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하면 불현듯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영화 속 인물들이 어울려 군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는 '발리우드'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영화 <바라나시>를 보면 인도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인가를 깨닫게 된다.

'발리우드'와 <바라나시>를 동시에 품은 인도 영화계는 마치 한 쪽에서 물을 떠 마시고 목욕을 하면서도, 다른 쪽에서 그 물에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갠지스강'과도 같이 폭넓은 느낌이다. <바라나시>를 통해 갠지스강처럼 유장한 인도 문화의 한 지류를 맛본다. 누런 흙탕물의 맛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건 '인간 보편 존재와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바라나시>의 포스터

<바라나시>의 포스터 ⓒ 마노 엔터테인먼트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

유대교와 기독교 심지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도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성지로 예루살렘을 꼽는다. 한국에서 밤하늘을 붉게 수놓는 십자가 만큼 기독교 문화가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도 성지 예루살렘은 익숙히 들어본 곳이다. 하지만 인도와 힌두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바라나시'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다.

갠지스강이라면 학창 시절 사회나 지리 과목을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우타르프라데시, 비하르, 서뱅골에 걸친 갠지스 평원을 가로질러 남동쪽으로 2510km를 흐르는 갠지스강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이다. 비슈바나타, 산카트모차나 사원 등이 있는 2010km의 강 줄기 가운데에서도 인도인들은 굳이 바라나시를 예루살렘처럼 평생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는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다.

 <바라나시>의 한 장면

<바라나시>의 한 장면 ⓒ 마노 엔터테인먼트


힌두교를 믿지 않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그저 누런 흙탕물에 냄새 나는 강일 뿐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그 강으로 순례를 떠나 몸을 담그고 물을 떠 마신다. 또한 꽃불인 '디아'를 띄워 소원을 빌고, 화장을 한 망자를 띄워 보낸다. 결국은 하나로 흐르는 강물에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혼돈' 같은 풍경이지만, 인도인의 종교적 소망의 집결체가 바로 '바라나시'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최근 인도에서도 이 '종교적 로망'이 예전 같지 않다.

영화 <바라나시>에서 아들 라지브(아딜 후세인 분)가 일하는 직장의 사장은 아버지의 순례 길에 동참하려는 라지브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장은 '2510km 갠지스가 그 갠지스일 텐데 굳이 바라나시일 필요가 있냐'고 묻고, 그 질문에 아들 라지브는 대답을 찾지 못한다. 그저 '아버지가 가시니 어쩔 수 없다'고 할 뿐. 그런 태도이기에 라지브가 바라보는 바라니시의 갠지스강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냄새 나는 모순 덩어리 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바라나시를 종교적 성지로 바라보는 세대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세대 간의 간극, 바로 그곳에 영화 <바라나시>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속 70대의 아버지 다야(랄리트 벨 분)와 그의 아들이자 딸의 아버지이자 끼인 세대의 52세 가장 라지브, 그리고 그의 딸 25살의 수니타(팔로미 고시 분)까지. 세 세대의 갈등과 화해가 바라나시라는 공간을 통해 흘러간다.

 <바라나시>의 한 장면

<바라나시>의 한 장면 ⓒ 마노 엔터테인먼트


아버지의 '죽음 맞이'를 따라온 아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장 라지브. 그런데 건강이 좋지 않은 그의 70대 아버지가 바라나시로 순례 여행을 떠나시겠단다. 아니,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그곳으로 죽으러' 가시겠단다.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은 장소에 대한 로망을 말릴 수는 없지만, 건강도 안 좋은 아버지가 죽으러 그 먼 곳에 가겠다니. 입장이 난처한 아들이 말려보지만 아버지의 뜻은 완강하다. 결국 혼자라도 길을 떠나겠다는 아버지로 인해 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죽음으로 향한 순례 여행에 동행자가 된다.

15일을 예정하고 떠난 바라나시행. 택시를 타고 가다가 다시 인력거로 갈아 타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을 지나 도착한 곳은 '호텔 샐베이션'(영화의 원제)이었다. 그곳에는 라지브의 아버지처럼 죽음을 맞이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

동생에게 눈물의 이별까지 하고 온 '죽음에의 여행'이지만, 막상 호텔 샐베이션에서 그들이 맞이한 건 삶의 과정이었다. 집안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아들이 만든 식사를 못 먹겠다는 아버지. 혼자서 떠나오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손 하나 까딱 않고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아버지는 말 그대로 '휴가 온 여행자' 같은 모습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잠시 건강상의 위기를 넘기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린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투숙객들과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반면 사장의 눈치를 받으며 아버지를 모시고 떠나온 아들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고생이다. 아버지 음식 봉양에서부터 낯선 호텔에서의 생활을 책임지는 한편,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통해 이어지는 직장 일은 그를 매 순간 시험에 들게 만든다. 이런 일상은 라지브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든다. 바라나시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슬퍼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라나시>의 한 장면

<바라나시>의 한 장면 ⓒ 마노 엔터테인먼트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딸... 그 인연의 '묵티'

그런 일상의 번거로운 잡음을 타고 드러나는 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쉬이 풀어내지 못하는 부자의 애증이다. 작가이자 선생님으로 존경받아왔던 아버지는 이제서야 '문학의 재능'이 있었던 아들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릴 적부터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해 서운해 한다. 그렇기에 아들은 뒤늦은 아버지의 칭찬에 부아를 낸다.

반면 어릴적 아들에게 엄격했던 아버지는 정작 그 아들의 딸인 손녀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격려한다. 여전히 딸을 위해서라며 대학을 마치자마자 좋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강제하는 그 아버지의 아들과 달리, 나의 자식이기에 나의 아버지이기에 쉽게 접을 수 없는 마음들. 이렇게 영화는 죽음의 순례 장소에서 드러나는 세대 간의 해묵은, 혹은 현재 진행형의 갈등과 애증을 드러낸다.

'캥거루'가 되어 주머니에 안경도 책도 뭐든지 넣고 싶다던 아버지. 이제는 삶이 거추장스러워 죽음의 여정에 올랐지만, 오래 전 아들의 재능을 뒤늦게 안타까워 하는 아버지가 홀로 죽음을 찾아가는 '코끼리'가 되기까지는 예정된 15일을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다. 책임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아들은 바라나시라는 유배의 장소에서 가장과 아들의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리고 유보된, 기약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 이런 이들 각자의 '화두'를 풀어낼 계기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을 따라 바라나시의 죽음도 흘러가는 걸 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캥거루 같던 자신의 존재를 놓는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 그 본연의 관계로 아들을 품는다. 아버지로서의 욕심을 놓고 아들을 아들로서 받아들인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이지만 누군가의 아버지인 아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아들도 애증으로만 바라보았던 아버지와의 인연에서 풀려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돌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 역시 이제는 세속의 틀에서 한결 자유로워져 스쿠터를 타는 딸의 시동을 대신 걸어줄 여유를 찾는다.

어쩌면 영화는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세대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묘한 '성지'의 공간은 인연의 번거러움을 덜어내고, 삶과 인연, 그리고 죽음에 대해 돌아볼 여유를 준다. 한편에서 순례의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 몸을 적시고, 다른 곳에서 그 물을 성수라 떠 마시고 그 물에 죽은 자들이 길을 떠나는 곳에서 말이다. 가족이기에 놓아버릴 수 없었던 갈등과 애증은 '바라나시'라는 죽음이 전제된 특별한 공간을 통해 '묵티(구원)'에 이른다. 그리고 <바라나시>를 통해 관객들도 그 '인연의 묵티'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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