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7월, <비밀의 숲> 종영 인터뷰였다. <학교 2013>으로 데뷔해 <오 나의 귀신님> <아이가 다섯> <푸른 바다의 전설> 등 출연 작품마다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선보였고, 이미 <비밀의 숲> 영은수 역으로 한껏 주목받던 상태. 하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불안함을 털어놨다. 당시 <황금빛 내 인생> 출연을 확정 지은 상태였지만, 작품이 끝날 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렸던 터라 첫 주연의 설렘보다 '이번엔 기다림이 짧아 다행이다', '긴 드라마라 좋다' 하는 안도와 행복이 더 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황금빛 내 인생>은 최고 시청률 47.5%(TNms, 전국 기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배우 신혜선의 배우 인생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고정 시청층이 탄탄한 KBS 2TV 주말 시간대에, <찬란한 유산> <내 딸 서영이> 등을 집필한 소현경 작품. 잘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 될 줄 그 누가 예상했을까. 신혜선도 마찬가지였다.

"소현경 작가님의 팬이에요. 재밌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시청률이 잘 나올 줄은 몰랐죠. 첫 회부터 시청률이 쭉쭉 올라가는데, 35% 넘었을 때 정말 너무 놀랐어요. 와 이렇게 올라갈 수도 있구나 싶고... 더 신 나서 (시청률) 찾아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복잡한 서지안의 감정...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배우 신혜선,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황금빛 내 인생>은 최고 시청률 47.5%(TNms, 전국 기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배우 신혜선의 배우 인생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 YNK 엔터테인먼트


신혜선은 "소현경 작가 작품에 출연하면서 더 팬이 됐다"고 했다.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 캔디 스토리 등 기존 드라마의 클리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트는 소현경 작가식 스토리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재밌고 흥미로웠다"고 했다.

"작가님 대본의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의 심리와 감정이 섬세하다는 거예요. 어떤 인물의 감정을 겉핥기식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내면까지 묘사해주시는 느낌이랄까? 그저 내가 친딸이 아니네, 슬프다, 가 아니라 모든 관계와 상황 속에서 이런 상황이 실재한다면 정말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도록이요. 비중이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인물들이 단순하지 않은 것도 너무 좋았어요. 보는 관점에 따라 모든 캐릭터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도요."

주인공 서지안의 서사와 감정라인은 복잡했다. 배우 입장에선 재밌기도 했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했다. 작가가 준 서지안의 감정선 중 1/3만 표현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만큼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품과 캐릭터였던 탓에, 스스로 끊임없이 본인의 한계를 느끼며 연기해야 했다.

"지안이의 감정은 하나가 아니에요. 웃고 있지만 슬프고, 화난 것 같지만 사실 기쁘기도 하고요. 그 감정을 저부터 모두 이해하는 게 필요했죠. 소현경 작가님 대본은 한 번 읽을 때랑 두 번 읽을 때랑 느껴지는 감정선이 달라요. 읽으면 읽을수록 디테일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여러 번 대본을 읽으면서 지안이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죠. 그 다음은 순전히 제 연기에 달린 건데...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모두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 또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신 분들을 위해 잘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열정이 저절로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작품이 이어질수록 지안이를 점점 좋아하게 됐고, 그만큼 지안이의 복잡한 감정선도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지안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했지만, 촬영이 이어진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신혜선과 서지안은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 셈이다.

"지안이는 저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당차고, 정확하고, 똑똑하고, 능력도 많죠. 뭐든 자기가 목표한 분야에선 최상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제겐 없는 모습이라 너무 부럽고 닮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안이는 미성숙한 어른이기도 하죠. 사실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같은 상황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도 해결하는 방법도 달라지고요.

지안이도 그래요. 똑똑하다 해도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건 아니었어요. 언니로서 '그렇게까지 고집부리지 않아도 돼', '힘들이지 않아도 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지안이를 다 이해하게 됐죠. 옳은 선택은 아니지만, 네게는 그게 최선이었겠구나, 어쩔 수 없었겠구나... 지안이가 점점 가까운 친구처럼, 쌍둥이처럼 느껴졌어요."

러브라인, 그리고 상상암... "모든 게 이해됐다"

 배우 신혜선,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촬영이 이어진 약 8개월의 시간. 신혜선과 서지안은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게 됐다. ⓒ YNK 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서지안의 러브라인은 어땠을까? 해성그룹과의 여러 악연과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는 지안은 최도경(박시후 분)의 구애를 거부하지만, 이내 받아들인다. 신혜선은 "지안이의 성격상 최도경과 자신의 마음만 생각할 수 없었을 거다. 그게 지안이다"라며 도경의 마음의 거부한 지안이를 이해한다고 했다. 결국 최도경과의 마음을 받아들인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친구 연애 상담 해주다 보면 뻔히 아닌 게 보이는데 못 헤어지는 친구들 있지 않나요? 헤어지겠다고 한참 남자친구 욕하고선 어느 순간 보면 다시 만나고 있고... 그런 친구들 욕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요. 아무리 지안이가 현명하다지만, 20대 마음이 성숙해봐야 얼마나 성숙하고, 단단해 봐야 얼마나 단단하겠어요. 머리로는 안 된다는 걸 아니 밀어냈다가,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니 다시 만났다가... 사랑이 그래서 어려운 거잖아요. (웃음) 저는 지안이의 혼란스러움을 다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고요."

많은 논란을 일으킨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의 상상암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지안이에겐 너무 아픈 단어였다"면서, "상상암이 실제 존재하는 병명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모든 고통을 축약해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도 TV 보면서 '에이 말이 돼?', '저런 게 어딨어' 할 때 있거든요. 시청자분들은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는, 특히 지안이에겐 너무 아픈 설정이었어요. 지안이는 고통을 못 이겨 삶을 놓으려 했던 아이잖아요.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지 느껴질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지안이는 모든 걸 내려놓고 죽으려 했지만, 아빠는 자식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죠. 죽고 싶은데 죽을 순 없으니, 스스로 암을 만들어낸 거고요. 극 중 대사에도 '선물을 주셨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너무 아팠어요." 

<황금빛> 통해 깨달은 것들

 배우 신혜선,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황금빛 내 인생>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설정이나 대사가 자주 등장했다. 자연히 신혜선도 부모님과 자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YNK 엔터테인먼트


<황금빛 내 인생>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설정이나 대사가 자주 등장했다.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언제나 완벽한 어른인 것 같지만, 그들도 실수하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고, 자식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부모는 자식을 늘 어리고 미성숙하게 여기지만, 어느덧 자라 부모 곁에 나란히 선 자식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일상에서 쉽게 잊고 사는 여러 당연한 것들을 깨닫게 했다.

서지안은 그 모든 오해와 갈등, 이해와 화해의 한복판에 놓인 인물이다. 그를 연기하며 신혜선도 부모님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수 아빠 돌아가시는 장면을 찍고 집에 가서 엄마 아빠를 보니 '정말 잘 할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드라마 안에서 엄마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계속 생기니까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많이 됐죠. 엄마 아빠는 가끔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렁거릴 때가 있잖아요. 그럼 감정이 계속 이어졌어요. 정말 잘해야죠. 기자님들도 부모님들께 정말 잘하세요." 

그동안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긴 했지만, 지난 출연작은 주로 장르물이나 로맨스물이었다. 중장년층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주말드라마의 주연. 신혜선의 부모님들도 더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묻자 "딸인 신혜선이 아니라 <황금빛>의 지안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TV에 있는 저를 더 좋아하시더라"며 밝게 웃었다.

"별로 살가운 딸은 아니에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건 애증의 관계인 것 같기도 해요. 남에겐 그러지 않는데, 부모님에겐 더 날카롭게 대할 때도 있죠. 그래서 항상 미안하고 사랑하고... 살가운 딸이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황금빛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

 배우 신혜선,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여전히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신혜선의 불안은, 매 작품을 절실하게,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보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 YNK 엔터테인먼트


<황금빛 내 인생> 캐스팅을 확정 짓고도 온전히 떨칠 수 없었던 불안함.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가려나, 다음 일은 언제 또 할 수 있으려나. 데뷔 후 줄곧 시달렸던 고용 불안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마음 한 쪽에 남아있다. 하지만 "여전히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신혜선의 불안은, 매 작품을 절실하게,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또 다른 고민과 불안이 추가되겠죠.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지만, 제게는 차선책이 없거든요. 지난 시간 끊임없이 불안했던 것도, 나는 배우를 꼭 해야 하는데 일이 잘 안 풀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 답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래 제가 포기가 빠른 스타일인데, 연기만큼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20대를 계속 이런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시간을 보냈죠. 그 속에서 흔들리며 성장했다면, 30대는 지난 20대의 불안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잖아요. 열심히 잘 해볼 거예요." 

신혜선은 올해 꼭 30살이 됐다. 29살에 주어진 첫 주연의 기회. 그리고 그 작품의 종영과 함께 시작된 30대. 그는 "아직은 그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거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최대한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금이 제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황금빛인 순간인 것 같아요. 감개무량하고, 신기하고 설레죠. 하지만 지금이 절정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욕심일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 정말 잘 해내고 싶어요." 


신혜선 황금빛 내 인생 서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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