을 때 활용도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카프가 상징적인 오브제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에는 이 스카프를 어머니가 준 게 아닐까싶다. 그래서 몸에 항상 지니는 거라고. 또한 스카프는 몰리나의 심리를 잘 표현한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청사진처럼 그려내듯이 표현하고 싶어 스카프를 이용한 몸짓을 자주 사용한다.

소장을 만나러 갔다 방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스카프가 목에 메어져 있는데, 그것 역시 몰리나가 소장을 만나러 갈 때 하는 행동이라 여긴다. 발렌틴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에는 스카프를 스커트로 만들어 두른다. 이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다. 발렌틴을 좋아하기 전과 후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목에 맸던 스카프를 허리에 매면서부터 발렌틴에게 빠져버린 몰리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디테일을 계속 생각해 볼 것이다."

- 발렌틴에게 몰리나는?
박정복 : "그 순간만큼은 존재의 전부. 사랑."

-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상대방의 대사나 장면은?
김주헌 : "감옥을 나서는 몰리나에게 발렌틴이 "사람들이 널 존중하게 하겠다고 그 누구도 널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해. 네 자신을 절대로 폄하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대사가 몰리나를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준다. 거미여인의 키스를 비극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본다. 이 대사로 인해 몰리나는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할지 결심하게 되며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준다. 또한 몰리나는 이때 어른이 된다. 상처받은 영혼과 딱딱하게 굳어있던 몰리나의 마음이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게 가능해진 것이다. 이 대사가 우리 연극에서 가장 좋은 대사다.

박정복 : "요즘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몰리나의 대사는, 발렌틴이 '동성애자는 다 그래?'라고 물었을 때 '아니. 서로 사랑에 빠지는 친구들도 있어. 하지만 나는 여자야. 백퍼센트 여자. 난 남자랑 어설픈 불장난 따위는 하지 않아. 난 그냥 남자랑만 자는 평범한 여자니까'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지난 공연 때 이 대사를 듣는데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아 저 사람 여자지'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감정을 연습실에서도 느낀 적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 울컥해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 공연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초반과 지금 달라진 점은?
박정복 : "가슴을 후벼 파는 대사들이 달라지고 있다. 그 날 그 날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대사들이 있다. 그런 점들이 바뀌는 게 초반과 다르다."

김주헌 : "초반 2주 정도는 긴장을 많이 했다. 대사의 감동을 받는 포인트들도 매일 다르다. 매 공연 시작 전에 박정복 배우랑 오늘 공연은 어떻게 할 지 이야기 하는데 이 점이 좋다. 중반쯤 왔을 때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장기 공연을 할 때 가장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달라진 건 더 좋아진 게 달라진 점이다."

"사랑이었구나, 내 생각보다 더 아픈 사랑이었구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한 장면. 발렌틴 역의 박정복 배우와 몰리나 역의 김주헌 배우가 열연 중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중 한 장면. 발렌틴 역의 박정복 배우와 몰리나 역의 김주헌 배우가 열연 중이다. ⓒ 악어컴퍼니


- 몰리나가 출소하면서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후 환히 웃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때 몰리나의 생각과 느낌은?
김주헌 : "몰리나는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 줄 결심을 이미 하고 있었다. 결심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갈등을 하는 게 맞지만 이 부분을 밝게 가져가고 싶었다. 극의 초반부 발렌틴의 기분을 알려고 떠보는 몰리나처럼 말이다. 나갈 짐을 꾸리다 마침내 발렌틴에게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을 입 밖에 냈을 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감옥을 나가는 것도 행복하지만 발렌틴에게 가장 큰 마지막 선물을 줄 수 있어서다. 슬픈 감정보다는 정말 기쁘다."

- 몰리나가 "나 너 만지고 싶어. 만져도 돼?" 라고 물으면 발렌틴이 화들짝 놀라던데 어떤 감정인가?
박정복 : "갑자기 몰리나가 확 들어와서 놀라는 것보다 예상치 못한 순간적인 말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놀랐다가 몰리나가 "네 눈썹 옆에 있는 점을 만지고 싶다"고 했을 때 몰리나가 여자라는 걸 느껴오면서 쌓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그 날 밤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누군가가 "만져도 돼?"라고 물어보면 누구나 놀라지 않나. 단순하다."

- 발렌틴이 몰리나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인가? 발렌틴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박정복 : "사랑인 것 같다. 사랑이라는 걸 연습 거의 막바지쯤 느꼈다. 연습실에서 둘이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 사랑이었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아픈 사랑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와 더불어 마음이 아프다는 대사들은 감정과 이성이 싸우는 그 순간 생기는 부분들로 풀어가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배우를 시작했을 때부터 울음이 나면 그 모습을 보고자 거울로 달려가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은 운전하면서 어머니랑 싸웠는데 너무 죄송해서 울음이 났다. 순간 거울에 얼굴이 비쳤는데 시작된 감정에 이성이 들어오니까 가슴이 정말 미어지게 아팠다. 이때의 비슷한 감정을 극에서 찾은 것 같다."

- 극 중 발렌틴이 가장 얄밉게 느껴지는 순간은?
김주헌 : "초반에 발렌틴을 죽여 버리고 싶다. 정말 '내가 참자' 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모든 공연의 밸런스가 중요하지만 특히 2인극의 밸런스는 정말 중요하다. 의도적으로 발렌틴을 더 잘 보이게 하거나 도와주기 위해서 몰리나가 하는 역할들이 있다. 이는 극 중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성격이다. 예를 들면 극에서는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발렌틴을 사랑해버리면 안 된다. 초반에는 발렌틴을 얄밉게 생각하거나 '얘는 뭐지?', '혁명한다고 잡혀왔는데 뭐하는 애지?', '네가 세상을 바꾼다고? 네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해?'라고 여겼는데 발렌틴을 좋아한 후로는 더 참을 수 있게 됐다. 그게 사랑이 아닐까."

몰리나, 굳이 여성의 목소리를 꾸미지 않는 이유는

 24일 열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주헌·박정복 배우가 퇴장하기 전 인사하는 모습이다. 감옥 문 뒤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24일 열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주헌·박정복 배우가 퇴장하기 전 인사하는 모습이다. 감옥 문 뒤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채효원


- 몰리나의 출소 소식을 들은 발렌틴은 이용하려는 속셈보다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부탁하면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엿보이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나?
박정복:  "처음 연습 했을 때 발렌틴은 몰리나를 이용하는 거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런데 하다보면서 점점 이용하려는 속셈도 조금은 존재하겠지만 몰리나가 밖으로 나갔을 때 진심으로 혼자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정치 조직에 가입해서 누군가의 친구가 됐으면 좋겠고,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점점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 몰리나 역을 하면서 여성스러운 목소리나 행동으로 꾸미지 않는 이유는?
김주헌 : "몰리나 같은 역할들이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게 여성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을 1차적으로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를 캐스팅한 이유는 나의 얼굴, 목소리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몰리나 자체가 본인을 여성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여자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없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연기를 하면서 보여지는 모습보다 드라마나 감정에 치중할 수 있는 점도 좋다. 이 연극은 몰리나가 여자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를 뽐내는 극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 볼레로 나의 편지란 어떤 의미?
김주헌 : "의연 중에 표현하는 몰리나의 마음일 수도 있고 발렌틴의 기운을 차리게 해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를 부름으로서 발렌틴의 이야기를 이끈다. 또한 마음 그 자체다. 영화 이야기로 마음을 포현하듯이."

- 극 중에 나오는 땅콩버터를 몰리나와 발렌틴은 먹었을까?
김주헌, 박정복 :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을 것 같다. 땅콩버터하면 공연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극 중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눈을 감게 하고 땅콩버터를 손에 쥐어 준 뒤 맞춰보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전 공연에서 몰리나가 땅콩버터를 건네주다 놓쳐 버렸는데 발렌틴이 눈을 뜨고 손으로 잡아버렸다. 그래서 원래 있던 대사들이 날아가고 "땅콩버터네?"로 대체됐다."

- 몰리나가 떠나고 우는 발렌틴의 감정은 무엇인가?
박정복 : "이성과 감정의 복합적 생각이다. 공허함, 허함, 없어진 몰리나에 대한 생각. 친구에 대한 걱정, 여러 가지 생각들. 그 날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 극 중 소품인 발렌틴과 어머니의 그림이 비꼈던데 직접 그린 것인가?
김주헌: "그렇다. 연습 시작 전부터 시간이 된다면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며칠 쉬는 시간에 그렸다. 이 중 신기한 건 어머니 그림의 모델이 원작 거미여인의 키스 소설을 쓴 작가 마누엘 푸익이다. 작가 이미지를 찾아 여성화해 그려봤다."

- 극 중 캐릭터와 비슷한 점과 준비하면서 신경 쓴 부분은?
박정복 : "맞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걸 밀어붙이는 성격이 좀 비슷하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혁명가가 됐을까 생각 해봤는데 겁이 많아서 그 점까지는 모르겠다. 옳다고 생각하는 건 끝까지 굴하지 않는 편이다."

김주헌 : "발렌틴에게 리액션하는 몰리나의 모습에 본래 성격이 담겨있는 듯하다. 웬만하면 트러블 만드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게 좋지 않나. 그런 부분을 고려하다 보니까 몰리나의 성격이 만들어진 듯하다."

관객들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 배우들

이날 김주헌·박정복 배우는, 23일 이이림·문태유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의 편지 볼레로' 노래 부른 것을 언급하며 연신 "노래를 못해서 준비 못해 죄송하다"며 "대신 현장 질문에 모두 답하겠다"는 열정을 보였다.

후반부에는 주최 측에서 추첨을 통해 관객 2명에게 상품을 주자 강제로 1명을 더 추첨해 상품을 전했다. 퇴장 때까지 관객을 신경 쓰는 두 배우의 마음이 추운 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녹였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2월 2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볼 수 있다. 오는 30일에는 몰리나 역의 이명행 배우와 발렌틴 역의 송용진 배우의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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