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수영의 상징은 단연 '아시아의 물개' 고 조오련이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400m와 1500m 2연속 2관왕을 달성한 조오련은 은퇴 후에도 대한해협을 두 번이나 횡단(1980,2002년)하는 등 한국 수영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지난 2001년에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는 "바다거북이하고 조오련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나?"라는 대사가 있었을 정도.

하지만 오늘날 한국 수영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조오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아시아인 최초로 올림픽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연속 3관왕을 차지한 박태환은 올림픽보다 경쟁이 더 심하다는 세계 수영선수권대회에서도 두 번(2007,2011년)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선배 조오련의 아성을 뛰어 넘었다.

이렇듯 스포츠에서는 한 종목에서 최고로 인정받던 선수도 더 나은 후배가 나타나면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물론 대부분의 선배들은 자신을 뛰어넘는 후배의 등장을 매우 뿌듯해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테니스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던 이형택 테니스아카데미 원장도 다른 종목의 전설들처럼 요즘 매우 뿌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자신을 뛰어넘은 정현이라는 기특한 후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현의 위대한 도전은 비록 4강에서 멈췄지만 정현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정현의 위대한 도전은 비록 4강에서 멈췄지만 정현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 호주오픈 홈페이지 화면캡처


피지컬과 기량, 멘탈까지 두루 갖춘 한국 테니스의 희망

한국 최초의 프로 테니스 선수 이덕희가 1981년 U.S 오픈에서 16강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한국 테니스는 세계 무대에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금은 가수 윤종신의 아내로 더 유명한 전미라가 1994년 윔블던 주니어 단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안타깝게도 시니어 무대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윔블던 주니어 단식 결승에서 전미라의 상대는 전 세계랭킹 1위 '알프스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남자 테니스의 경우 상황이 더욱 암울했다. 한국 테니스는 80년대부터 김봉수와 유진선, 윤용일로 이어지는 간판의 계보가 있었지만 김봉수가 1988년 호주오픈, 윤용일이 1998년 U.S 오픈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한 것이 한국 남자 테니스의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이형택이 U.S 오픈에서 16강에 진출했을 때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이유다.

하지만 남자테니스는 이형택 이후 에이스 계보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형택의 후계자로 평가 받았던 임규태가 세계랭킹 150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그랜드슬램은 고사하고 ATP투어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 테니스는 꽤 오랜 침체기에 빠졌고 2009년에 은퇴했던 이형택이 4년 후 현역 복귀를 결심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렇게 '보는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어진 채 '생활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던 테니스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 정현, 이덕희, 권순우 같은 선수들이 주니어 무대에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중 맏형(1996년생)인 정현은 서양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월한 신체조건(188cm)과 탄탄한 기량 수비력, 그리고 위기에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무서운 속도로 세계랭킹을 끌어 올리기 시작한 정현은 만18세의 나이에 세계랭킹 300위 안에 진입하며 국내 1인자로 등극했다. 임용규와 짝을 이뤄 출전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남자 선수들의 가장 큰 부담인 병역문제도 일찌감치 해결했다. 정현은 2015년이 끝날 무렵 세계랭킹을 51위까지 끌어 올리며 이형택의 뒤를 잇는 한국 남자테니스의 간판 선수임을 재확인했다.

랭킹 포인트 720점 획득, 한국 테니스 역대 최고 순위 예약

한마음으로 응원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정현과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의 호주오픈 준결승 경기가 열린 26일 오후 정현의 모교인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테니스 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 한마음으로 응원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정현과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의 호주오픈 준결승 경기가 열린 26일 오후 정현의 모교인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테니스 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6년 무릎 부상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두 번의 챌린저 대회(ATP투어보다 등급이 낮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정현은 2017년 프랑스오픈 3회전에 진출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2017년 11월 1996년생 이후 출생자들 중 그 해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만 출전하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최초, 한국 선수로는 이형택(2003년 ATP투어 아디다스컵 인터내셔널)에 이어 두 번째로 ATP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정현은 12월 태국 동계 훈련에서 네빌 고드윈 코치를 영입했다. 그리고 정현은 자신의 통산 8번째 그랜드슬램 대회였던 2018 호주오픈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대형사고를 쳤다. 1회전에서 미샤 즈베레프(34위, 독일), 2회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53위,러시아)를 차례로 꺾은 정현은 3회전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를 세트스코어 3-2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현지에서는 물론 한국팬들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대이변이었다.

정현의 돌풍은 16강에서 '무결점 테크니션' 조박 노코비치(세르비아)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면서 태풍으로 변했다. 비록 조코비치가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조코비치에게 통산 세 번째 호주오픈 0-3 패배를 안긴 정현의 기량은 현지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상승세를 탄 정현은 8강에서도 테니스 샌드그렌(미국)을 3-0으로 제압하며 1932년의 사토 지로(일본) 이후 86년 만에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가 됐다.

그랜드슬램 4강이라는 성적을 통해 8억4000만원의 상금을 확보한 정현은 26일 열린 4강전에서 '황제' 로저 페더러를 맞아 발바닥 부상 때문에 2세트 2-5로 뒤진 상황에서 기권을 선언했다. 8강까지 타이브레이크 세트(6-6에서 7포인트를 먼저 획득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만 5번을 치렀던 정현의 근성과 체력이 황제를 만나 한계에 다다른 셈이다.

비록 결승 진출은 좌절됐지만 정현은 호주오픈4강을 통해 랭킹 포인트 720점을 확보했다. 대회가 끝난 후 공식발표가 나와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세계 30위권 진입이 유력하다. 이형택이 기록했던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순위 기록(36위)을 경신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더욱 즐거운 사실은 호주오픈을 통해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정현이 아직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만 21세8개월의 젊은 청년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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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2018 호주오픈 정현 로저 페더러 이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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