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 쇼박스

 
우민호 감독은 인터뷰 장소에 1980년 이른바 '마약왕' 소탕 작전 관련 기사와 사진이 프린트된 판넬을 들고 왔다.

우민호 감독은 <마약왕>의 첫 시작은 하나의 사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 모인 취재진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영화 속 장면과 무척 흡사했다.

"여기 있는 집도 그대로 갖다 넣었다. 이 대문 안에 있는 사람이 '마약왕'이다.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당시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총격전 와중에 (마약왕은) 어깨에 총을 맞은 뒤 잡혔다. 엄혹한 유신 때 마약왕이 나온다는 게 가능한가? 너무 놀라웠다.

이 집안에서만 200억 원 규모의 히로뽕이 발견됐다고 한다. 지하실에 밀수 공장을 만들어놓았고 냄새가 올라오니 냄새를 희석시키기 위해 그 위에 장미꽃을 싹 심어놓았다. 처음에는 형사 몇 명이 들어갔는데 (집 안에서) 총을 쏴서, 경찰특공대를 35명 동원해 (마약왕을) 잡았다."


'마약왕'이라는 제목도 당시 신문 스크랩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 "'한국의 마약왕'이라는 타이틀(헤드라인)이 있어 '마약왕'을 영화 제목으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아일보 1980년 3월 20일자 기사. 당시 일대를 주름잡던 '마약왕' 중 한 사람인 이황순의 검거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동아일보 1980년 3월 20일자 기사. 당시 일대를 주름잡던 '마약왕' 중 한 사람인 이황순의 검거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 동아일보

 
<마약왕> 시사가 끝난 직후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스카페이스>(1984)의 오마주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우민호 감독은 <마약왕>이 실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20여 분 정도 이어진 총격전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물론 <스카페이스>에서도 총을 쏘고 그러는데 <마약왕>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담았다."

우민호 감독은 인터뷰 중간중간 판넬을 올렸다 내리면서 "(이거) 수사보고 하는 것 같다"면서 씩 웃었다.

영화 <마약왕>은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의 큰 성공 이후 내놓는 차기작이라 큰 관심을 모았다. 영화 <마약왕> 개봉 하루 전인 1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우민호 감독은 <마약왕>을 두고 "<내부자들>의 성공 이후라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마약왕은 마치 '리어왕' 같은 이야기"

- 영화 보고 어땠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나?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내부자들>과는 많이 다른 영화다. <내부자들>이 명확하고 선명한 상업 영화의 장르적 느낌을 많이 가져왔다면 <마약왕>은 다르다. 이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 <마약왕>은 보통 상업 영화와 다르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다른가?
"<마약왕>은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로 후반부에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의 공식이라면 한 인물이 파멸하고 잡히곤 하는데 <마약왕>은 스스로 자멸하는 이야기다. 헛된 욕망을 맹렬하게 좇다가 섬에 갇혀서 미쳐가는 '리어왕' 같은 이야기. 송강호 선배님의 (히로)뽕 연기를 마치 연극처럼 담으려 했는데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이니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어떻게 보실지 무척 궁금하다."

- 처음부터 배우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 건가.
"맞다.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송강호 선배님과 한 번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운전사> 촬영하실 때, 한 번 만나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영화 <마약왕>.

영화 <마약왕>. ⓒ 하이브미디어코프


- 배우 송강호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다면?
"10년의 서사를 다루는데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에 구멍이 생긴다. <내부자들>처럼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이라 시나리오 자체가 완결성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구멍을 채워줄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송강호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다 채워주셨다. 아마 현장에서는 되게 외로우셨을 것이다.

특히 약에 대한 경험은 누구도 없으니 내가 드릴 말씀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사람마다 주사가 다 다르지 않나. 똑같은 약에 취해도 다른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이두삼에게서는 어떻게 나올까. 오로지 선배님이 혼자 연기하시고 나는 묵묵히 무대 위에서 처절하게 홀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이겨내셨다."

- 송강호 배우와 함께 작업한 소감을 알려달라.
"선배님은 배우 이상인 것 같다. 영화 이상이고. 내가 연출을 다섯 작품 정도 했는데 <마약왕> 촬영 회차는 100회차 정도로, 상업 영화치고 많은 회차로 작업했다. 힘들었다. 하지만 송강호 선배님이 옆에 계셔서 가장 덜 외로운 작업이었다. 보통 감독들은 촬영을 끝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그날 찍은 걸 복기해본다. 그러다 보면 외로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작업을 강호 선배님과 함께 했다."

- 정의로운 송강호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있었을 텐데 부담감은 없었나.
"송강호 선배님의 <넘버3> 같은 작품을 그리워하는 관객도 난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오랜만에 그때의 모습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거다. 다시 또 관객 분들이 좋아하는 송강호 선배님의 얼굴로 돌아오시겠지. <마약왕>을 통해서는 우리가 한 20년 전에 처음 송강호 배우를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 한 사람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10년을 2시간짜리 영화로 담기가 쉽지 않더라. 찍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취사선택을 잘 해야겠다 싶었다. 결론은 인물의 모험담처럼 만들자는 것이었다. 모험을 하면서 장소를 옮겨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결국 아무도 없이 성에 갇히게 하자, 누가 가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래서 이야기의 구조가 그렇게 상업적이지 않다. 하지만 '마약왕'이라는 이야기를 담기에는 이 구조가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다."

- 2017년 말에 크랭크업을 했고 개봉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편집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후반 작업이 오래 걸렸다. 1970년대를 재연해야 했고 말씀드렸듯 모험담 같은 이야기라 계속 이동하면서 찍어야 했다. 한국의 1970년대를 재연하기 쉽지 않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그래서 6개월에 걸쳐 100회차를 찍었다."

- 편집한 부분도 그만큼 많겠다.
"많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러닝타임을 3시간으로 만들 수 있나. 한 세 시간 정도 나와주면 괜찮을 것 같다. 물론 관객 분들이 보시다가 힘드시겠지만 말이다. <내부자들> 이후에는 놀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판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남산의 부장들> 촬영 중이라 감독판도 못 한다."

"<내부자들>과 다른 영화... 욕망에 관심 많다"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 쇼박스


- <내부자들> 흥행 이후 상업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택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부자들> 성공 이후가 아니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이번에 해야지, 다음 기회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 <내부자들> 성적이 좋았는데 <마약왕>은 어느 정도 흥행을 거둘 거라고 예상하나.
"일단 손익분기점(400만 명)을 맞추는 게 기본이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관객들에게 다른 결의 영화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 <내부자들>도 그렇고 <마약왕>, 현재 작업 중인 <남산의 부장들>이 다 비슷하다. 사회적이고 어둡고 범죄적인 면에 관심이 많나 보다.
"끌린다. 사실 <내부자들> 하고 난 이후에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청불이 힘들다. 감독들에게는 일단 흥행의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는데 청불은 이를 감수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또 청불이니 자극적인 요소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만들고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감독의 취향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가슴이 아파올 때도 있다. 나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사진을 보고 해야겠다고 생각해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욕망을 좇는 인간들과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 <내부자들>에서 열연을 펼친 몇몇 배우들이 나왔다. 특히 조우진 역할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조)우진씨를 보면 흐뭇하다. 특별한 애정이 없을 수가 없다. <내부자들>을 통해 이 배우를 내가 세상에 보여드렸고 배우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기의 길을 확장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하길 잘했다는 보람도 느낀다. 이후에도 우진씨 연기를 보면서 모니터링을 해주곤 했다. 지금은 더 이상의 모니터링이 필요없는 배우이지 않나. <내부자들> 때는 30테이크를 가도 (연기가) 안 잡혔던 배우가 지금은 혼자 너무나도 잘 하는 배우로 성장했으니 좋다."

- 언론 시사회 당시 영화를 "흘러가는대로 찍었다"고 말했다.
"맞다. 그런 게 있었다. 내가 불씨를 던지면 영화가 불씨대로 흘러가는 게 있었다. <남산의 부장들>은 반면 내가 제어해가면서 찍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 숨이 막힐 정도라 한 번 촬영 다녀오면 탈진할 정도다. <마약왕>은 불씨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채로 스스로 불이 되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신나게 찍었다."

- 마지막으로 영화 관람 포인트를 소개해달라.
"영화를 좋게 본 사람들은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마약왕>은 <내부자들>처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은유와 상징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음미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두삼과 1970년대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걸 읽으셨다면 다 읽으신 거다. 그렇게 이 영화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영화 <마약왕> <내부자들>의 감독 우민호 ⓒ 쇼박스

 
마약왕 송강호 내부자들 우민호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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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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