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는 풍성했고 주제의식은 빛났다. Mnet <고등래퍼2> 김하온-이병재 두 소년이 부른 '바코드'는 들을수록 놀라움을 주는 곡이다. 처음엔 바코드란 메타포의 신선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메타포의 풍성함에 있었다. 주제의식 또한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순수성이 돋보였다.

'바코드' 메타포 깊게 읽기

이 노래에서 바코드는 '상처'이자 동시에 '빛의 가능성'이다. 먼저, 상처는 두 갈래로 표현된다. "엄마는 바코드 찍을 때 무슨 기분인지 묻고 싶은데"라는 가사가 말하듯 외부에서 만들어져 부여되는 상처와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라는 가사처럼 스스로 만든 상처다. 이는 손목의 자해흔적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상처가 동시에 빛의 가능성인 이유는 바코드(상처) 없이 스캐너의 빛(희망)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빛 없이 바코드도 쓸모가 없다. 이 메타포는 우리에게 빛이 필요하듯 상처도 필요하다는 걸 상기시키며 상처에 의미를 부여한다. 바코드는 스캐너의 빨간 빛과 만나야만 유의미한 무언가(영수증)를 생성해내는 것이다.

고등래퍼2 Mnet <고등래퍼2> 출연자 김하온-이병재가 '바코드'를 부르고 있다.

▲ 고등래퍼2 Mnet <고등래퍼2> 출연자 김하온-이병재가 '바코드'를 부르고 있다. ⓒ Mnet


상처가 남긴 부산물(영수증)을 챙길 건지 버릴 건지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 가능하다. 이 노래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수증을 챙기느냐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다. 외부로부터 오는 빛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 주어지는 것이지만 삑 그리고 "다음"의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 운명의 선택권이 오롯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다.

스캐너가 삑 하고 빛을 비추면 모든 게 달라진다. 이 노래에서 바코드 빛은 잠깐 비추는 '행운'이다. 그리고 이 행운을 보는 김하온과 이병재의 시각은 대립을 이룬다. 이병재는 "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 "네까짓 게 뭘 알아 행복은 됐어/ 내 track update되는 건 불행이 다 했어/ 잠깐 반짝하고 말 거야 like 바코드 빛같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고등래퍼2>에 출연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 이 빛(행운)이 이병재에겐 프로그램의 종영과 함께 사라져버릴, 잠깐 지나가는 행운인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건 김하온의 랩이다.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둬 우리 추억을 위해"라는 가사다. '삑'을 '빛'이라고 바꿔도 말이 된다. 김하온은 이병재와 생각이 다르다. 바코드 빛은 '삑' 하고 잠깐이지만 빛 후에 출력되는 영수증을 추억으로 챙겨둔다면 그건 사라져버리는 잠깐의 해프닝이 아닌 거라고, 유의미한 흔적으로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말한다.

이병재는 이를 부정한다.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스치듯 지나가버릴 행운에 기분이 들떠 계속 기뻐하는 것은 그에겐 속없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빛이 강한 곳에 그림자는 더 짙은 것처럼 이병재는 이 밝음 뒤에 감당 안 될 깊은 절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과 '의심'을 품고 있다.

영수증을 챙겨둬/버려줘 하고 대구를 이루는 이 구간이 특히 매력적인데 작곡과 편곡을 맡은 멘토 그루비룸은 이 포인트를 세련되게 살렸다. "삑 그리고 다음" 하는 반복 가사의 끝 부분의 음을 김하온은 올리고 이병재는 내린다. 가사가 대구를 이루면서 끝만 변화한 것처럼 음 역시도 끝부분을 다르게 구성한 것이다. 이 노래가 밀도 높은 곡이라고 여겨지는 건 이렇듯 가사뿐 아니라 작·편곡적 섬세함에서도 기인한다.

김하온은 "검은 줄들의 모양은 다 다르긴 해도/ 삑소리 나면 우리 모두를 빛으로 비추겠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검은 줄들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건 상품마다 바코드 모양이 다르듯 사람이 가진 상처 역시 제각각이란 걸 의미한다. 하지만 그 뒤의 가사처럼 김하온은 그 어떤 모양의 상처든 빛이 다가와 상처를 비춰준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한다. '삑'(빛)은 스스로 채워갈 수 있는 '다음'이 존재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코드를 단편적으로 은유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은유해낸다. 천재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바코드란 소재를 가져온 이병재의 은유들은 특히 다각도적이며 풍성하다. 가사 중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란 대목처럼 상품화된 자신을 표현한 원관념에 가까운 바코드부터 앞서 말했듯 상처의 흔적으로써의 바코드, 그리고 "끊어버리고만 싶어 이거 다"라는 도입부가 말해주듯 속박하는 '줄'의 이미지로써의 바코드까지. 이 줄은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붙잡고 싶기도 한 이중성을 내포한다.

"바코드를 횡단보도 삼아 뛰어서 벗어나야겠어/ 이 네모 밖으로 말이야" 하는 이병재 랩에선 바코드가 공간감을 갖는 네모난 틀로 은유됐다. 검은 도로 위의 하얀색 횡단보도와 바코드 선을 매치시킨 대목이 인상 깊다. 바코드 자체로 은유의 영역이 제한되지 않고 주변의 것으로 확장되는 것도 감탄을 자아낸다. 부산물인 영수증을 가져온 것, 또 "바코드가 붙었다면 I'm on a conveyor/ 외부와 내부의 의도를 동시에 쥐고 달려"라는 김하온의 가사가 말하듯 컨테이너벨트를 가져온 부분도 은유에 풍성함을 더한다.

주제의식의 순수성과 깊이

고등래퍼2 Mnet <고등래퍼2> 출연자 김하온-이병재가 '바코드'를 부르고 있다.

▲ 고등래퍼2 Mnet <고등래퍼2> 출연자 김하온-이병재가 '바코드'를 부르고 있다. ⓒ Mnet


'바코드'에선 두 세계가 갈등한다. 김하온이 표현한 '빛(희망)의 세계'와 이병재가 표현한 '어둠(절망)의 세계'다. 두 사람이 각자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지만 이 두 세계는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 두 세계가 시시때때로 갈등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빛의 세계가 정답이고 어둠의 세계는 오답인 그런 개념이 아니다.

'바코드'의 주제에서 깊이가 느껴지는 건 '삶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이들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성장소설을 읽을 때 만날 법한 인간 보편적 주제의식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이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의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대립되는 세계관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동시에 우정을 나눈다. 정신적 방황 속에서 성장한다. 이 소설처럼 인간의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 것만큼 순수성을 띠는 주제가 또 있을까? '바코드' 주제의식의 순수성 역시 청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치열한 고뇌와 방황에서 비롯된다. 어른들은 삶에 치여 정신의 고결함을 요하는 이런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바코드'는 주제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도 진정성을 띤다. 뻔한 자기계발서처럼 "다 잘 될 거예요", "당신의 미래엔 희망만 있을 거예요", "인생의 밝은 면만 보세요" 하는 일방적 설득은 없다. '바코드'는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동시에' 이야기한다. 이런 공존이 진짜 삶의 모습 아닐까? 이 노래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두 사람이 한강에서 가사의 출발점이 되는 고민들을 털어놓는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이것은 이들의 진짜 고민이고 생각이다.

'바코드'는 결말이 압권이다. 마지막 가사가 "영수증은 챙겨주길 우리의 추억을 위해"인데 김하온의 영역이었던 이 가사를 이병재가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나마 함께 부르며 노래는 끝이 난다. 줄곧 영수증을 버려달라고 했던 이병재가 딱 한 번, 마지막에 영수증을 챙겨달라고 말하는 건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결말이다. 장밋빛 희망의 계몽적 마무리가 아닌, 자아를 찾는 희망적 가능성을 어렴풋이 암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살짝 열린 결말은 세련됨을 자아낸다. "우린 새로운 변화의 때에 있어/ 방향을 모르겠다면 믿고 나를 따라와줘"라고 말하는 김하온을 이병재가 멀리서나마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짧은 노래 안에 이런 '서사'가 있다는 것이 한 편의 소설 같다.

어느 날은 이 세상이 온통 우울한 세계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날은 희망으로 가득 찬 세계처럼 보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바코드'에는 청소년의 충돌하는 세계관과 뜨거운 방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 길을 찾는 존재가 10대다. 물론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그 길의 끝을 찾지 못했지만 김하온-이병재 두 소년이 던진 화두는 답 없는 그 자체로 새로운 비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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