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기밀

1급 기밀 ⓒ 리틀빅픽쳐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 고(故) 홍기선 감독의 유작 <1급기밀>이 24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박대익 중령(김상경)이 차세대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 한미 양국 국방부 사이에 맺어진 모종의 계약을 추적·고발하는 이야기다.

고 장자연 배우 자살 사건을 그린 2012년 영화 <노리개>, 각각 원전 사고와 터널붕괴사고를 통해 정부의 무능을 간접 고발한 2016년 영화 <판도라> <터널>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는 이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1급기밀> 역시 이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런데 영화 <1급기밀>은 '군'이라는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자행되는 비리를 그렸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적지 않다.

이 영화는 1998년 국방부 조달본부 비리, 2002년 차세대 전투기 사업 비리, 2009년 해군 납품 비리 사건 등을 모티브로 했다. 특히 2009년 당시 해군 현역 장교 신분으로 해군 납품 비리를 고발했던 김영수 현 국방권익연구소 소장은 고 홍 감독과 빈번하게 교감하며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더해줬다. <1급기밀> 개봉일이었던 24일 서울 용산의 한 상영관에서 김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김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방산비리를 고발한 영화 <1급기밀>의 실제 주인공인 김영수 현 국방권익연구소 소장. 김 소장은 현역 해군 소령이던 2009년 < PD수첩>에 출연해 해군 납품 비리를 고발한 바 있다.

방산비리를 고발한 영화 <1급기밀>의 실제 주인공인 김영수 현 국방권익연구소 소장. 김 소장은 현역 해군 소령이던 2009년 < PD수첩>에 출연해 해군 납품 비리를 고발한 바 있다. ⓒ 지유석


- 먼저 영화를 본 소감부터 묻고 싶다.
"고 홍 감독께서 영화를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 1월부터 감독께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감독께서는 작품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주셨다. 정말 고맙다. 비리 폭로 후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 김 소장님은 해군 소령 출신인데, 영화 속 주인공은 육군 중령으로 나온다. 이 같은 설정 변경이 있음에도 사실에 부합하게 구성됐다고 보는가?
"주인공을 해군 소령으로 하면 영화가 자칫 다큐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육군 중령으로 주인공을 바꿨다. 또 실제 극중 배우 김상경씨가 연기한 항공부품과장의 계급은 중령이나 대령이고, 해군은 이 직책을 맡지 않는다. 영화 속 등장 인물이나 사건들 역시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 혹시 미진하게 다룬 점은 없나?
"미진한 점은 거의 없었다. 다만 몇몇 장면, 이를테면 뱀술을 담아 상납하는 장면이나, 노래방에서 충성의 뜻으로 탬버린을 치는 장면 등은 편집과정에서 삭제됐다."

- 과거 사회고발성 영화는 상영중단 압력이나 별점테러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 영화는 군의 치부를 건드리고 있는데, 혹시 국방부 등의 외압은 없는가?
"국방부의 외압은 없었다. 촬영과정에서 아예 국방부의 협조를 기대하지 않았다. 단, 이 영화가 이명박 전 정부 당시 기획됐는데 투자자나 출연을 고민했던 배우들이 자기검열을 한 점이 아쉬웠다. 이로 인해 감독이 많이 힘들어했다."

이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투자사가 바뀌었고, 상업영화 대부분에 지원을 제공했던 모태펀드가 투자를 거부하기도 했다.

 <1급기밀> 주인공 박대익 중령은 군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겪는다.

<1급기밀> 주인공 박대익 중령은 군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겪는다. ⓒ 리틀빅픽쳐스


- 방산비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영화가 방산비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부고발자로서 군비리 척결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무엇보다 당당하게 내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부고발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이 같은 신뢰가 없다는 점이 무척 안타깝다. 또 정부나 수사기관이 방산비리의 본질에 대한 전문성과 끈기를 갖고 제대로 된 예방조치 및 수사를 해나가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군이 청렴한 군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1급기밀>은 현재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제작사 측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일반적인 영화가 개봉 5일에서 1주일 전 사전 예매가 시작되는 것에 반해 <1급기밀>은 개봉 하루 전에야 대부분의 극장 예매가 오픈됐다. 일부 극장에서는 교차상영 등이라는 공정한 조건 하에서의 경쟁이 아닌 시간표를 편성받았다"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 소장 역시 이 같은 사태에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김 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개봉일인데 상영관에 배너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1급기밀> 같이 사회적 관심이 높은 주제를 다룬 영화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데, 더 심한 설움을 당한 영화들이 얼마나 많겠냐"며 "이런 암초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1급기밀 김영수 소령 홍기선 감독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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