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묘수찾기 쉽지 않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월드컵 묘수찾기 쉽지 않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출범 후 세 번째 유럽원정을 무거운 분위기로 마감했다. 대표팀은 북아일랜드와 폴란드에 2연패를 당하며 유럽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3월 A매치는 월드컵 본선진출국들이 5월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지는 평가전이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가상 월드컵 모의고사'로 꼽힌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본선진출국들이 부상 선수들을 제외하면 최정예멤버로 대표팀을 꾸리고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진검승부에 나섰다. 다가오는 러시아월드컵 성적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이미 월드컵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역대 3월 A매치에서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2002년(한일월드컵)과 2010년(남아공월드컵)에는 모두 3월에 유럽 원정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선을 앞두고 희망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린 바 있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선수점검과 전술실험, 강팀과의 경험 등 월드컵을 앞두고 나름의 소득을 올린 부분도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숙제와 불안감을 남겼다는 게 문제였다.

수비 불안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인 폴란드, 24위 북아일랜드는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독일-스웨덴전을 가상한 평가전이었다. 유럽팀 특유의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한 파워축구-끈끈한 수비조직력 등을 체험해봤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전 파트너였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신태용호의 1차 유럽 원정 당시 '러시아-모로코 대참사'처럼 일방적인 졸전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1골차로 석패했다는 점은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이번 유럽원정에서 그동안 지적받았던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수비 불안 문제와 손흥민 활용법, 경기 후반 급격한 체력저하와 집중력 상실 등이 대표적이다. 어차피 한국이 본선에서 만날 팀들은 폴란드-북아일랜드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다고 볼 수 없다. 월드컵이 이제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태용호가 이 정도의 경기력으로 '죽음의 조'에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던 부분이다.

김민재 밀착수비 김민재가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피오트르 지엘린스키를 밀착수비하고 있다.

▲ 김민재 밀착수비 김민재가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피오트르 지엘린스키를 밀착수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호의 최대 난제라고 할 수 있는 수비불안은 선수 개인의 기량과 전술적인 문제로 나뉜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3월 A매치에서 홍정호-박주호의 복귀와, K리그 전북 현대 출신 위주의 수비진 구성,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는 다양한 전술변화 등으로 해법을 모색하려고 했다.

결과는 저조하다. 신태용호는 2연전에서 5실점을 허용했다. 유럽에서는 수비에 비하여 공격이 그리 강한 팀이라고 볼 수 없는 북아일랜드에게도 멀티골을 허용했다. 폴란드 역시 선제골의 주인공인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등 일부 주전들을 후반에 일찍 교체하고 느슨한 경기운영을 펼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많은 실점을 허용할 수도 있었다.

부동의 왼쪽 풀백 김진수가 북아일랜드전에서 무릎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있었고, 교체투입된 김민우는 1~2월 기초 군사훈련을 받느라 실전감각이 떨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이용과 최철순도 의욕만 앞섰을 뿐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은 측면수비수들의 높이와 스피드가 모두 떨어지다 보니 세트피스나 역습 상황 때마다 상대에게 쉬운 크로스를 허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어느덧 신태용호의 '국민 욕받이'로 자리매김한 센터백 잔혹사는 이번 유럽원정에서도 계속됐다. 김민재는 북아일랜드전에서 자책골 포함 2실점에 모두 책임이 있었고, 오랜만에 복귀한 홍정호는 폴란드전에서 상대 공격수들과의 제공권 싸움에서 번번이 밀린 데다 볼키핑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전반만에 교체됐다. 가장 꾸준히 중용되고 있는 장현수도 유럽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힘에 부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나마 박주호가 북아일랜드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폴란드전에서는 왼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경쟁력을 증명한게 성과다. 그러나 공백기를 감안하면 준수했던 정도일뿐 두 포지션 모두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합격점을 받기에는 부족했다.

돌아보는 축구대표팀 전술의 문제점

의외로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신태용호에서 뛰어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는 월드컵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될수도 있다. 수비수 개인의 기량이나 조직력이 세계적인 강팀들보다 뒤떨어지는 신태용호에서 포백을 앞선에서 1차적으로 보호해줄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조차 없다는 것은 무모하다.

플레이메이커인 기성용이 공격전개에서 맡은 부담이 크고 맨마킹과 활동량에 강점이 있지않은 것을 감안하면 구자철, 정우영, 이창민 등 기성용과 장점이 비슷하거나 스타일이 어정쩡하게 겹치는 중앙 자원만 넘쳐나는 것은 걱정거리다. 고요한이나 박주호가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기용된 적은 있지만 꾸준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는 없다.

폴란드 숲 가운데서 기성용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폴란드 선수들 사이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 폴란드 숲 가운데서 기성용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폴란드 선수들 사이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신태용 감독의 '포메이션 다변화' 실험은 이번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신 감독은 2연전에서 4-3-3, 4-2-3-1, 3-4-3, 4-4-2 등 다양한 전술변화를 시도했다. 월드컵에서 최대한 다양한 수를 가져가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선수들의 역량이나 특성과도 맞지 않은 전술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만 확인했다. 차라리 이제는 플랜A의 조직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이유다.

특히 실패한 스리백에 대한 무리한 집착은 이제는 다시 고려해볼 때도 됐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 이후 스리백으로 나선 경기에서 지난 동아시안컵 북한전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북한은 신태용호가 만난 상대중 가장 최약체에 가까웠고 그나마 내용상은 졸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때 한물간 전술로 평가받던 스리백은 최근 세계축구에서 다시 재조명받는 추세다. 신태용 감독은 스리백을 대표팀의 수비 안정을 위한 히든카드로 구상한 듯 보이지만, 정작 현재의 한국 대표팀에서 스리백은 공격과 수비 모두 안되는 총체적 난국에 가깝다. 한일월드컵의 이영표-송종국 같이 활동량과 공수밸런스를 갖춘 전천후 풀백도 없고, 홍명보같이 중앙에서 빌드업이 가능한 센터백도 없는 상황에서, 신태용호의 스리백은 폴란드전처럼 어설프게 라인을 내렸다가 주도권을 내주고 일방적으로 뭇매를 맞는 상황만 초래하기 일쑤다.

공격에서 팀 내 최고의 무기인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흥민은 스피드와 돌파력을 앞세워 역습과 공간침투에 최적화된 스타일이지만, 몸싸움이나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타깃형 공격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폴란드전처럼 신태용호의 스리백 시스템에서 손흥민을 중앙에 세우면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하기가 힘들다. 기성용을 제외하고는 후방에서 롱볼을 정확히 찔러줄 패스 자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라인이 지나치게 내려앉다 보니 손흥민은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수비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경우가 잦았다.

손흥민 황희찬 시너지 황희찬(오른쪽)과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함께 공격하고 있다.

▲ 손흥민 황희찬 시너지 황희찬(오른쪽)과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카토비체 주 호주프 실레시안 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에서 함께 공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호가 출범 이후 공수 모두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것은 주로 일자형 4-4-2 전술을 구사할 때였다. 한국은 콜롬비아전처럼 최전방에서 2-3선까지 끊임없는 압박과 활동량을 통하여 상대의 볼을 끊고 바로 역습을 시도하는 전술로 효과를 거뒀다. 손흥민은 제로톱이나 혹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아래 포진한 처진 공격수로 골문에서 최대한 가깝게 활약할 때 최상의 경기력을 보였다.

그간 수비가담과 연계능력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근호가 결장한 가운데, 장신 공격수 김신욱은 손흥민과의 시너지효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강팀을 상대로 양질의 크로스를 올려줄 동료가 없다면 최대 장점인 제공권의 위력이 반감되고 오히려 경기템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김신욱의 단점만 다시 확인한 경기였다. 폴란드전 후반에 동점골을 터뜨리며 활약한 황희찬이 그나마 손흥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성과다.

월드컵에서 승점 따내기 위해 복기해야 할 북아일랜드-폴란드전

신태용호가 북아일랜드전과 폴란드전에서 모두 경기 막판에 결승골을 내주고 무너졌다는 것은 두고두고 복기해야 할 장면이다. 경기 후반 체력저하로 인한 집중력 상실과 무관하지 않은 장면이다. 월드컵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면 그야말로 공든 탑이 한번에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신태용 축구의 특성상 많이 뛰고 상대를 압박하는 경기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90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 비효율의 극치가 될 수도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제 월드컵까지 팀을 재정비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허정무나 홍명보 감독 시절에도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월드컵이 열리는 3~4월에는 어느 정도 기대치를 끌어올릴만한 호재가 있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리더십을 향한 대중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하필이면 역대 최악의 대진운까지 맞이하며 '이대로라면 월드컵에 나가봐야 3전 전패'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한국이 월드컵에서 최소한 승점을 따내지 못한 대회는 없었다. 어느덧 아시아를 대표하는 월드컵 본선진출 단골손님이 된 한국이지만, 세계무대와의 격차는 여전히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설사 강팀에게 질 때 지더라도 한국축구만의 가능성과 자존심은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까지 이제 약 80여일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또 한번의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선수와 감독, 협회까지 모두 정신차리고 분발해야 할 시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