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 탭댄스를 추고 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 탭댄스를 추고 있다. ⓒ CJ E&M


천장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거울 속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보인다. 그녀들은 원형 무대 위에 동그랗게 누워 팔과 다리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거울을 통해 모든 객석에 보인다. 관객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춤과 노래다. 인물들의 아름다운 의상과 무대를 꽉 채우는 앙상블들의 칼 같은 군무. 소극장 뮤지컬, 2인극 뮤지컬, 심리극 등 대극장 쇼 뮤지컬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뮤지컬들이 있다. 그런데 꾸준히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사랑받는 건 아무래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쇼 뮤지컬이다.

당찬 코러스걸 페기의 성장 이야기

올해로 벌써 국내 공연 22주년을 맞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시골 출신 코러스걸 '페기'의 이야기다. 페기는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새로 만드는 공연 '프리티 레이디'의 코러스 오디션을 보려 했지만, 당황하다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도 길에서 탭댄스를 멋있게 추는 페기를 본 줄리안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합격시킨다.

페기에게 닥친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공연 오픈 전 여주인공 '도로시'를 넘어뜨렸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하지만 다리를 다친 도로시를 대신할 사람은 오직 페기 뿐이라는 코러스들과 연출가들의 판단에 다시 돌아온다. 공연 시작 36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여주인공이 된 페기는 특유의 당찬 성격과 자신감으로 연습에 들어간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앞에는 항상 '화려한', '화끈한', '눈을 뗄 수 없는' 등의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 이유는 아마 공연 내내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 탭댄스와 웅장한 군무, 인물들의 다양한 의상 덕분일 것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마치 '쇼 뮤지컬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 극이 진행되는 140분 동안 쉴 새 없이 새로운 춤과 의상들이 등장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그중 특히 인물들이 혼자 또는 단체로 탭댄스를 선보일 때면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질 않는다.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춤 실력을 뽐내는 듯 탭댄스를 주고받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이런 '시각적인 압도'가 쇼 뮤지컬의 장점이다. 무대 위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신이 난다. 게다가 주인공이 화려한 무대 속에서 자신감 있게 사건을 헤쳐 나가면 대리만족까지 느껴져 더 흥미로워진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귀엽고 재능 있는 당찬 아가씨 '페기'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난감한 상황이 와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부딪힌다. 꾸준히 밝은 성격으로 이리 저리 춤을 추고 다니면서 결국 뮤지컬 스타라는 꿈을 이룬다.

그 성장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극에서는 힘든 관문들이 금방 지나간다. 마치 동화를 보는 듯 힘들고 우울한 부분은 짧은 대사나 노래로 지나치고 다시 힘찬 노래와 춤이 등장한다. 이런 한없이 밝고 빠른 전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쇼 뮤지컬에 매력을 느낀다.

이런 매력은 무대 세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거울이 무대 천장을 채우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처럼 소품과 조명이 돋보였다. 특히 극 초반 인물들이 노래하고 춤 출 때 '그림자'를 활용했다. 도로시가 하늘하늘 흘러내리는 드레스와 숄을 두르고 춤을 추면 그녀의 그림자가 무대 벽을 가득 메운다. 도로시가 만드는 큰 그림자와 댄서들이 만드는 작은 그림자들이 겹쳐졌다 풀리면서 신비스럽다.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포스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포스터. ⓒ CJ E&M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 배우 수는 22명으로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많다. 그래서인지 무대를 꽉 채운다. 이 뮤지컬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앙상블 배우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앙상블들의 대사와 노래의 양도 상당한 편이다. 정말로 한 극단의 모습을 엿보는 것처럼 모든 배역들이 각자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주요 인물들이 연기하고 뒤에서 받혀주는 식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극이 더 재미있어졌다.

또한 앙상블 덕분에 화려한 무대세트가 더 잘 보였다. 벽을 가득 채운 12개의 화장대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면 차례대로 앙상블들이 노래하고 춤춘다. 이처럼 화려한 장면을 더 화려하게 해주는 앙상블 배우들을 보니 왜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앙상블 비중이 큰지 알 수 있었다.

'쇼'만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쇼 뮤지컬'의 정석이라 할 만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난이도 높은 춤, 화려한 의상, 볼거리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쇼'적인 특징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극을 보고 나오자 뮤지컬을 봤다는 생각보다는 '쇼'를 봤다는 느낌이 컸다. 볼거리들은 많았지만 중독적인 멜로디의 노래나 흥얼거리게 되는 가사, 기억 남는 대사들이 없었다.

뮤지컬은 노래, 연기, 춤 삼박자가 모두 갖춰질 때 가장 빛난다. 그런데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오직 춤 밖에 없었다. 특히 사건들을 이어갈 때는 단 몇 마디의 대사로 넘겨버렸는데, 이 마저도 음향이 좋지 않아 제대로 들리지 않는 대사들이 많았다. 노래와 연기의 비중이 춤에 비해 너무 작다보니 춤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장치들로 밖에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보니 이야기는 단편적이고 전형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연을 봤던 날은 이번 시즌 첫 공연 날이었다. 그런데 첫 공연이었는데도 관객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노래나 춤이 끝날 때 마다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으며 극 중간마다 호응도 컸다. 즐기는 연령대와 성비도 다양했다. 공연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도 밝았고 다들 "좋았다"는 소감을 나누고 있었다.

역시 22년 동안 사랑받은 작품의 힘은 무시할 수 없나보다.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의 화려한 특징과 유쾌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사랑받을 만한 작품인 건 분명하다. 탭댄스의 경쾌한 소리를 듣고 싶거나 화려한 무대가 보고 싶거나 꿈을 향해 걸어가는 당찬 인물들이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공연은 8월 19일까지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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