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연관현악단과 서현 공연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삼지연관현악단과 서현 공연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대박'이라는 표현 밖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 건 지난 6일이었다. 별로 재수 좋은 인생은 아니었기에 큰 기대하지 않고 삼지연관현악단 서울공연 응모를 하고 잊고 있었는데, 떡 하니 '당첨' 문자가 온 것이다.

로또가 당첨되면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변'은 널리 알림이 마땅한지라 페이스북에 올렸다. 수많은 축하 댓글이 쏟아졌고, 내 페북 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11일 아내와 함께 서울 국립극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택시를 타고 장충체육관 앞을 지나는 길에는 태극기 시위가 열리고 있었고 교통 정체도 상당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위대를 선동하는 이는 "총을 들고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외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과연 저들이 우리 민족에게 전쟁이 어떤 참상을 가져올지 가늠이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밟고 1인 시위하는 청년의 모습은 극우보수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났다.

오후에 속보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특사가 관람키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유난히 많이 배치된 경찰 병력은 엄중한 시국과 관심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비표를 받고 국립극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가 조금 못되었음에도 5~6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공연 시작 전 사람으로 가득찬 국립극장 내부.

공연 시작 전 사람으로 가득찬 국립극장 내부. ⓒ 오광영


간간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보였는데 공연에 초청된 이산가족인 듯싶었다. 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도종환 장관과 같은 정부인사, 노회찬 의원, 손학규 전 의원 같은 정치인들도 많이 보였다. 내 뒤에 계시던 경기도 안산에서 오셨다는 70대 부부는 아들과 딸들 온 가족이 응모를 했는데, 1인(2표)이 당첨돼 노부부가 대표로 오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그렇게 운 좋게 뽑힌 일반 관객 1천여 명과 초청된 5백여 명의 관객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특사의 입장에 환호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이미 강릉에서 공연을 했고 유튜브를 통해서 대충 영상을 본 바 있지만, 현장에서의 긴강과 기대는 또 달랐다. 

쏟아지는 기립 박수

 지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모습.

지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모습. ⓒ 오광영


140명의 삼지연관현악단은 2009년 창단된 삼지연악단을 중심으로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조선국립교향악단, 국가공훈합창단 등의 북한 예술단에서 선발된 연주자와 가수, 무용수가 추가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현악단을 자주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규모와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공연 내내 실감했다.

우리가 남쪽에서 흔히 보던 현란한 무대예술이나 퍼포먼스는 없었지만 그들만의 색깔은 또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특히 외래어를 극도로 자제하는 자주적인 국가 분위기 때문인지, '오페라의 유령'을 '가극극장의 유령'으로 표현한 노래 제목과 약간의 촌스러운 영상은 오히려 정겨웠다. 

J에게, 사랑의 미로, 최진사댁 셋째딸 등 남한의 가요를 그들 식대로 해석한 노래는 색다른 감동이었다. 특히 통일에 대한 애끓는 노래는 통일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느끼게 했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들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익숙한 노래인 '홀로아리랑'을 부를 때는 외세에 의해 좌우되는 한반도의 운명이 생각나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이라이트, 현송월과 서현

 지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모습.

지난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모습. ⓒ 오광영


막바지에 깜짝 등장한 현송월 단장과 소녀시대 멤버 서현의 공연은 그야말로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현송월 단장은 대통령과 특사가 관람하는 것에 대한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 이번 방남에서 받은 환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직접 노래를 불렀으리라.

▲ 남녘에서 울린 현송월의 노래, 김영남을 울리다 ⓒ 정현덕


"화해와 단합의 합창 소리에 저의 작은 목소리를 합치고 싶어서 노래 한 곡 부르려고 한다"며 부른 '백두에서 한나는 내조국'은 조국통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녹아 있어 숙연케 했다.

▲ 삼지연과 서연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정현덕


이어 소녀시대 서현이 악단 가수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자 결국 관객들도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1시간 40분이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또 언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을지 몰라 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북의 신년사와 한미군사훈련 연기를 계기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평창올림픽이 평화를 가져오는 모멘텀이 되어 이러한 공연도 성사되었기에 또 다른 희망을 갖고 공연장을 나올 수 있었다.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는 여전히 태극기를 든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공연을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배알도 없다"느니 "빨갱이"라느니 하며 삿대질을 했다. 그래, 나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로 가는 길이라면 '배알도 없는 빨갱이'로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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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쓰신 오광영님은 대전 유성에 거주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삼지연관현악단 평창올림픽 현송월 서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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