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이 기사에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Shape of water). 즉 물의 모양. 물은 모양이 없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모양이 없는 물의 모양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전작 <헬보이>(2004), <판의 미로>(2006) 등에서 상상 속의 몬스터, 존재하지 않는 것의 '모양'을 창조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번엔 반대로 분명 존재는 하지만, 모양은 없는 것을 그리는 것에 도전했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물이 가득 차 있는 집안, 혹은 물에 빠져 있는 집안을 이리저리 비춘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과 엘라이자(샐리 호킨스)가 둥둥 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물건과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가 떠 있기 때문에 그곳에 물이 존재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대상이 물에 빠져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모양. 그것이 감독이 생각하는 물의 모양인 것이다.

어느덧 물이 빠지고, 엘라이자는 잠에서 깨어나 일상을 시작한다. 엘라이자는 항공우주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 특별한 생물이 실험을 목적으로 반입되고, 우연히 그것과 마주하게 된 엘라이자의 일상엔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의 과정은 다른 로맨스 영화와 비슷한 패턴이다.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나열되고, 사랑이 꽃을 피우려 할 때 악당이 나타나 둘의 사랑을 방해한다. 악당은 극악무도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렇게 어찌 보면 뻔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영화지만, 영화 속 몇 가지 요소들이 영화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 뻔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내밀고 있는 메시지는 '사람을 편견 없이 보자'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해양생물만이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를 편견 없이 사람 그 자체로 봐주었고, 그것이 엘라이자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이는 엘라이자 곁에 있는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소수자인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그리고 흑인 여성인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가 엘라이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것 역시 그들이 소수자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 영화는 이렇게도 볼 수 있다. 가장 순수한 사랑, 편견 없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다른 어떤 세계에서는 '신'이라고 불렸던 이 존재를, 소수자들이 힘을 합쳐 지켜내는 영화. 그렇게 생각하면 등장인물 중 하나가 영화가 끝날 무렵 내뱉은 대사 "You are a GOD"이 그저 하나의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감독이 예수를 염두에 두었다고 보면 과장일까. 이 해양생물은 병든 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자신의 성공작과 너무나도 닮은 영화

 순서대로 <셰이프 오브 워터>, <판의 미로>

순서대로 <셰이프 오브 워터>, <판의 미로>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유레카픽쳐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이 메시지는 지금도 시의적절하고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나 새로운 무언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대신 영화에서 가장 새롭고 기발하다고 느꼈던 것은 영화의 끝 장면, 해양생물이 마지막 기적을 행하여 엘라이자 목에 있는 상처를 아가미로 바꾸는 장면이었다. 엘라이자가 말을 하지 못하는 원인, 비극의 주 원인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던 장치가 이야기의 해피엔딩에 일조하는 장치로 탈바꿈된 것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준비한 나름의 반전 장치이다.

'이 아이디어가 시작부터 준비된 것이었을까, 혹은 마지막에 절묘하게 맞춰진 퍼즐의 한 조각인가'. 영화에서 기가 막힌 반전을 만났을 때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경우,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상처가 아가미로 변한 것이 아니라, 과거 아가미는 원래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을 겪어 아가미가 상처로 변해있던 것이라는 생각.

감독의 전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떠올랐다. <판의 미로> 역시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인간들이 모르던 지하왕국의 공주가 인간 세계를 동경하여 그 세계에 갔다가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공주는 사랑, 희생을 깨닫는 소정의 미션 과정을 거쳐 다시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간다.

다시 <셰이프 오브 워터>로 돌아온다. <판의 미로>처럼 엘라이자는 과거 신(해양 동물)의 아내, 혹은 여신이었고, 인간 세계를 궁금해했던 엘라이자는 인간 세계에 떨어진 후 기억과 목소리를 잃는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과정을 통해 아가미를 회복하고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이렇게 가정해 본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놀라울 정도로 <판의 미로>와 판박이인 영화로 느껴지게 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성공은 실력인가, 요행인가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제 다시 오프닝을 되새겨 본다. '물건이 떠 있으므로 물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오프닝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 오프닝 씬은 단지 영화적 표현이 아니라 엘라이자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엘라이자에게 깨달음을 전해주기 위해 마련한 그 세계의 시작을, 엘라이자 몰래 지켜봤던 것이다.

이 모든 가설이 맞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의 미로>에서 캐릭터만 바꾼 아류작에 불과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본인의 최고 성공작 너무나도 닮은 이 신작으로 골든 글로브 감독상을 비롯한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곧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엔 영화가 무려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이를 실력으로 봐야 할까 요행으로 봐야 할까. 다음 작품에서 그의 대답을 기다려 본다.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철홍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anwu.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셰이프오브워터 기예르모델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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